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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포먼과의 역사적 대결을 위해 자이르에 도착한 알리.

1974년 포먼과의 역사적 대결을 위해 자이르에 도착한 알리.ⓒAP/뉴시스

편집자주/미국의 전설적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3일 숨졌다. 향년 74세. 알리는 놀라운 권투선수였을 뿐만 아니라, 1967년 베트남전에 반대하여 징병을 거부한 탓으로 챔피언을 박탈당했고, 노예의 후손으로 물려받았던 이름인 카시우스 마르셀루스 클레이 주니어를 스스로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던 인권운동가이기도 했다.


울림. 그저 외침이 아닌 울림.

무하마드 알리의 사망으로 이제 미국은 다시 그 전설적인 조 프레이저와 조지 포먼과의 명승부들, 그리고 인종차별주의와 베트남 전쟁에 대항했던 그의 ‘외침’들을 회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중요한 운동선수였던 무하마드 알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인물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만들어 낸 울림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야말로 알리에게서 정치적 이빨을 뽑아버리고 그를 그저 무기력한 대중 소비용 아이콘으로 격하시키려는 시도로부터 그를 지켜낼 수 있을 수 있는 최선이 될 것이다.



알리에게서 정치적 이빨을 뽑아내지 말라

1967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베트남전 반대를 표명하고 나섰을 때, 주류언론은 그를 비판했고 그의 보좌관들 역시 “대외”정책에는 관여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킹은 굽히지 않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하마드 알리가 말했습니다. 흑인이든지, 황색인종이든지, 가난한 자이든지 우리 모두는 같은 억압적 체제의 희생자들입니다.”

넬슨 만델라는 자신이 로벤 섬에 수감되었던 시절, (인종차별의) 벽들이 언젠가 허물어지는 날이 올 것이라며 그를 격려했던 알리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한 바 있다.

미국의 육상선수 존 칼로스와 토미 스미스가 멕시코 시 올림픽 스타디움 시상식에서 불끈 쥔 주먹을 하늘로 치켜 올렸을때(1968년 멕시코 시티 올림픽에서 200 m단거리 우승) 그들의 요구 중 하나는 “무하마드 알리의 타이틀을 복원시키라(알리는 베트남전 병역거부로 선수자격과 챔피온 타이틀을 박탈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알리는 “저항하는 흑인 선수의 상징”(the warrior-saint of Black Athlete’s Revolt)이었다.

1965년 알라바마 로운데스 카운티에서 학생비폭력 조정위원회 (Student Non-Violent Coordinating Committee:SNCC) 회원들이 독립정당을 창설했을 때, 이 신설 단체는 처음으로 검은 표범 심볼(블랙팬더당을 상징하는)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 바로 아래에는 챔피언 알리가 했던 말을 슬로건으로 딴 “We Are the Greatest(우리는 가장 위대하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다(알리는 64년 당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소니 리스턴을 이겨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후 “I am the greatest”를 외쳤다.)

여성 프로 테니스 선수 빌리 진 킹이 미국 운동계 내부의 남녀평등을 위해 싸울 때 알리는 그녀에게 “빌리 진 킹, 당신이야말로 여왕입니다”라고 독려했다. 빌리진 킹은 알리의 이 한마디가 큰 용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내 동족의 진정한 적은 바로 이 나라 안에 있다”

어떻게 알리가 그 같은 커다란 진보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간단하게 답하자면 ‘알리가 미국 정부에 맞서 싸웠고, 승리했다’ 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스포츠와 폭력을 숭배하고, 흑인을 범죄시하면서도 흑인운동 선수를 우상화하는 미국 문화에서 무하마드 알리의 진정한 업적은 강인함이 무엇인지를 다시 정의하고, 그러한 강인함과 용기가 어떻게 대중적으로 결집될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었다.

