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패권주의가 마치 요즘에 일어난일처럼 헛소리하는 영남노빠들이 많더군요

70년대부터 주장되었던 일인데




https://www.youtube.com/watch?v=C6c4bCeWNek


리영희 선생의 생전 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Cb2Uka7OS8


언론인 리영희

 " 내가 종교처럼 숭앙하면서까지 지킬려고 했던것은 국가가 아냐 소히 애국 이런것이 아냐 진실이야 " 


https://www.youtube.com/watch?v=AmgRUxuOPlY


언론인들의 스승 리영희의 역사








‘지역갈등’ 매듭 묶은 자가 풀어야


리영희는 『한겨레』 98년 1월 7일자에 쓴 「‘지역갈등’ 매듭 묶은 자가 풀어야」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호남 차별과 관련하여 뜨거운 불을 토했다.

“인과관계의 구조에서 말하자면, 호남 지역감정이란 영남인들과 그들의 수혜자 격인 그밖의 지방인의 ‘경상도 지역주의’가 강요한 결과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그들이 독점한 국가권력의 위력을 업고 전라도 사람들을 마치 ‘불가촉천민’시하는 듯했다. 그 허구의식으로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선인’인 양 착각하는 오만과 악덕에 빠졌다. (…) 김영삼 정권5년에, 이른바 왕년의 'TK‘로 불리는 경상북도 사람들이 모든 혜낵을 경상남도에 빼앗겼다고 불만이 크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동정이 안 가는 바 아니다. 하지만 30년간을 권력과 돈을 독점했던 ’TK 지역‘ 주민들이 불과 5년간의 ’푸대접‘에 격분할 때, 한번쯤은 40년 가까이를 경상남북도 영남지역 지배하의 나라에서 서러움의 눈물을 삼켜야 했던 전라도 호남인들의 심정을, 한번쯤은, 행각해볼 만도 하다. (…) 많은 호남 출신이 직장에 남기 위해서 또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그들의 호적을 바꾸었거나 전라도 사람이 아닌 모습으로 살려고 앴는 경우를 나는 수없이 알고 있다. 그들은 ’3등 국민‘의 처지였고, ’내구식민지‘적 멸시를 당했다. 주장할 의견이 있어도 참고 소리를 거두었다. 그것은 동포 집단으 ㅣ큰 부분에 강요된 ’자기 부정‘이고 현대적 ’소외‘였다. 상대방의 처지가 되어서 한번 생각해보라. (…) 오랫동안 나라의 따스한 양지를 독차지하여 호남지역 주민들에 음지의 삶을 강요했던 영남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먼저 자발적인 자기 비판과 반성의 소리가 일어나야 할 것 같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가 1974년에 출판하여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전환시대의 논리>에 나오는 지역차별과 관련된 한 대목이다.

“텔레비전 단막 또는 연속의 사회물을 유심히 보았더니 가정극에 나오는 식모에게는 어느 도의 사투리로 한다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 같고, 사회풍자극 등에서는 또 건전치 못한 행위를 하거나 수모를 당하는 역의 출신지도 대개 정해져 있고, 쾌감을 주거나 용기와 정의를 상징하는 역의 언어는 거의 예외 없이 또 어느 도의 사투리가 독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여기서 리영희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문맥상 바로 영남패권주의와 호남에 대한 왕따와 차별이다. 1970년대 초 텔레비전 드라마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으니 그만큼 박정희 정권 이후 호남에 대한 차별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러한 영남패권주의와 호남에 대한 왕따와 차별은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으로 풀린 것으로 많은 국민들은 여겨왔다. 그래서 2002년 대선에서 국민통합을 위해 노무현 후보를 국민들은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후 국민통합은커녕 오히려 신영남패권주의와 호남차별에 대한 논의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신영남패권주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전국정당화 논리와 더불어 유시민 의원 등이 민주당 분당 때 주장했던 영남의 지역감정이나 호남의 지역감정은 똑같다는 식의 논리에서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자꾸만 정치공학적으로만 접근하여 선거제도 개혁만을 외치고 있고 또 영남 공략을 위해 영남권 낙선자들을 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정치구도 해결에 있어 너무 지나치게 효율성과 시장성만을 앞세우며 영남권 공략을 하려는 것이 문제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영호남 지역감정은 바로 지역간 사회 계층간의 경제력 격차가 오랜 세월을 두고 차근차근 해소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지역주의의 문제는 삼성과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사회경제적 권력을 아직도 가지고 행사하고 있는 영남패권주의 또는 신영남패권주의가 핵심이기 때문에,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피상적이고 한나라당의 반대로 되지도 않을 중대선거구제로의 선거법 개혁에만 매달리지 말고, 권역별 비례대표 확대 등의 선거제도 개혁과 더불어 그동안 차별받고 소외받던 호남지역과 호남출신 인사에 대한 꾸준한 배려와 더불어 호남사람들과 영남사람들 사이의 교류를 확대하는 정책(작은 예를 든다면 영호남 경계선상의 지역을 개발, 기업인사에 있어 호남 출신 인사들에 대한 배려 권고, 미국의 affirmative action(차별철폐조처) 등을 참고하면 좋을 듯)에 보다 더 매진해야 할 것이다.
2005-07-22 17:28

