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친 한 분이 메신저로 질문을 해오셨습니다. 질문 요지인즉, 친박이나 친이는 사실상 권력 실세의 영향력에 힘입은 것이고, 권력의 비호가 사라지면 소멸됐거나 소멸될 것으로 보이는데, 친노(친문)는 어떻게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당시에도 그렇고 전혀 명대통령이라고 평가되지 않는데, 친노->친문은 어떻게 건재할수 있는 것입니까? ]


다음은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변입니다. 메신저로 답변드리느라 내용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해서 일단 참고용으로 남겨봅니다.


답변 :


결론만 말하자면, 대안세력으로서의 호남의 노쇠화(사회적 낙후 심화)+소위 리버럴들의 대안세력 주류화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안세력에서 리버럴은 사실상 영남(주로 PK) 진보 성향의 시민들이라고 봅니다.


농업에 기반을 둔 호남의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이 계속 감소하면서 호남 유권자와 정치인들은 자연스럽게 그 위상이 축소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남패권 주류(주로 TK)에 대한 대안 정치세력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거든요. 결국 그 자리를 상대적으로 경제적 위상이나 사회적 영향력도 갖추고 무엇보다 현대적 감각(인터넷, SNS, 해외 문물 경험 등)을 갖춘 리버럴(주로 비호남, PK 출신들, 젊은 세대, 486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봅니다.


새누리당 TK는 사실 김대중 세력과 정치적 기반이 겹치지 않습니다. 서로 적대적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정치적 기반을 가져올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인데다, 그거 가져오지 않아도 자신들의 고유한 정치기반(영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누리당 TK와 호남 정치세력은 서로 대립하기는 해도 상대방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욕구는 강하지 않습니다. 승리해서 다수가 되고 정권을 가져오는 것을 목표로 하지, 상대 세력을 완전히 말살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거죠.


하지만 친노는 다릅니다. 이들은 김대중과 동교동이 장악해온 호남의 표 나아가 진보 개혁 성향의 표를 가져오지 못하면, 즉 뺏어오지 못하면 독자적인 정치 세력으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호남 정치세력을 대하는 친노의 정치적 목표는 승리를 통한 제압이 아니라 완전히 말살/소멸시키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선거에서 승리해 다수를 점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완전히 대체(사실상 인종청소)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정치적으로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아메리카 인디언처럼 만드는 것)이 호남에 대한 친노의 전략적 목표일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중 정치 역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3가지라고 보는데, 그것은 대북송금특검, 민주당 분당, 대연정 제안 등입니다. 저 3가지 정치 이슈의 공통점은 김대중의 격하, 호남정치 폄하, 동교동계의 배척을 목표로 한다는 점입니다.


객관적인 정치적 업적으로 볼 때 김대중과 노무현은 비교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즉, 노무현은 김대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실패한 정치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나 평가는 오히려 노무현이 훨씬 더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이게 뭘 말할까요?


이건, 김대중과 호남 정치가 박정희 정권 당시부터 쌓아온 민주화 투쟁 즉 피와 땀의 성과를 친노를 비롯한 리버럴, 486들이 도둑질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즉, 영남패권 1진이 실패해서 생기는 정치적 반사효과를 호남이 아닌 친노가 가로채는 것,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라고 봅니다. 피는 호남이 흘리고, 과실은 친노가 챙기는... 이 구조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 농촌, 농민 등으로 상징되는 저개발, 전근대성의 이미지입니다. 이 이미지를 구체화한 것이 바로 호남입니다. 농업 지역에다가 경제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낙후돼 있기에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무식하고 야만적이라는 이미지를 뒤집어씌우기 좋습니다.


염전 섬노예, 흑산도 윤간 사건 등도 모두 호남의 이런 저개발, 전근대성, 야만성의 이미지를 강화해주는 사건들입니다. 이런 이미지는 호남에 덧씌워진 일종의 감옥 또는 족쇄와 같습니다. 마치 염전이나 또는 시골 마을에 갇혀서 꼼짝 못하고 시키는대로 노예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처지와 비슷합니다.


저항 능력이 없어서 노예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꼼짝 못하고 갇혀서 시키는대로 해야 하고, 마을 사람들이 공모해서 탈출을 막는 것처럼 호남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남은 친노나 리버럴이 요구하는 노예 투표를 해줘야 하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면 지역주의라는 비난에 집중포화를 뒤집어 씁니다. 저개발/전근대성의 이미지는 호남의 탈출을 가로막는 감옥, 족쇄의 역할을 합니다.


지난 총선에서 호남이 친노 아닌 국민의당을 지지하자 인터넷에서 깨시민(리버럴) 친노들이 개떼처럼 일어나 '5.18 묘지에 시멘트를 부어버려야 한다'느니 하며 호남을 저주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즉, 너희들 고분고분 시키는대로 안하면 죽여버린다는 겁니다. 이게 노예 노동과 뭐가 다를까요?


이런 점에서 사실상 호남이야말로 빠져나올 수 없는 노예노동의 덫에 걸린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좌파들의 논리를 믿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개발과 발전을 거부하고, 호남이 가난하지만 깨끗하게 살라고 강요합니다. 전주에 롯데 쇼핑센터가 들어오면 도시의 개성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소득 3만달러가 뭐가 중요하냐고 떠듭니다. 그래서 현 시장은 전임 시장이 롯데와 맺은 계약도 백지화하며 법정소송도 불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난하면서 깨끗하게 산다는 것은 사기입니다. 청결하고 개성을 갖춘 지역이 되려면 자원이 투입되어야 하고, 삶의 환경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좌파들이 호남더러 가난하게 살라는 것은 사실상 앞으로도 계속 지저분하고, 가난하고, 무식하고, 야비한 이미지를 갖고 가라는 겁니다. 그래야 지들의 영향력이 유지된다는 겁니다. 계속 지들의 노예로 살라는 겁니다.


호남이 이 족쇄를 벗어나려면 계약의 정신을 존중해야 하고, 정신승리가 아니라 냉정한 물질의 법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본주의를 저주하며 기피할 것이 아니라 그 합리성과 생산력을 이해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발목을 옭아매는 반기업/반시장 정서를 벗어던져야 합니다. 주먹보다 법이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호남이 친노/좌파의 섬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근본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