거리에서 회자되는 챔프(알리의 별칭)의 어록들, 그리고 그가 사각의 링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용기란 단지 링에서 그가 소니 리스턴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게 해주는 것 이상임을 보여주었다. 그가 말하는 용기는 그 대가가 무엇이 되든,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행동과 말로써 간단하지만 위험한 교훈을 가르쳤다. “진짜 남자”라면 평화를 위해서 싸워야 하며, “진짜 여자”라면 목소리를 높이고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후에 언론인 브라이언트 검벨은 “무하마드 알리는 두려워하기를 거부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라고 말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알리의 어록은 “내가 바위도 병원으로 보냈다. 벽돌도 내 손에 끝장났다. 내 앞에서는 의학도 병이 난다( I hospitalized a rock. I beat up a brick. I’m so bad I make medicine sick)” 류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알리의 모습은 그가 베트남전 참전을 거부함으로써 선수자격과 타이틀을 박탈당했을 때다. 당시 알리는 자신의 고향인 루이빌에서 흑인들을 위한 공정한 주택정책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해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내 고향 루이빌에서는 소위 우리 ‘니그로’ (흑인비하‘검둥이’라는 뜻의 비속어)들이 개 취급을 받고 기본적인 인권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왜 그들은 나에게 군복을 입고 1만 마일 떨어진 곳으로 가서 베트남에 사는 갈색 인종들에게 폭탄을 떨어뜨리고 총알을 쏘라고 요구하는가?

나는 백인 노예주들이 전세계 유색인종들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려고 강요하고 있는, 내 고향에서 만 마일 떨어진 곳의 가난한 나라로 가서 사람들을 학살하고 불태우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바로 그 같은 악이 종식되어야 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참전 거부 때문에 내가 이제 수백만 달러를 손해 보게 될 거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말했고 이제 다시 말할 것이다.

내 동족의 진정한 적은 바로 이 나라 안에 있다.

나는 자기 나라의 정의, 자유, 평등을 위해 싸우는 모든 이들을 노예로 종속시키고자 하는 음모에 나 자신을 도구로 이용당하게 함으로써 내 종교, 내 동족, 나 자신을 욕보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전쟁에 나가는 것이 이천 이백만 내 동족의 자유와 평동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라면 그들은 나를 징집할 필요도 없다. 나는 바로 다음 날로 전쟁터로 나갈 것이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 싸운다면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

나를 감옥에 가두어 넣는다면 뭐 어떤가? 우리는 이미 지난 40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는 단순히 블랙파워의 선언이 아니다. 이는 모든 억압된 민족을 결집하는 전 지구적 저항이자 국제적 연대의 선언이다. 이는 미국 밖의 전쟁을 미국 내 흑인, 갈색인종, 빈곤층에 대한 공격과 연결시킨 선언이며 당대 사회가 부여한 최고의 승자 자리에 올라선 인물, 즉 챔프에게서 나온 선언이었으므로 그 반향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정치적 입장 때문에 그를 증오한 이들은 미국 주류언론과 우파들만이 아니었다. 자유주의 언론인들과 주류 시민운동권도 그가 ‘네이션 오브 이슬람(Nation of Islam, 말컴엑스가 활동했던 흑인분리운동단체)’의 일원이며 린든 존슨 대통령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을 못마땅해해서 등을 돌렸다.



걱정해야 할 사람은 그를 제외한 우리 모두다

그는 인종차별주의를 종식할 것을 요구하는 신진 운동세력과 초창기의 반전 운동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60년 당시에는 반전운동과 인종차별운동은 별개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이들의 우상인 헤비급 챔피언이 이 두 운동을 하나로 묶어서 사람들 앞에 제시한 것이다.

시인 소냐 산체스는 당시 알리가 일으킨 파장과 감동을 가슴 뭉클하게 묘사한다. “지금 그때 감정이 어땠는지 묘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죽어 돌아오는 미국병사들의 다수가 흑인 젊은이들이었던 그 전쟁에 징집을 거부한 유명인사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름답고, 유머 넘치며, 시적인 젊은이가 당당하게 일어나 ‘노’를 외친 것이다. 한 번 상상해보라. 헤비급 챔피언이자, 너무나 매혹적인 인물이 링 밖으로 나와 정치권력에 도전장을 던지고 굳건히 선 모습을. 그의 메시지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그가 전하고자 했던 진정한 메시지- 즉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를 가슴에 새기고자 한다.

