1. 그림자님께서 도올을 비판하시면서 형용모순적인 발언을 하셨네요.

a. 김용옥은 우리나라 지식인 중 가장 허접한 인간 중의 하나죠.................. written by 그림자님

b. 미뉴에 님이 김용옥의 동양고전 해석을 타당하다고 평가할 정도면 미뉴에 님은 김용옥보다 더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겠군요..... written by 그림자님


그림자님께서 '허접한 인간'이라고 한 평가는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죠.

첫번째는 누군가가 '도올은 허접한 인간 중 하나'라고 주장한 것을 그림자님이 "받아들여" 자신의 주장을 한 것이다.
두번째는 그림자님이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도올의 학문을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고 그 수준에서 '도올은 허접한 인간'이라고 주장한 것이죠.


이 두가지의 경우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첫번째의 경우에는 도올 vs. 안티-도올(이라고 하죠)의 주장에서 안티-도올의 주장이 맞는지 그림자님께서 판단하시려면 도올에 대하여 전문가 수준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즉, 그림자님께서 언급하신 "미뉴에님의 주장인 '해석을 타당하다고 평가할 정도면 미뉴에님은 김용욱보다 더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겠군요'"라는 주장은 그림자님께 그대로 적용이 된다는 것이죠.


"미뉴에님의 주장인 '해석을 타당하다고 평가할 정도면 미뉴에님은 김용욱보다 더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겠군요'"
"안티-도돌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 도올이 허접한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그림자님은 최소 김용욱보다 더 깊은 또는 동등한 지식을 가지고 있겠군요"


두번째의 경우에는 '칸트를 평생 연구해도 칸트를 이해 못한다'라는 그림자님의 인용은 아마도 전북대 명예교수인 한단석 명예교수의 발언을 인용한 것 같은데 마찬가지로 '평생을 당연히 공부하지 않으셨을 그림자님께서 어떻게 '직접' 도올을 '허접한 인간'이라고 비판하실 수 있는지요.



뭐, 딱 그림자님을 찦어 이야기해서 미안합니다만 아크로에 올라오는 글들의 대다수 그리고 정치/사회 분야 게시판들-요즘은 대부분 거의 종교 사이트로 바뀌었습니다만-의 글들이 이런 형용모순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요. 일일이 따지는 것도 귀찮고... 지쳤고.. 그래서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만.



2. 칸트를 평생 공부해도 부족하다?


글쎄요. 그렇겠죠. 전북대 한단석 명예교수는 70년을 칸트만 연구했으니까요. 그래도 그의 인터뷰들에서는 칸트의 기본을 이해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부족한 공부를 가지고 칸트를 언급하며 주장을 할 수 있을까요? 역시 그림자님의 주장대로라면 한단석 명예교수는 칸트에 대하여 발언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한단석 명예교수를 별로 좋게 보지 않습니다. 물론, 그의 인생역정까지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스승이 고 박종홍 서울대 교수인데 이 박종홍 교수야 말로 바로 유신헌법이 있게 한 학문적 토대를 한 장본인이니까요.

이 역사적 사실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있게 한 철학자(이름은 까먹어서 생략)와 그 철학의 계보와 비슷하고 어.쩌.면..... 친일파들의 학문적 연결이 되는 역사적 사실이겠죠.


우리나라에서 칸트 연구로 유명한(창시자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음) 박종홍 서울대 교수는 오늘날 서울대가 있게 한 장본인입니다. 친일 행각을 했던 박종흥은 당시 민족주의자들이 미군정의 국립서울대학교설치안(국대안)을 반대하자 이 국대안을 관철하기 위하여 이병도 등의 친일학자들과 어울려 국대안을 밀어붙였으니까요.


뭐, 칸트철학에 대하여는 잘 알지도 못하고 잘 알고 싶은 생각도 없고 칸트를 모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유신독재의 학문적 계보가 바로 칸트철학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3. 들뇌즈와 칸트

뭐, 인문철학을 비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깜냥도 안되고. 


단지, 들뇌즈에 대한 저서들에 대한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림자님께서 말씀하신 '평생을 공부해도 부족한 칸트 철학'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언급하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보편성과 일반성을 들어 설명하려니까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제 경험으로 대신 설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들뇌즈에 대하여 제일 먼저 해석본을 내놓은 것이 이진경씨지요? WTF. 그 이진경씨의 책을 읽은 독후감들을 접해보았는데 말 그대로 '흰색은 여백, 검정색은 한글'.


제가 그 독후감들을 읽다가 지쳐서 들뇌즈에게 이런 발언을 했겠습니까?

"(들)었다 놓았다 한 '(뇌)'를 (즈)려 밝고 간 인간"


그 이후로 진중권이 들뇌즈 해석본을 출판한다며 자신의 글 일부를 발췌하여 게시판에 올려놓았는데 글을 쉽게 쓴다는 진중권의 들뇌즈 관련 글을 읽어도 이해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

"이 독해가 안되는 것은 독자의 문제가 아니라 필자 진중권의 문제"라고 정신승리성 멘트를 남겨놓기도 했습니다만 글쎄요 지금은......


지금은 들뇌즈 관련 글들을 읽으면 예전처럼 뇌를 즈려밟히는 정도는 아니더군요. 진중권 글 이후 제가 특별히 인문학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의 이런 현상은 지식의 축적과 이해하는 논리의 발달에 연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 우리나라에서 처음 칸트를 공부하는 분들은 무지 힘들었을겁니다. 그들은 영어 원서로 공부를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예로 한글과 영어의 단어들 또는 문장에서의 '어감'이 다르니까 말입니다.(그래서 많은 전공 서적에서는 단어들을 한글로 번역하지 않고 그 나라 단어를 그대로 쓰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생을 하면서 내놓은 학문의 결과는 후세에게 활용될 것입니다.


즉, 궁극적으로 칸트를 이해하는 것은 평생을 공부해도 여전히 모자르겠지만 칸트를 평가하는 것은 세대를 거치면서 공부시간은 더욱 단축되면서 더욱 다양하게 평가가 되겠죠.



4. 도올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


도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주로 기독교계 학자들에 의하여 제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올이 개신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 도올에 대한 비판을 한 김상태씨의 '도올 김용욱 비판'은 학문 비판인지 넋두리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도올의 학문적 깊이에 대하여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도올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중국고전을 번역하는 학자가 없다'라고 비판했는데 막상 그 역시 '중국고전을 완역한 책이 한권도 없다'는 것입니다. 학자로서의 자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죠.


그의 주해서 중 하나인 '중용한글역주'의 간단한 서평을 인용해보자면,

"동방고전한글역주대전『중용한글역주』. 이 책은 한국의 대표적인 석학들의 뛰어난 문화콘테츠와 가치를 미래세대와 소통하기 위한 유한킴벌리의 사회공헌 연구사업으로 기획, 출판 된 책이다. 33장에 불과한 근소한 <중용> 텍스트에 원고지 3천매가 넘는 방대한 주석을 달았다."


"33장에 불과한 근소한 <중용> 텍스트에 원고지 3천매가 넘는 방대한 주석을 달았다."


대단한 것 같지요? 이 부분에 대하여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글을 맺습니다.


"많이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체계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ps : 오랜만에 와서 예전에 열받아 비밀번호를 아무렇게나 입력했었고 다시 안오려고 했는데...... 비밀번호를 수정하는 시스템이 아크로에 있더군요. 역시, 아는게 장땡!!!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