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남은 ‘한국 민주화’의 주체로 보지 않는가?

저자 김욱은 전작 『아주 낯선 상식』에서 ‘호남(이라는 지역 관념) 없는 개혁’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중심으로 한 논의로써 영남패권주의를 본격 비판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에 이어, 이번 『아주 낯선 선택』에선 4·13 총선 결과를 토대로 ‘영남(에게는 아무런 의무도 책임도) 없는 민주화’를 당연시해온 개혁진보진영의 불공정과 위선을 통박한다. 그저 ‘호남’에서 ‘영남’으로 시선만 옮긴 이 단순한 변화를 통해, 저자는 그간 ‘호남과 야권분열’ 현상에만 골몰한 나머지 너무 익숙해서 놓쳐온 ‘영남과 여권결집’ 현상의 정체와 의미를 놀라운 방식으로 재발견케 해준다.

‘영남 없는 민주화’라는 정치적 면죄부
‘나라를 팔아먹어도 새누리당을 찍는다’는 영남의 한 아주머니가 화제로 떠올라도, “유권자의 35%는 나라를 팔아먹어도 새누리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발언까지 나왔을 정도임에도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조차 영남 중심의 새누리당 지지층에게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저 책임은 야권 지지 유권자들에게만, 특히 지역적으로는 ‘민주성지’ 호남에게만 집중적으로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민주개혁세력 내에 만연한 ‘영남 없는 민주화’의 한 모습이다. 이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한국 민주화의 달성은 영남 유권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로지 반새누리당 진영이 어떻게 잘 뭉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니 호남의 압도적인 반새누리당 몰표는 이제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당연히 계속되어야 한다. 만약 분열로 인해 새누리당이 집권한다면? 그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역사적 죄’를 저지른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민주화운동 주류 역사 속에서 영남패권주의 독재권력을 지지하는 영남인들을 직접 타격대상으로 삼는 민주화논리를 보지 못했다. 언제나 문제는 그 권력을 지지하는 영남인과 분리돼 추상적으로 허공에 떠 있는 독재권력일 뿐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그 독재권력을 패권적으로 지지하는 여권결집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독재권력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야권분열이 문제였던 것이다. (…) 도대체 호남 등 민주세력이 분열해 새누리당이 아닌 이 당이나 저 당에 투표하는 역사적 죄가 영남 등 패권세력이 결집해 일편단심 새누리당에 투표하는 역사적 죄보다 어떻게 더 클 수가 있단 말인가?! (―본문 169쪽)

부정의: 영남과 호남에 대한 이중잣대
‘영남 없는 민주화’ 이데올로기가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이 지난 4·13 총선이었다. 야권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하면서, 대다수의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은 ‘퇴행적인 지역주의’의 부활이란 비난을 쏟아냈다. 선거 후 일각에서는 ‘호남 개새끼론’까지 등장했다. 선거가 예상을 깨고 야권의 승리로 끝났음에도 야권분열의 책임을 호남에 물은 것이다.

(만일 선거가) 야권의 참패와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고 가정해보자.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부인할 수 없는 큰 책임을 뒤집어써야 할 주체는 분열적 투표를 한 호남이다. 대한민국에서 ‘(출신) 지역적!’으로 오직 호남만이 독재를 막아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 호남이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국민의당을 반민주적으로 지지했으니 분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이 호남에 옭아매놓은 ‘신성광주’의 숙명이자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다.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세력의 민주주의적인 논리인가? (―본문 25쪽)

‘영남 없는 민주화’ 이데올로기가 부정의한 이유는 이렇게 영남과 호남의 투표를 전혀 다르게 대하기 때문이다. 호남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몰표를 요구하면서, 영남에는 반민주세력 지지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모순. 왜 영남은 어떤 정치행위를 하든지 괜찮고, 호남만이 민주주의의 ‘성지(聖地)’가 되고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 이 자체가 한국 정치사회 구조에 자리한 영남패권주의의 증거라는 것이다.