알리의 인간적 복잡함에 대해서는 훨씬 자세한 글에서 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또 그래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말컴 엑스와의 결별, 1970년대 이후 그의 비정치화, 그의 투병 말기에 전쟁광들이 그를 무대 소품처럼 이용하려 했던 상황 들에 대해서는 자세한 진실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중요한 유산은 1960년대 당시의 두려움에 굴복하기를 거부했던 모습이다. 훗날 그는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영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틀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한 모든 행동은 양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도자가 되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저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지금 세대까지 전해오는 그의 유산은 그가 한 싸움들이 아니라 그가 남긴 울림,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울림이 챔프의 이름을 우리 세대를 넘어 후대까지 이어지게 할 것이다.

알리가 징집을 거부했던 해인 1967년, 전설적인 농구선수 빌 러셀이 했던 다음 말은 옳았다. “나는 무하마드 알리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이 없다. 걱정해야 할 사람들은 그를 제외한 우리 모두이다.” 바로 지금 우리세대에 그대로 적용되는 지적이다.


http://www.vop.co.kr/A00001032075.html


다큐멘터리 ‘우리가 왕이었을 때’(When We Were Kings)의 한 장면. 1974년 ‘정글의 혈전(The Rumble In The Jungle)’이라 불린 조지 포먼과의 세기의 복싱 대결을 위해 아프리카 자이르 킨샤사를 방문한 무하마드 알리.

다큐멘터리 ‘우리가 왕이었을 때’(When We Were Kings)의 한 장면. 1974년 ‘정글의 혈전(The Rumble In The Jungle)’이라 불린 조지 포먼과의 세기의 복싱 대결을 위해 아프리카 자이르 킨샤사를 방문한 무하마드 알리.ⓒ스틸컷

무하마드 알리가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은 무하마드 알리의 죽음을 ‘복싱 영웅의 죽음’이라며 추모했다. 하지만 그는 복싱 영웅을 넘어 흑인의 영웅이었고, 미국의 영웅이었으며 전 세계의 영웅이었다. 가장 훌륭했던 복서이면서 동시에 흑인 민권 운동의 상징이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엔 징집 반대, 양심적 병역거부로 징역 5년 선고 받았고 세계챔피언 박탈당했다. 하지만 그는 7년 뒤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다시 탈환하면서 진정한 영웅으로 떠올랐다.

알리는 무슬림 신자였다. 미국내 무슬림 종파 가운데 하나로 흑인의 긍지와 흑인의 권력, 그리고 자기 발전을 강조하는 흑인 조직이었던 ‘이슬람네이션’의 일원이었다. 무슬림 신자가 된 뒤에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네이션 지도자 엘리야 무하마드에게서 ‘무하마드 알리’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 알리는 1964년 챔피언에 오른 뒤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대표해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이가 흑인 복서에 무슬림이고, 더구나 흑인민권주의자라는 사실은 미국 사회에 충격이었다. 심지어 흑인 복서인 패터슨이 “블랙 무슬림에게서 타이틀을 빼앗아 미국에 주겠다”고 대결을 신청할 정도였다.

하지만 알리는 이런 모든 도전을 물리치고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패터슨을 “흰둥이 미국놈”이라 부르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그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흑인들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 경기에 대해 흑인운동가 엘드리지 클리버는 “사상적 측면에서 볼 때 흑인혁명의 정신적 성취를 반영하는 전환점이 되었다"며 “독립적 흑인이 굴종적인 흑인을 이길 수 있다는 상징적인 승리였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구세계에 대한 신세계의 승리, 어두운 무덤에 누워있는 나사로를 비추는 생명의 빛이었다”고 극찬했다.





▲ 알리의 복싱이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역시 쇼맨십이었다. ⓒ 게티이미지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4일(한국시간) 향년 7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오랜 기간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이던 알리는 지난 3일 새벽 폐렴 증세로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 병원에 입원, 잠시 상태가 호전되는 듯했다. 하지만 같은 날 밤 상태가 악화되면서 산소 호흡기와 생명 보존장비를 착용하게 됐고, 그 후 몇 시간 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

모두의 염원에도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챔피언을 향해 전 세계가 추모의 메시지를 쏟아냈다.

