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5일 스위스에서 실시된 기본소득 국민투표가 77%의 반대로 부결되자 평소에 기본소득제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무척 아쉬웠다.

마침 내가 공동대표로 있는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가 주최하고 대구광역시과 북구청이 함께 한 제10회 '스위스학교'에 특별강연을 하러 스위스인 바움베르거(Baumberger) 부부가 한국에 와 있다. 위르그 바움베르거 박사는 스위스 투르가우 칸톤의 명예공직자로 세계적 모범 사례로 회자되고 있는 스위스의 분권 사례 그 정치 행정 시스템에 대해 열정적인 강의를 했다. 발제강연이 끝나고 토론 시간에 당연하게도 이번에 스위스에서 부결된 기본소득 국민투표 관련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뜨거운 논의가 이어졌는데, 물론 그의 "기본소득 국민투표가 부결된 것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놀고 먹자'는 것에 23%나 되는 스위스 국민들이 지지한 것이다"라는 답변은 나를 조금 실망시켰지만(기본소득제의 의미가 단순히 '놀고 먹자'는 차원은 분명 아닌 까닭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시장이 부른 노동시장의 유연화만이 아니라 새로운 생산 방식에 의한 고용없는 성장으로 고실업율 사회가 계속 된다면 기본소득 보장은 결국 시대적 흐름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다들 공감했었다.

물론 그럴 경우 그가 가볍게 언급한대로 그야말로 '놀고 먹자'는 사람들도 일부 발생하는 폐단이 없지는 않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일하고 하는 본능적 욕구는 오히려 우리들로 하여금 창조적 생산으로 이끌어가면서 인류의 진보에 이바지 하도록 만들어갈 것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화는 고대 희랍 철학이 그러했듯 대체적으로 여가의 산물이었다. 기원 전 4대 성현을 낳으며 인류 정신을 근본적으로 한 단계 고양시켰던 카를 야스퍼스의 그 축(軸)의 황금시대(Axial Golden Age)는 사실상 노예들의 노동 그 희생을 바탕으로 활짝 피어난 꽃이 아니었던가. 이제 그 노예 노동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가능성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놀고 먹자'는 것이라는 식의 기본소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임금노동만이 '일'이라고 여기는 노동에 대한 편협한 인식 역시 그런 부정적 인식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이윤추구를 위한 노동이나 효율과 경쟁의 원리에 입각한 경제활동이 아닌, 자신만의 능력과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인정받는 열린사회가 기본소득을 통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어제 바움베르거 박사는 "비록 기본소득 국민투표는 부결됐지만, 기본소득에 관심은 오히려 스위스 사회에서 앞으로 갈수록 높아져 갈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기본소득제는 어쩌면 인류에게 제2의 축(軸)의 황금시대를 가져다 줄 곧 문화융성시대를 열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기본소득이 문 앞에 왔다 - 인공지능이 번 돈, 기본소득으로 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