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민족미래연구소(고문 강철구)에서 '한국 사회 지역차별의 구조'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소규모 모임이었습니다만 진지한 분위기에서 발표와 질의 응답이 진행됐고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발제 내용을 다 소개하기는 어렵고, 제가 전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를 약간 보충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영남패권이 한국에서 갖고 있는 절대적인 영향력은 그들이 한국의 경제 개발과 산업화에 기여한 몫의 반대급부적 성격이 강하다.

- 하지만 영남패권의 경제개발 방식은 한국 자본주의의 낮은 생산력 때문에 제한된 자원을 제한된 영역과 지역에 집중 투입하는 방식이었고, 그로 인해 당근보다는 채찍을 동원해서 체제를 방어해야 했다.

- 그 채찍은 물리적 폭력과 상징적 폭력으로 구성된다. 물리적 폭력을 대표하는 것이 1987년 이전 군사독재 세력이며 87년 체제 이후 합법적인 선거에 의한 권력 쟁취와 유지를 위해 동원한 것이 상징적 폭력 즉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이미지 조작이다.

- 상징적 폭력은 선거에서 백전백승하기 위한 무기로 대한민국의 모든 대립구도를 호남 vs 반호남의 구도로 전환한다. 이 프레임에서는 호남을 악마로 만들기만 하면 영남패권이 무슨 짓을 해도 정의의 편으로 포지셔닝할 수 있게 된다.

- 이러한 호남 고립구도의 완성이 김영삼의 삼당합당이며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은 제2의 삼당합당 시도이다.

- 하지만 영남패권은 이제 한국 경제개발의 주역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영남패권을 구성하는 3가지 축, 즉 고위관료-관치금융-재벌이라는 구도가 정실 위주이며, 폐쇄적이고, 극단적인 근친상간 성격으로 인해 시스템의 저열화(低劣化)를 낳기 때문이다.

- IMF 이전 대한민국 재벌들이 대부분 글로벌 기준으로 2~3류였다가 IMF를 거치면서 대거 선두 그룹으로 점프업한 이유가 뭘까? 한두 기업의 현상도 아니고, 다른 나라의 IMF 사례를 봐도 이상 현상의 하나이다.

- 결국 강고한 영남패권의 이너서클에 역사상 최초로 김대중과 호남 정치세력이라는 이질적인 집단이 들어오고, 그런 이질집단으로 인해 과거와 같은 정실, 끼리끼리 봐주기, 땅짚고 헤엄치기 등이 불가능해졌고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혁신에 나선 것이 그 원인이라고 본다.

- 기업의 속성은 본질적으로 합리성 추구이다. 그래야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신은 기업들의 숙명이다. 이것이 사회 전체의 합리성을 높이는 중요한 동력이다. 즉, high risk, high return이어야 한다. 개별 기업은 망해도 이것이 전체 경제를 살리는 힘이다.

- 하지만 대한민국 재벌들은 고위공무원-관치금융과의 결탁이라는 온실 안에서 경쟁을 배제하는 시스템으로 성장해왔다. 이런 환경에서는 혁신하는 기업만 홀로 망한다. low risk, low return이라는 악순환 구조가 자리잡는다.

- 김대중 정권이 끝나고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갈수록 즉 집권층 내부의 영남패권 색깔이 강해질수록 대한민국 경제의 경쟁력은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면세점 면허 파문이 대한민국 재벌들의 비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 결국 영남패권의 극복은 호남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이다. 이걸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다. 영남패권과 호남차별은 모순의 양 측면 즉 동전의 양면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호남이 영남패권을 극복해야 호남이 살고 대한민국이 산다.

- 호남이 역사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좌파 편향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민주화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자기 몫을 주장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마이너리티를 벗어날 수 없다.

- 단적으로 말해서 호남은 부국강병의 가치, 영남패권보다 훨씬 진보하고 개선된 방식으로 한국 경제를 업그레이드하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규제의 혁파이고 작은 정부이며 자유적 질서의 고양이다.

- 박근혜 정권이 규제완화를 외치고 노동개혁을 외치는 것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을 비판해야 한다.

- 좌파들이 한국 사회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활동하는 것은 필패 전략이다. 힘없는 민중들의 뼈아픈 한탄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깊이 새겨야 한다. '떼법'에 의지하는 태도를 버리라는 것이다. 법치가 얼마나 오랜 투쟁을 거쳐 얻은 역사적 진보인지 깨달아야 한다.

등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