알리와 숱한 명승부를 펼쳤던 조지 포먼은 영국 'BBC' 인터뷰에서 "알리를 그냥 복서라고 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은 일"이라며 "알리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했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이자 유력 정치인인 매니 파퀴아오는 성명을 통해 "위대한 인물을 떠나보냈다"며 "복싱이 알리의 재능으로 혜택을 봤다고 하지만 그것은 인류가 그의 인간성에서 본 혜택에는 비할 바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복싱 프로모터로서 숱한 빅매치를 성사시킨 돈 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위대한 자, 사람들의 챔피언인 알리의 정신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년의 복싱 스타 한 명에게 보내는 추모의 메시지라고 보기에는 무게감에서 분명한 차이가 느껴지는 애도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알리를 말할 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레이트(Great)다.

알리는 언젠가 방송 카메라 앞에서 ‘나는 가장 위대한 사람(I am the greatest)’이라고 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그가 타계한 지금에 와서 알리의 그 한마디는 알리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됐다.

우선 복서로서 알리는 복싱 역사상 그 어떤 선수보다 위대한 선수였다.

애지중지하던 자전거를 훔쳐간 도둑을 잡아 혼내주려는 요량으로 복싱을 배우기 시작한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흑인 소년이 세계 복싱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복서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추어 선수로서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프로복서로 세 차례 헤비급 세계타이틀을 차지했으며 19차례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최고의 복서가 됐다. 그의 프로 통산 전적은 56승(37KO) 5패.

알리가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등 헤비급 역사에서 ‘전설’로 통하는 선수들과 벌인 숱한 명승부는 그가 활동하던 1960-70년대로부터 50~60년이 흐른 지금도 복싱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복싱에서 가장 무거운 체급인 헤비급 복서로서 경량급 선수를 연상시키는 경쾌한 풋워크와 빠른 몸놀림, 그리고 속사포처럼 터져 나오는 빠르고 날카로운 펀치는 가히 일품이었다. 알리는 자신의 명언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말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선수였던 셈이다.

알리의 복싱이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역시 쇼맨십이었다.

경기 중이나 인터뷰 중이나 상관없이 ‘슬래쉬 토크’를 내뱉고, 경기 중에는 턱을 들고 안면 커버링을 내린 채 상대에게 도발하고, 상대가 공격해 오면 링에 몸을 기댄 채 상하 좌우로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모두 피한 뒤 한 순간 빈틈을 발견해 일격에 상대를 쓰러뜨리는 ‘알리 스타일’의 복싱은 그 자체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다.

알리는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프로스포츠 선수가 가져야 할 모든 재능을 타고난 선수였고, 알리의 복싱은 오랜 기간 이어져온 기존 복싱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기 충분한 것이었다.

알리의 위대함은 복싱에 머무르지 않았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알리는 복싱에서 보여준 것 이상의 위대함을 보여준 인물이다. 알리는 오래 전 노예제도가 폐지됐음에도 흑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던 미국 사회에 온몸으로 맞선 인권 운동가였고,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고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했던 반전 주의자였다.

알리는 로마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금의환향 한 이후 미국의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흑인이란 이유로 입장 거부를 당하자 올림픽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에 집어 던져버리고 프로 복서로 전향했다. 이때 알리는 ‘더는 검둥이로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그는 "노예의 이름을 버리겠다"는 신념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본명인 캐시어스 클레이 대신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어떤 복서는 알리와의 대전을 앞두고 ‘나는 알리가 아니라 캐시어스 클레이와 싸우겠다’고 말했다가 경기에서 알리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알리에게 ‘내 이름이 뭐라고? 이 멍청아’라는 소리를 쉴 새 없이 들어야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1960년대 알리는 흑인 인권 운동에 적극 동참했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전 거부로도 고초를 겪지만 이를 기꺼이 무릅썼다. 현역 입영 대상자였던 알리는 휴스턴의 신병 집결지에서 무하마드 알리 대신 호명된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에 끝내 대답하지 않는 대신 "나는 이슬람교 성직자로서 미 육군 입대를 거부한다"며 징집을 거부했다.

