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두화(佛頭花), 꽃 이름 치고는 요란하고 딱딱한 느낌이다. 6월 초 아파트 화단에서

처음 발견한 꽃인데 꽃 모양이 부처님 곱슬머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파란

잎사귀 사이에 하얀 꽃송이가 탐스럽게 피어있는 이 꽃은 근래 내가 본 꽃 중에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꽃이다. 강아지와 산책하는데 이웃 젊은 주부가 휴대폰 카메라로

그 꽃을 요모조모 찍고 있었다. "꽃이 금방 사라질 것 같아 미리 담아두는 거예요."

며칠 뒤 강아지와 함께 그 꽃을 다시 보려고 화단으로 갔는데 그 많던 꽃송이들이 하

나 남지 않고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간밤에 내린 소나기를 맞고 소멸해버린 것이

다. 순간에 맛본 황홀.

 

 젊은 주부는 카메라에 담긴 화사한 꽃을 두고두고 감상할 것이다. 음악도 그렇다. 연

주시간은 길어야 한 두 시간, 그리고 귓전에서 사라진다. 음악을 기록에 남겨 기억을 되

돌려 감상하게 해준 문명의 이기들이 새삼 고맙다.

 요즘 몇 번이고 되풀이 감상하는 음악회가 있다. 42분에 그치는 음악회인데 잘 알려진

마리아 호앙 피레스가 트레버 피녹(Trever Pinnock,1946~)이 지휘하는 유럽 체임버 오케

스트라와 모자르트 마지막 협주곡인 27번을 연주하는 것이 기본 내용이다. 피레스는 모차

르트 연주로 이미 정평이 있지만 비교적 젊은 단원으로 구성된 이 악단은 처음 대하는 얼

굴이다. 그런데 보고 다시 봐도 물리지 않는다. 몇 번을 거듭 봐도 늘 흐뭇한 감동과 함께

음악이 끝난다. 이 정도 수준의 연주회는 흔히 있으나 이 음악회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

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협주곡 27번은 작곡가의 곤궁했던 말년과 엮여 슬프고 암

울한 선입견을 줄 수 있으나 이 협주곡에 그런 어두운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곡에

비해 선호도에서 뒤지는 경향은 있으나 아름다운 화성은 여전하고 2악장이 좀 지루한 대신

3악장의 아기자기한 전개는 충분한 흥겨움을 선사한다. 곡 자체가 슬프다기보다 아마도 사

람들은 이 곡을 들으며 작곡자 말년의 비극적 결말을 생각하며 비감에 젖을 것이다. 이 연

주에서는 음악 보다 도리어 독주자 피레스의, 마치 어느 모임에 불려나온 봉사원처럼 음악

에 헌신하는 자세와 표정이 눈길을 끈다. 그는 느린 템포에서 허리를 깊이 숙이고 건반을 

응시하며 마치 자기가 표현하는 악구의 의미를 검증하듯 자주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런 

모습이 이 협주곡의 차분하고 소박한 성격과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 음악회 주빈은 협주곡이 아니었다. 공식 연주가 끝나고 갈채가 쏟아지고 두어

차례 등퇴장을 거듭한 지휘자와 독주자가 잠시 머리를 맞대고 논의 끝에 두 사람이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았다. 모차르트의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소나타. K.381>의 끝악장 연주가

곧 시작되었다. 빠른 템포의 활기 넘치는 곡이다. 왜 끝악장일까? 밝은 분위기의 피날레

를 의도한 것일까. 돌발 연주라는 흔적이 있지만 호흡이 잘 맞았다.<네 손을 위한 소나타>

는 근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익숙한 솔로 연주 보다 짝을 지어 듀엣으로 연주하는 명

인들의 연주 모습, 그리고 네 손이 만드는 화음의 음향적 효과 등이 인기의 요인이다. 모

차르트도  그 음향효과에 먼저 주목했겠지만 누이, 제자, 런던 등지에서 사귄 친구들과 피

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음악적 대화를 나누고 싶어 적지 않은 연탄곡을 작곡했다는 기록이

있다.

 

 1차 앙코르 곡 연주로 끝날 줄 알았던 연주회는 관객들의 갈채로 다시 이어진다. 사실 이 

연주회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이제 시작이었다. 지휘자와 독주자가 다시 피아노 앞에 나

란히 앉았다. 이번에는 <K.381>의 2악장, 순서가 거꾸로 된 셈이다. 이 연주가 준비되지

않은 돌발연주라는 증거다. 앞에 연주된 악장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2악장 라르게토

는 연인들이 주고받는 사랑의 밀어처럼, 혹은 상심을 위로하는 속삭임처럼 은근하고 아름답

기 그지없다. 이 라르게토는 모차르트 음악 중에서도 특이한 스타일과 색채를 보여준다.

모차르트 연탄곡 중 이 곡이 가장 자주 연주되는 것도 2악장 라르게토 때문일 것이다. 조

용히 연주를 듣고있던 연주단원 가운데 첼로 파트 여성단원 두사람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한사람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한 사람은 감동에 젖어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다. 다른 멤버

들도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 첼로 주자의 눈물은 어떤 의미일까? 결코 슬픈 음악은 아닌데

그는 왜 눈물을 훔칠까? 그는 음악인이고 음악이 만들어내는 너무도 아름다운 정경 앞에서

스스로 감동을 억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렌보임과 랑랑, 아르헤리치와 키신, 많은 연주가들이 듀엣으로 <K.381>을 연주한다. 그

들의 연주는 준비된 것이고 완벽한 일치감을 뽐낸다. 기계적 일치감이란 점에서 피레스와

피노크의 연주는 그들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호흡과 감성을 서로 밀착시켜 음악의 흐름

을 더욱 자연스럽게 이어간다는 점에서 피레스와 피노크의 연주는 훨씬 짙은 감동을 전해

준다. 둘은 키도 작고 생김새도 오누이처럼 닮았으며 봉사원 같은 자세로 음악에 헌신하는

모습도 서로 닮았다. 이 무대만큼 모차르트 음악을 감동적으로 전해주는 무대를 찾기는 쉽

지 않다. 그래서 이 음악회를 거듭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