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은 없다'는 예측을 하시고, 그 근거를 나름 설명하신 교수님이 계십니다.

페친 중에도 몇 분 들으신 분들이 있지만 저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단지 페북에서 말하기는 적당치 않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한번 제 생각을 풀어볼까 합니다(비슷한 뉘앙스의 얘기는 좀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교수님은 '차기 대선은 없다'고 예측하셨지만 제 워딩은 좀 다릅니다. '박근혜 정치의 결말은 친위 쿠데타일 수밖에 없다'입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몇 가지입니다.

1. 박근혜 정치 이벤트의 비가역성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특별히 내세울만한 업적이 없다는 것은 보수 성향 인사들도 대부분 인정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던진 승부수를 고르라면 저는 *통합진보당 해산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개성공단 폐쇄 등이라고 봅니다. 평가야 어찌됐건 이러한 정치적 행보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치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런 정치적 행보에 대해 찬반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 또는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철학 등을 봤을 때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이후에도 저런 조치가 계속 지속될 수 있을지는 극히 회의적입니다.

이것은 김무성 등 새누리당 정치인이 집권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봅니다. 반기문이 집권한다면 그나마 그럴 가능성이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위태롭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이후 여론이 저러한 조치들에 대해 공세를 펼치게 되면 반기문 정도의 배짱으로는 버텨내기 어려울 겁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모르겠느냐 하는 겁니다. 결코 모를 수가 없습니다. 어떤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이후 순식간에 뒤집히고 무효화될 조치를 정치적 손해를 무릅써가면서 밀어붙이겠습니까? 자신의 임기 이후에도 그러한 정치적 선택이 계속 생명력을 가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결국 모순이 발생합니다. 임기 끝나면 그 조치 전부 나가리 vs 내 임기 끝나도 저 조치들은 비가역적. 어떤 게 맞을까요? 이러한 모순을 통일하는 조치는 자신의 임기가 끝나더라도 자신의 조치가 유효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게 대통령 선거의 실종이라는 모습이 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형식이 어떤 것이건 내용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집단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상징성과 권위를 계속 현실 정치에 남겨두는 방식의 친위 쿠데타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각제 개헌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되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2. 미국의 정책적 요구

대한민국이 미국의 신식민지 국가라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미국이 대한민국의 운명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나라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선택들이 임기 끝나면 사실상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툥령이 이것을 모를 리 없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조치를 밀어붙였다는 것은 그런 위협 요소들을 무력화시킬만한 어떤 근거,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막강한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다 해도 그런 조치들을 단독으로 추진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의 최대 배후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동의와 조율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조치들입니다.

지난 20여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에 걸쳐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중국 포위망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포위망은 차근차근 단계별로 완성도를 높여왔다고 봅니다. 동남아 국가들에서 차츰 친중정권이 물러나고 친미정권이 들어서고 있는 것도 그러한 변화의 일환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포위망을 완성할 경우 그를 활용해 중국에 결정적인 압력을 가할 지렛대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 지렛대가 한-일-미로 이어지는 일종의 수직분업 구조라고 봅니다. 일본이 병참기지 및 사령부 그리고 한국이 최전방 선봉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를 완성하고 나아가 그 기능을 가동할 경우 하나의 전제가 필요합니다. 87년 이후 영향력을 확대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주류의 위치까지 넘보고 있는 좌파 세력(친노 포함)의 영향력을 일정한 수준으로 묶어두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일련의 정치적 도박(통합진보당 해산, 역사 교과서 국정화, 개성공단 폐쇄)은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때만 그 일관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조치가 선행되지 않을 경우 미국의 중국 포위망 구축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3. 유승민 의원과 새누리당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의 갈등이 표면화됐을 때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원하는 것이 새누리당 분당 또는 탈당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당시의 새누리당 구조를 그대로 두고 대선까지 정상적인 정치 일정이 진행될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은 명약관화하다고 봤습니다.

전두환이나 노무현 못지않은 정치 보복에 직면할 것은 필연적입니다. 새누리당이 정권을 연장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야당이 정권 가져가는 것보다 새누리당 비박계의 집권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더 끔찍한 악몽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비록 소수라 해도 자신들만의 친위부대를 만들어 독자적인 정치 기반을 만드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사실 지난해 유승민과의 갈등이 불거졌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건 명분을 만들어 탈당을 하고, 소수 친박계 의원 중심으로 TK정당을 만들어 이번 총선에 임했다면 아마 이번 총선의 최대 승리자는 박근혜 대통령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새누리당은 괴멸적 타격을 입고 미니정당으로 전락했을 겁니다. 박근혜당은 더민주당과 원내 제 1당의 위치를 다투었을 것입니다. 안철수 의원의 독자 행보는 불가능했거나 가능했다 해도 훨씬 어려운 처지에 몰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탈당도 분당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김무성이 상황을 읽고 납짝 엎드리는 자세를 취한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타이밍을 뺏었다고 봅니다.

박 대통령은 결국 새누리당이라는 기존 구조 안에서 문제를 풀기로 한 것 같은데 상황은 훨씬 어려워졌습니다. 4.13총선 패배의 책임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함께 짊어져야 하는 모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레임덕은 하루가 다르게 가시화됩니다.

과연 박 대통령이 막다른 골목을 탈출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지만 오히려 이렇게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특단의 대책이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자기 실현적 예언

온라인에서 가급적 이런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은 이런 얘기가 자칫하면 자기 실현적,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어찌됐건 한국이 어떤 형식으로건 또 한번의 헌정중단 사태를 맞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합법의 외피를 쓴다 해도 헌정중단은 한국의 정치와 사회에 매우 중대한 데미지를 가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러한 경로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결국 북-미 관계가 이런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트리거가 될 것 같은데, 북한 내부 상황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판단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베팅하라고 한다면, 북-미 관계의 기본구조는 바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미 몇십 년 동안 구체화되어온 상황이 몇 가지 변수 때문에 변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북미 평화협정 체결도 하나의 카드로 쓰일뿐 상황을 바꿀 수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트럼프가 집권한다 해도 전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상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요소 중심으로 구성해본 것입니다. 심심풀이 노가리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너무 진지하게 반응들 하시면 제가 감당 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