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군사력이 약하여 외침에 제대로 저항을 하지 못하고 임진왜란은 명나라 도움으로 버티고 정묘 병자호란은 치욕적 항복을 하게되다가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조선은 이렇게 군사력이 약했을까요?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했기 때문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무관들의 보직이나 품계는 결코 낮지 않았습니다.

물론 문관을 우대한 것도 사실이지만 무관도 일정부분 학문적 소양이 있었고 무관출신도 고을 수령으로 임용이 되었으며 고위직에 진출할 수도 있었습니다.


조선이 맥없이 외세에게 짓밟힌 것은 기본적으로 군사제도가 부실하고 그 군사력을 유지할 재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세금을 적게 거두었습니다.

토지세가 기본 1할이었습니다.

특산물과 궁궐 관아에서 필요한 공납이 있었고 군역이나 보인이 있었지만 토지세가 아주 약했는데 이것은 양반들에게 아주 유리한 것이었습니다.

양반들은 토지세외에는 조세 부담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양반도 군역을 져야했지만 공부를 하는 유학은 유예를 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향교를 출입하고 서원에 적을 두면서 학생행세를 평생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원시나 진사시에 합격하지 못한 양반들은 지방에 학생부군 신위라고 적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모든 국민들이 제사를 지낼때 쓰는 지방에 학생이 들어가게 된 유래입니다.


조선 전기에 호조의 세수는 30만석입니다.

물론 지방관아의 세수도 계산을 해야하지만 일단 중앙으로 들어오는 세수는 30만석인데 말기 현종때는 10만석으로 줄어듭니다.

그런데 태종때  갑사가 이천명이었고 이들에게 주는 녹봉이 국가 재정의 20%를 차지하였습니다.

갑사는 갑옷과 말을 갖추고 일정한 무예실력을 지니며 국가로부터 과전이나 녹봉과 품계를 받는 직업군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국가 상비군이요 정예병입니다.

세종때로 오면 칠천명으로 갑사가 늘어나서 국가 재정에 심각한 압박요인이 되고 과전도 다 지급하지 못하고 녹봉도 적게 줍니다.

초기에는 양반들도 갑사가 되고 선발도 엄격하였지만 대우가 약해지자 질이 떨어지고 그나마 대립이 성행하게 됩니다.

즉 일반적인 군역이 더 고되고 힘들기에 갑사로 선발이 되어 편하게 군역을 마치려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당시에는 말 한필 가격이 상당하고 갑옷도 비쌌는데 이러한 장비를 자기돈으로 장만을 해야 했기에 경제력이 있든지 없으면 빌려서 근무할때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중 후기로 가면 중앙군이 유명무실해지게 됩니다.

숫자는 있지만 실제 전투능력이 있는 사람은 적고 기병이지만 말이 없는 사람이 다수가 됩니다.

또 갑사를 지원하는 보인이 있었지만 보인 역시 자기 먹고 살면서 갑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제대로 뒷바침이 되지 않거나 도망을 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점을 조정에서도 알고 여러차례 개혁이나 처벌등이 논의되지만 대책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재정문제인데 재정문제를 해결하려면 재력이 있는 양반들이 군역을 지거나 보인 노릇을 하거나  세금을 더 내든지 해야하는데 전혀 그럴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반 상번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울군영이나 변방 또는 수군으로 복무하는 사람들은 몇달씩 농사를 파하고 다녀와야 하는데 여비를 포함하여 모두 자비량입니다.

무기도 말도 갑옷도 자비량이기에 빌릴수 밖에 없고 빌려서 점고때만 넘어가면 그만입니다.

관리들도 알지만 가난한 백성들을 다그쳐보았자 해결이 안되는 것을 알기에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갑니다.


나중에는 군역도 대립이 생기게 되고 결국 훈련받은 병사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고 겨우 내금위 겸사복 우림위등 품계와 녹봉이 나오는 왕실 호위병력 정도만이 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 숫자도 오백명이 채 넘지 않았습니다.

선조때 내금위 군사가 300명이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임진왜란때 그렇게 당하고도 군역법 호포제 대동법을 실시하는 데 100년이 넘는 시간과 논란이 있었습니다.

병자호란때 오랑캐라고 하는 청나라에게 당하고서도 지배층은 자신들이 세금이나 군역을 져서 나라의 국방을 튼튼히 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경지면적이 늘고 인구는 늘었는데 조세 수입은 조선 초기보다 3분의1로 줄어들게 되고 결국 관리들 녹봉이 형식적이다시피 했기에 관리들의 토색질과 부정이 난무하고 녹봉을 주지 못하기에 조정에서도 제대로 처벌을 할 수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된 것입니다.


개간이 되고 경지면적이 늘었고 생산량이 증대되었는데도 국가 수입이 줄어든 것은 은결이 많아졌고 왕실의 궁방전이나 염세 광산등이 내탕고로 들어가고 세도가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토지조사를 일정기간씩 실시해야 하는데 제대로 하지 않았고 토지 생산량에 따른 토지등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데 이게 공정하게 되지 않았고 지배층이 탈세를 했기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조선시대로부터 뿌리가 내린 것들이 많습니다.

사실은 36년 식민잔재 청산보다 500년 조선시대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이나 각계각층에서 지도자로서 대우받을 사람들은 국가나 사회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나를 봐야 할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무런 희생이나 기여를 한적이 없는 사람들이 국가 지도자로 나서거나 정치인으로 또는 각계 지도자로 행세한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