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리는 작가, 글을 쓴지 오래 되었지만 나는 제대로 팔린 책이 거의 없다.

그거야 글을, 소설을 재미없게 쓰고 못 쓰니까 안 팔리는 거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이렇게 말해버리면 간단한데 스스로 이런 결론을 얻는데 몇십년이 걸렸다.

"초현실주의 작가"ㅡ 2007년도에 한국에 온 캐나다 교포 번역자가 모 일간지와 인터뷰 하면서

나를 가리켜 한 말이다. 그는 내 작품 번역으로 미국 펜의 번역상도 받은 사람이다.

초현실주의? 미술작품에서나 듣던 말인데 나 자신도 어리둥절했다. 아, 그래서 책이 안 팔리는구나.

나는 좋은 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국내 어느 평가도 내게 이런 말을 쓴 적이 없다. 이것과 비슷한 

말은 가끔 듣긴 했지만. 이것은 한가닥 위안은 될지언정 "못쓰고 재미없게 쓰니까 책이 안 팔리는 것"

이란 자명한 결론을 뒤집을 수는 없다. 나이 들고 철이 드니 나도 그걸 인정한다.


 그런데 죽어라 안 팔리는 내게도 -특히 중단편의 작품집의 경우-절호의 기회가 딱 한번 있었다.

순탄하게 일이 진행되었다면 시쳇말로 나는 적지않은 인세를 받고 명성도 쌓았을 것이다. 이 얘길

하려고 앞서 이런저런 사설을 늘어놓았다.

0남이란 출판사에서 87년도엔가 "한국작가 선집 24권 시리즈"의 한권으로 내 작품집 00이 출간되었

는데 아마 순서가 스무번째 쯤 되지 않나 생각된다. 소설만 낸게 아니고 시인 이름도 그 속에 포함되

었다. 그런데 내 책이 나오자말자, 편집자 말에 의하면

"책이 서점에 나가는 순간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 20여권 선집 출간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팔리는

책"이라는 것이다. 꿈인가 생시인가. 이 말이 딱 어울린다. 더구나 장편소설도 아닌 중단편집이 셀러가

되는 건 아주 드문 일이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그 해 노태우가 당선된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낙선한 DJ의 동정이 동아일보에

대서특필되었는데 보도에 의하면 DJ는 책 두권을 들고 동교동 자택 지하실로 내려가면서 '일주일간

내게 오는 어떤 연락도 받지 말라" 지시했다는 것이다. 책 두권은 0남에서 나온 내 작품집 00과 영어

성경이었다. 그걸 보도한 동아 정치부 기자는 지금 전남지사로 있는 이낙연 씨다. 그는 동교동과 야당

출입기자였다. 그 보도가 나가자, DJ의 열광적 지지자들이 '대체 00이란 소설이 어떤 책이길래 선생님

께서 지하실로 들고 내려가셨을까? 이런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서점으로 달려간 것이다.


대선 직후 나는 작가 시인 몇사람을 설득해서 위로차 동교동을 방문했다. DJ를 처음 만난 것이다. 황

모 작가와 광주 쪽 젊은 시인 몇사람이 일행이었다. 설훈이 우리를 맞았고 외로왔던 DJ는 일행을 반

갑게 맞았다. 그 전에 TV지지연설자로 황 모 작가를 내가 이틀밤을 설득해서 나가게 한 사연이 있다.

그때 마침 작품집이 새로 출간되어 나는 그 책을 DJ에게 선물한 것이다.

 

"선생님, 교보하고 종로서적에 좀 나와보세요. 책에 인지가 하나도 붙어있지 않아요."

이른 아침 옛날 중학에서 내게 배웠던 여제자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나는 부리낳게 교보로 종로서적

으로 달려갔는데 책은 높게 쌓여있는데 인지가 하나도 붙어있지 않았다. 지금은 인지첨부가 사라졌지만

당시엔 인지가 절대보증서였다. 주문이 몰려들자, 출판사에서 인지를 생략해버린 것이다. 의도적인가?

단순실수인가? 결과부터 말하면 나는 그 책 출간계약을 파기해버렸다. 파랑새는 날아가버렸다. 출판사

사장이 타협을 간청했으나 나는 응하지 않았다. 이낙연 씨는 그 뒤 나를 만나 '술을 사라'고 말했는데 나

는 그저 웃고 말았다. 대신 나는 그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어 출판기념회를 가졌을 때 좀처럼 하지 않던

'축사'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