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자동차와 인연이 거의 없다. 물론 운전도 배운바 없고 핸들을 장난으로나마 만져본 적도 없다.

집에 차가 생긴지 오래 되었지만 아내가 차의 임자이고 운전자이다. 한달에 한두번 꼴로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타는 행운을 누린다.

80년대 초 도꾜에서 펜클럽대회가 열린 걸 구실삼아 일단의 글장이들이 일본여행을 했는데 그게 나의 첫 일본여행

이었다. 펜대회 현장엔 가본 일 없고 마침 교포 시인 한사람이 봉고를 가져와 일행을 태우고 후지산 둘레를 여행하는데

일본 농가 마당에 승용차가 한두대씩 세워져 있는 풍경이 몹시도 신기하고 부러웠다.

'아, 일본은 대단한 선진문명국이구나."

도꾜 시내에 차들이 넘쳐나는 건 그렇다 쳐도 시골 농가 마당에 세워져 있는 깔끔한 승용차는 그야말로 그림처럼 멋지고

신기하기만 했다. 80년대 초, 내 기억으로는 한국에서는 상당한 부자들, 고위층 가운데 그것도 일부가 자가용을 굴리고

있었다. 어쩌다 그 자가용을 한번 얻어타게 되면 굉장한 은혜를 입은 것 같은 황송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떤가?


 나는 경기도 지방 소읍에 거주하는데 산책조차 바퀴벌레처럼 다가오는 자동차 때문에 마음놓고 다닐 수가 없다.

정말 짜증이 난다. 서울 강남에서 한때 거주했는데 거리가 자동차로 완전히 막혀 내가 탄 택시가 삼십분 이상 꿈

쩍도 하지 않을 때는 정말 한국 자동차 붐의 주인공인 정주영 회장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일찌감치 서울

탈출을 한데에는 이 무지막지한 교통지옥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한몫 했을 것이다.

지방 소읍의 서민아파트인데 요즘은 가구당 차가 2대가 보통이라고 한다. 일본 농가 마당에 서있던 승용차를 바라보던

시절은 꿈만 같다.


2~ 나는 자동차와 인연이 정말 없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처음 타게 된 자동차는 버스도 택시도 승용차도 아닌, 대형 트럭이었다.

그 트럭은 탈곡하지 않은 벼가마를 가득 탑재했는데 나는 군청 마당에 서있는 그 트럭 위에 운전기사 몰래

기어올라갔다. 그 트럭이 광주로 간다는 정보를 알았기 때문이다. 광주에서는 전국체육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고향 축구팀의 경기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가족 몰래 뛰어나와 군청 마당에 서있는 트럭 위에 타고 함평과 나주를

거쳐 돌고 돌아 광주로 진입하는 트럭 위에서 그야말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벼가마니의 새끼줄을

두 손으로 붙잡고 버텨냈다. 그리고 난생 처음 광주라는 대도시에 입성했다. 처음 보는 그 도시는 엄청나게 큰

도시였다. 13세 시골뜨기 소년이 트럭 위에서 새끼줄을 붙잡고 몇시간을 버티는 모습은 지금은 사실 같지가

않다.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소년이 정말 나일까? 내가 처음 승차한 자동차-볏가마를 가득 실은

대형 트럭, 나는 정말 자동차와 인연이 없다.

*이 기괴한 장면은 유년기 체험을 담은 성장소설 00에 잘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