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판을 보노라면 한없이 그리운 사람이 있다. 특히 수구적이고 영남패권주의의 정체성을 숨기고 호남민들과 많은 지지자들을 기만하고, 민주진보를 팔아서 집권하여 노동자와 서민, 농민들을 삶의 지옥에 빠뜨린 노무현과 친노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리운 사람이다.


그는 바로 "신기하"이다.

신기하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조선대학교부속중학교를 거쳐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63년전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대학 2학년 때 4·19혁명에 참여하였으며, 1961년 전남대학교 민족통일연구회 회장으로 통일운동을 주도하다 5·16군사정변으로 3개월간 구속되면서 제적되었다. 1961년 9월 복학 후 1969년 제1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1974년 육군 대위(법무관)로 예편해 그 해 광주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1980년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약칭 민추협)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민주화에 관계된 인사 600여 명에 대한 무료변론을 맡아 ‘인권변호사’라는 호칭을 얻기도 하였다. 1980년 국제엠네스티(사면위원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에서 「손실보상(損失報償)-정당(正當)한 보상(報償)의 내용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1970년 12월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헌법상(憲法上) 공공복리(公共福利)에 관한 연구(硏究)-그 개념의 해석과 적용을 중심으로-」라는 논제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2·13·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지역구인 광주 동구에서 1984년 신한민주당 창당발기인이었으며, 1985년 같은 당의 전남 제1지구당 위원장의 자격으로 12대 총선에서 광주·전남 지역에서 최다 득표를 해서 의정 단상에 진출하였다. 5월 23일 개원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폭로하였으며, 12대 국회 말기에 대통령 직선제 헌법을 다듬기도 하였다. 13대 국회에서는 국회법·국정감사법·증언감정법 등 개정에 산파역을 하였으며, 국회에 청문회 제도를 도입하는 데도 기여하였다. 1988년 평화민주당 원내 수석부총무(원내 대표위원)로서 1989년 6월 잠시 원내총무 대행을 맡았으며, 1991년 ‘범야권통합’ 협상대표를 역임하였다. 야권통합의 산물이었던 민주당은 14대 국회인 1994년 5월 27일 무기명 비밀투표로 원내총무를 선출하였는데, 당시 비주류였던 그는 주류의 지원을 받는 모 후보를 예상 외로 물리치고 당선되어 언론들은 이 사건을 두고 ‘금요일의 반란’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는 김대중(金大中)이 새로 출범시킨 제1야당 새정치국민회의에 1995년 8월 12일 합류하였으며, 9월 8일 창당 후 처음 열린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원내총무에 선출되었다.


원내총무로서 그는 ‘긴급현안 질문제도,’ ‘4분 자유발언제도’를 도입시켰고 정보위원회와 여성특별위원회를 신설하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국회 법제예산실을 신설하고 의정연수원을 설립하게 하였다. 1995년 12월 19일 ‘5·18특별법’이 여야합의로 통과되는 데 기여하였다. 15대 국회에서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정도’를 정치신조로 삼아 불의(不義) 앞에서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자세를 보였다고 평가되기도 하였다. 의회주의자이며 ‘명총무’로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을 검증받고 있었는데, 1997년 8월 6일 괌에서의 대한항공 여객기(KAL) 추락사고로 부인과 함께 유명을 달리하였다.


이상의 직책 외에도 민주당 당무위원, 민주당광주시 지부장 등 야당의 요직을 거쳤으며, 국회에서는 광주특위·윤리특위 간사, 국회복지포럼 회장, 한·이집트 의원 친선협회장, 국제의원연맹(IPU) 한국대표를 역임하였다. 상임위원회로는 운영·재무·국방·건설·정보 위원을 역임하는 등 다방면의 의정활동을 펼쳤다. 그는 민주화·민권운동을 하던 재야 출신의 몇 안 되는 국회의원 중의 하나였다.(민족문화백과사전에서 인용)


혁혁한 민주화 운동경력, 선명한 민주진보적 정체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협상력 등 신기하는 민주진보 진영의 기린아였다. 김대중의 후계자로서, 민주진보 진영의 차세대 지도자로써 손색이 없던 그가 1997년 괌 대한항공기 추락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그가 그때 운명을 달리하지 않았더라면 민주당에서 노무현이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노명박근혜 정권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기하 전 의원의 정치적 신념은 "정도正道"였다. 야당 원내총무 시절에도 정체성은 훼손하지 않으면서 유연한 협상력을 발휘했던 그였다. 지금 더불어터진당 운동권 출신들을 보노라면 정체성은 커녕 정치적 신념도 없는, 오로지 권력만을 추종하는 불나방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금 민주진보를 자처하는 야당 정치인들은 신기하 전 의원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없이 무기력하고 배짱없는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민주진보 진영에 신기하 전 의원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집권은 난망할 것이다. 그래서 요즘같은 민주주의 암흑기에 그가 더욱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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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야당 건설을 통하여 김대중의 민주평화개혁 정신을 계승하는 정치세력이 나오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