▲ 복싱선수로서, 흑인 인권과 흑백 평등, 그리고 세계 평화를 온 몸으로 실천한 인간으로서 알리를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는 ‘그레이트(Great)’다.ⓒ 게티이미지


그리고 이후 미국 스포츠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징집 거부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국내에서 흑인들이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데 왜 그들은 나로 하여금 군복을 입고 베트남까지 가서 싸우기를 원하나. 나는 당신들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챔피언이 되겠다. 베트콩은 우리를 검둥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

알리의 인터뷰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는 WBA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하는 한편, 미국 법에 따라 5년의 징역, 그리고 3년간의 선수자격 박탈을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끝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내 모든 족쇄를 스스로 풀어낸 알리는 링에 복귀해 다시 최고의 복서, 최고의 챔피언의 자리를 되찾는다.

은퇴한 이후에도 알리는 전쟁 중단과 세계 평화를 호소하면서 무려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2000만 끼가 넘는 식사를 제공했고,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는 파킨슨병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성화 최종주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애틀란타 올림픽 남자농구 미국과 유고의 하프타임 때 IOC 위원장은 무하마드 알리에게 그가 오하이오 강에 버린 금메달을 다시 수여했다.

복싱선수로서, 흑인 인권과 흑백 평등, 그리고 세계 평화를 온 몸으로 실천한 인간으로서 알리를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는 ‘그레이트(Great)’다



http://www.dailian.co.kr/news/view/575560/?sc=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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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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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3 1451
16879 정치 [책과 삶]‘영남 없는 민주화’ 당연시해온 진보의 이중잣대 통박 imagefile
원숭이장사꾼
2016-06-13 1452
16878 정치 영남토호 몇 분들
id: 위키릭스위키릭스
2016-06-12 1438
16877 시사 안티노님은 답변하시기 바랍니다 6
id: 미투라고라미투라고라
2016-06-11 1486
16876 사회 전국 성폭력 위험 동네 부산 1,2등 대구 7등
id: 흐르는 강물흐르는 강물
2016-06-11 1422
16875 사회 경상도 언론 정말 이상하긴 하네요 57
id: 미투라고라미투라고라
2016-06-11 1811
16874 기타 참 대단들 하십니다. - 안티노님 관련.. 18
id: 겟살레겟살레
2016-06-11 1598
16873 사회 이 사람들은 경상도 들먹이는 것도 모자라서 서울도 들먹이시네. 9 imagefile
id: 위선주의타파위선주의타파
2016-06-10 1587
16872 정치 윤창중, "노무현 억울함 나도 느껴"
id: 위키릭스위키릭스
2016-06-10 1496
16871 정치 이해찬에게 이용당한 반기문
id: 위키릭스위키릭스
2016-06-10 1473
16870 사회 버스기사들 지적 장애 여고생 집단 성폭행하고 출산까지 1
id: 흐르는 강물흐르는 강물
2016-06-10 1463
16869 정치 6월 10일, 6월항쟁 그 때 그 시절의 신명을 다시 일으켜야 1
정중규
2016-06-09 1436
16868 정치 20대 국회 운영은 국회 원 구성 협상처럼 국민의당에 의해 주도될 것
정중규
2016-06-09 1433
16867 경제 한국 사회 지역차별의 구조 3
id: 미투라고라미투라고라
2016-06-09 1310
16866 시사 지역주의적 파시즘을 정당화하는 전라도 언론 등은 자정되었을까? 57
안티노
2016-06-09 1616
16865 시사 ' 여교사 성폭행' 둘러싼 괴담과 진실은? 1 image
id: 夜의 走筆夜의 走筆
2016-06-09 1249
기타 백인패권주의...차별에 펀치를 날린 무하마드알리 image
id: 夜의 走筆夜의 走筆
2016-06-0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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