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에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영남패권'이 아닌가 싶네요. 영남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적, 경제적 실익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보여지는데요, 한편으론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면서도 때로는 뜨악하는 심정이 되기도 합니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영남지역 출신이 대통령을 하면서 많은 자원이 영남지역에 편중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다고 영남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할 정도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는 더욱 그런 의문이 들고 영남패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지나치게 중앙집중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을 중앙이 임명하던 시절에는 영남 사람이 다른 지역을 장악하는 것이 가능했겠지만 지금이야 전혀 다른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었다고 해서 중앙의 권력이 지방에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중앙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영남패권'이라는 말은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김욱 씨가 쓴 <아주 낯선 상식>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신성 광주'니 '세속 광주'니 하는 용어를 처음 접해본지라 조금 신기했습니다. 저는 단 한번도 광주가 신성하다거나 세속적이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으니까요(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죠). 김욱 씨는 영남패권주의를 정교하게 입증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다양한 정황증거를 통해 영남패권주의는 존재한다고 주장하더군요. 김욱 씨는 가장 핵심적인 영남패권주의의 증거는 삼성을 정점으로 하는 영남부르조아의 패권적 지배구조이며 이 패권적 지배구조가 정계와 결탁해 대한민국 사회를 피라미드식으로 통치하고 있으며 국가정보원, 검찰청, 국세청, 경찰청 등 4대 권력기관을 영남인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삼성이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으로서 대한민국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그렇다고 삼성이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삼성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국가정보원 등 4대 권력기관을 영남이 장악하고 있다는 말도 조금 어폐가 있는 것이 그런 권력기관들은 정권이 바뀌면 자연히 물갈이가 되지 않나요? 물론 말단까지 완전히 바뀌지는 않겠습니다만 핵심적인 보직은 바뀌죠. 그렇다면 국정원이나 검찰 등 권력기관 문제는 비영남 세력이 집권을 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문제는 김욱 씨도 얘기했듯이 현재의 야권도 영남 출신들이 다수의 세를 형성하고 있으니 영남패권주의가 완전히 해소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현재 차기 대통령 후보감들이 한결같이 영남인들이니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이 사라지는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호남인들이 '영남패권주의'를 외치고 분개하는 이유는 단순히 영남이 정치적, 경제적 실익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문제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적으로 김욱 씨도 책에서 영호남의 경제적 격차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이와 비교하면 사소하다면서 오히려 영남인의 호남인에 대한 조롱과 모욕이 더욱 심각한 문제며 5.18의 비극에 무감각한 영남인의 반동적 역사관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경제적 요인보다는 사회적, 심리적 요인이 영남패권주의의 핵심적 본질이라는 것이죠. 충분히 이해가 가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경제적으로 영남지역이 호남지역보다 더 잘사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영남지역이 공업중심지역으로 개발되다보니 농업중심지였던 호남보다는 아무래도 조금 더 경제적으로 풍족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유로 호남이 영남에 분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큰 이유가 영남을 중심으로 한 타 지역의 호남에 대한 편견과 편향된 의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영남패권의 혜택을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장삼이사들도 호남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에 동조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입니다. 실제로 저도 얼마 전에 그런 얘기를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조카가 호남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면서 마땅찮다듯이 얘기를 하더군요. 근데 그 사람은 영남 사람이 아니라 서울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딸도 아니고 조카인데도 불구하고 그러니 자기 딸이 호남 청년과 결혼한다면 결사적으로 말리겠죠. 저도 그 호남 청년을 얼핏 한번 봤는데 인물도 좋고 성실하게 생겼더라구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사람만 성실하면 되는 것 아닌가?"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저는 호남인에 대한 편견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 때 자란 곳이 경남 함양이라는 곳인데요,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함양은 전라도 남원과 인접한 곳입니다. 그래서 장날이 되면 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양으로 와서 장사를 하고 물건을 삽니다. 그리고 함양 사람들과 교류를 했습니다. 저희 집도 장사를 했기 때문에 남원 사람들이 많이 왔었고 아버지와 얘기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당시에는 저도 전라도 말을 제법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부모님은 단 한번도 '전라도 사람들이 어쩌고 저쩌고...'하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아버지로부터 전라도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호남인들에 대해 특별한 편견을 가질 수가 없죠. 다만 사회 생활을 하면서 호남에 대한 편향된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단지 고향이 경상도라는 이유로 영남패권주의의 일당이라고 취급을 당하면 열받죠. 게다가 영남패권주의의 혜택을 전혀 받지도 못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더 열받습니다. 하지만 호남이 오랫동안 타 지역으로부터 경원시 당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냥 조용히 듣고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해 침묵합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영남패권주의를 비판할 때 저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영남패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을 알았으면 하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