야권분열의 책임, 즉 야권에 표를 분산시켜 투표한 유권자의 책임(주로 호남정치인과 호남유권자가 그 대상이다)을 묻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수십 년 영남패권주의 역사 속에서 여권, 즉 새누리당 계열에 표를 결집시켜 투표한 유권자의 책임(주로 영남정치인과 영남유권자가 그 대상이다)을 물은 적이 없다. 이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책임을 새누리당을 찍는 영남유권자가 아닌 비새누리당을 찍는 호남유권자에게 묻는 적반하장의 영남패권주의 이데올로기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본문 57쪽)

위선의 정치: 대의명분에 감춰진 이익
저자는 현재 친노가 주류인 민주세력이 즐겨 내세우는 민주/반민주의 구도가 위선이라고 의심한다. 그들은 새누리당이 반민주세력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표를 몰아줘 새누리당 집권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만약 새누리당이 정말로 반민주세력이라면 ‘민주(선)/반민주(악)’ 전선을 계속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새누리당이 한국 정치계에서 사라지도록 싸워나가야 마땅하다. 그런데 친노 등의 민주세력에게는 그럴 의지가 없다는 건 노무현 때의 경험이 잘 보여준다.
저자가 노무현의 두 발언, “[한나라]당의 역사성과 정통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대타협의 결단으로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정치가 제대로 된다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대산맥이 계속 유지돼 가야 한다”를 거듭 인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때 이미 노무현은 한나라당의 민주적 정통성·역사성을 인정했다. ‘한나라당 해체’라는 민주개혁세력의 ‘최대강령’을 포기하고, 한나라당을 정치적 파트너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을 따르는 친노는 지금 한나라당의 법통을 이어받은 새누리당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민주개혁세력의 단결과 호남의 몰표를 요구한다. 이들은 한나라당을 인정한 노무현을 부정하든지, 새누리당을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든지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 민주세력에게 새누리당은 민주주의의 적인가, 함께 정치를 해나가는 파트너인가? 민주주의의 적이라면 새누리당의 장기적인 소멸을 위해 실제로 노력하며 그 지지기반인 영남 유권자들에게도 새누리당의 반민주성을 설득해내야 한다. 정치 파트너라면 ‘새누리당을 이기는 게 민주주의를 위하는 일’이라며 표를 요구해선 안 된다. 그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대의명분으로 포장하는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

‘영남 있는 민주화’ 쟁취, 그리고 제도 투쟁
전작 『아주 낯선 상식』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많은 오해도 받았다. 이 책에서는 그런 오해에 대한 명확한 해명 또한 담고 있다. 가장 주된 오해는 ‘호남 세속화’ 개념에 대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호남도 이제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자는 주장으로 오해했다. 그렇지 않다. ‘민주/반민주’라는 대립 구도에서 반민주적인 새누리당을 물리쳐야 하는 건 호남의 ‘신성한’ 의무이니, 야권의 대표정당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몰표를 바치라는 게 바로 ‘호남 신성화’다. 이에 대해 ‘세속화’란 더불어민주당이든 국민의당이든 어떤 당이든지 간에, 위선적인 대의명분과 호남에 대한 겁박을 내세워 호남몰표를 획책하는 행위를 거부하자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을 호남 기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정치공학으로 이해하는 이들도 많았다. ‘21세기 평민당 프로젝트’ 운운한 것이 그런 예의 하나다. 그러나 저자가 문제로 삼는 건 ‘영남 없는 민주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호남에만 민주화에 대한 신성한 책임을 지우다가(‘민주주의의 성지’) 그에 어긋나는 모습을 보일 때는 고립된다며 겁박하고 비난하는(‘호남 개새끼’) 민주개혁세력의 위선이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원하는 건 단기적인 정치공학이 아닌 항구적인 제도 변화다. 호남만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하는 제도가 아닌, 영남의 패권적 결집을 해체시킬 수 있는 제도로의 변화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아직 민주화되지 못한 영남을 어떻게 민주화시킬 것인지, 즉 그들의 새누리당으로의 결집을 어떻게 저지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영남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특히 호남의 일당독재체제를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영남 있는 민주화’의 쟁취를 위해 저자는 2017년 대선 및 개헌과 관련한 5가지 경우의 수, 즉 ① 현행 대통령선거제도를 전제한 ‘후보단일화’ ② 현행 대통령선거에서 결선투표제만 도입하는 경우 ③ 독일식 비례대표 내각제 개헌 ④ 이원정부제 개헌 ⑤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로 여소야대 정국이 지속될 경우에 따른 대응방안까지도 꼼꼼히 따져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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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