 

[출처] 삼성의 호남차별|작성자 OvercomeWest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7614


미국에서는 일종의 금기처럼 돼 있는 '유대인 비판'의 뇌관을 건드렸다면 이와는 다소 맥락이 다르지만 리영희는 남한 사회의 금기인 '호남 문제'를 정면으로 부각시켰다. 그는 신문 칼럼에서 "호남인들이 '한국의 유대인'으로 억압받고 차별받았다"면서 압제자들인 군부 독재자들과 영남 패권주의자들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스톤은 언론과 권력의 유착을 무엇보다 경계하면서 언론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강조했다. 그는 "워싱턴에서는 정조대를 차야 언론인으로서의 처녀성을 지킬 수 있다. 국무장관이 당신을 초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물어본다면 당신은 이미 끝난 것이다"라고 신문 칼럼에서 썼다. 권언유착과 권력의 언론조작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스톤의 이러한 경고는 권력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스스로 정조대를 벗어 내던지는 언론, 광우병에 대한 시민 대중의 우려를 권력과 손을 맞잡고 '괴담'이라고 생떼를 쓰는 언론, 권력의 아픈 곳을 알아서 쓰다듬어주고, 적당히 '마사지'해서 진실을 왜곡하는 언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겨냥한 것처럼 들린다. 

2001년 편집국 차장 시절 나는 신문의 창간 특집 인터뷰를 위해 리영희를 만났다. 당시 그는 뇌졸중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아 말하는데 불편이 적지 않았는데도 한국 언론의 현실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눈빛도 특유의 형형함으로 되돌아온 듯 했다. 그는 "나는 이 땅의 기자들을 언론인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마땅히 언론사 종사자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지금 기자들은 불의에 맞서는 기백과 진실을 향한 열정 등 언론인으로서 갖춰야 할 본연의 자세를 잃어버린 채 기능주의적 생활인,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기회주의적 인간으로서의 요소만 많이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권.언 합동 비방 캠페인

지역분열과 대립은 경상도 출신의 박정희 장군이 유신독재.영구집권 체제를 결심한 1972년 대통령 선거에서 전라도 출신 정치인 김대중 후보의 강력한 도전을 받은 데서 시작된다. 박정희씨의 득표차가 70만표라고 했지만, 70만 군인의 부재자 투.개표는 부대.영내에서 각군 지휘감 감시하에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전국의 경찰과 행정기관들의 공포분위기에서 조작된 표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승만 정권 이래의 수법이었다. 그러기에 김대중 후보가 "투표에서 이기고 검표에서 졌다"는 당시의 정치 평론가들의 판단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유신독재. 영구집권 체제를 굳힌 박정희 정권은 그 후, 국가권력기관들과 민간 언론기관들을 총동원하여 호남지역의 정체성과 전라도 주민의 인간성.도덕성에 대해 근거없는 중상과 비방의 켐페인을 전개하였다. 박정희로 상징되는 '경상도정권'의 전라도 지역과 그 지역출신에 대한 조직적 차별은 국가적 제도가 되다시피 했다.

경상도 출신들이 독점한 거대한 행정기구와 군.경찰.정보기관에서는 물론, 모든 공공적 성격의 기관들에서 전라도 인들은 악의적인 모욕과 멸시를 받고, 자직적으로 배제되었다. 그것은 마치 19~20세기에 유럽의 퇴폐한 부르주아 지배계층과 그 체제가 자신들보다 우수한 유대인들을 인종적으로 배제하기 위해서 취했던 온갖 비열한 수법들을 방불케 하였다.

유대인들은 진심으로 유럽사회에 동화되기를 원했다. 그럴 수록 유럽 부르주아지는 그들의 배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 인간형을 유대인의 얼굴에 그려붙여다. 나치 독일 권력집단이 유대인의 가슴에 매단 황색 6각의 '비테의 별' 표는 바로 유럽 극우.반공.반인간주의자들이 고안한 흉악한 인간파괴의 상징이었다.

(중략)

남한사회에서 전라도 인들의 가슴마다에는 보이지 않는 '황색 6각 다비테의 별표'가 못질돼 있던 것이다.

차별과 배제 지역 동맹, 한반도 '유태인' 못질

국가의 권력과 돈과 직위와 혜택을 독점한 영남정권은 호남배척의 보조수단으로서 호남 이외의 다른 지역과 구 주민에 약간의 혜택과 지위와 돈과 권력을 나눠어주는 것으로 그들을 동반자라 로 만들었다. 이로서 휴전선 이남의 손바닥만한 땅에서 전라도 인을 멸시.적대시하는 전체 지역의 부도덕한 동맹이 형성된 것이다.

이 동맥지역 주민들은 호남인들이 자기들끼리 또는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의 주변에 뭉치는 것을 가리켜 '전라도 지역주의'라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인과관계의 구조에서 말하자면, 호남지역감정이란 영남인들과 그들의 수혜자 격인 그 밖의 지방인의 "경상도 지역주의"가 강요한 결과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후략)


-----1998년 1월 7일. 한겨레. 리영희의 세상보기. '지역갈등' 매듭 묶은 자가 풀어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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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