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전문 http://v.media.daum.net/v/20160622100022612 )에서 덩샤오핑(내겐 등소평으로 더 친근한)을 언급하면서 "덩샤오핑이 수십 년 후의 큰 그림을 그리고 멀리 내다보면서 중국을 경영한 것처럼 우리의 정치권이 지금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문득 나로 하여금 수십년 전부터 등소평을 사랑했던 그 추억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나는 등소평을 글자그대로 '사랑'했는데, 중국 인민을 진정으로 살려나가는 그 열정 어린 마음에 매료 당해서였다.
물론 등소평을 주목한 것은 1960년대 말 세계적인 어느 여성 예언가가 던진 '극동에서 꼬마가 나타나 세상을 구할 것이다'는 예언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본 그 예언이 가슴에 꽂혀 있었는데, 1978년 권좌에 오른 등소평을 보는 순간 그 덩치가 꼬마 수준인 것을 보고 그 예언의 '꼬마'가 등소평이 아닌가 내 나름 확신하며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언론을 통해서 등소평의 인민을 향한 사랑을 거듭거듭 확인하면서, 또 등소평을 통해 변화를 거듭하는 중국 현실을 보면서 등소평에 대한 내 '사랑'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정치란 무엇인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또한 어떤 것인가. 어쩌면 지금
내가 그리는 이상(理想)적인 정치인상에도 그런 등소평 이미지가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흑묘백묘론에서 드러나듯 갖은 방법을 다해서라도 오로지 인민을 행복하게 하려는데 온전히 투신하는 그 목민의 모성애적 마음을 등소평에게서 발견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거기에다 그때 내가 살던 지역구(부산 남구) 국회의원이 정상구 의원이었는데, 그가 마침 중국통이어서 그로부터 선물받은 중국 관련 저서들은 중국만이 아니라 등소평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등소평을 향한 애틋한 정서는 1989년 천안문 사태 때 내가 기존에 등소평에 지녔던 이미지완 다른 그의 강경 대처를 보면서 잠시나마 혼란을 겪기도 했었다. 하여 내 나름 그 당시 등소평의 정치적 행위(무력 진압)를 이해해보려는 옹호글을 일기장에 장문으로 남기기도 했었다.
등소평은 결국 중국과 인민에 국리민복의 결실을 안겨다 주었다. 물론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고 그런 급속한 경제성장이 권력형 부패를 파생시켰고, 또 현재의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빈익빈부익부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어 등소평이 꿈꾸었던 유교적 대동사회에 얼마나 가까운지는 의문스럽다.
하지만 나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지금의 중국의 역할을 바라보고 있다. 우선은 소련의 몰락으로 동서냉전시대가 끝나면서 가히 미국이 독주하려던 그 자리에 G2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서 미 패권주의를 견제하면서 국제 정세 안정에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나는 공산주의에 시장경제를 접목한 중국의 실험을 주목하면서, 막다른 지경에 처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대안체제가 중국을 통해 성립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등소평이 꿈꾸었다는 유교적 대동사회가 그런 것이었을까.
그렇게 볼 때 오늘날의 중국이 등소평 시대가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 것인가. 반세기 전에 어느 예언자가 예언한 '극동에서 꼬마가 나타나 세상을 구할 것이다' 그 예언이 그런 차원에서 글자 그대로 이뤄지기를 또한 바라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덩샤오핑이 중국의 30년 뒤, 50년 뒤를 그린 것처럼 우리 국회는 미래 한국의 모습을 그려내야 한다"

http://v.media.daum.net/v/20160622100404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