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22일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네요.



짐작하시겠지만 두어 달 전에 쓴 이 글을 다시 가져온 것은 최근 심각한 파장을 불러오고 있는 흑산도 초등학교 여교사 윤간 사건 때문입니다. 가해자들이 그 학교 학부모라고 하더군요.

사태는 예상한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흑산도와 신안군 전체가 도마위에 올랐고, 호남 지역과 호남 출신들에 대한 폄하와 모욕도 마치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것은 호남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의 영향이 큽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사태에 대해 제 고향 호남의 편을 들어서 이른바 쉴드라는 것을 하고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이 문제에 얽힌 이슈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상상 초월하는 엽기적인 범죄는 그것대로, 호남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는 그것대로 대응해야 합니다. 지금 호남에 대한 혐오에 직접 대응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섞어서는 안되는 사안끼리 묶는 결과가 되기 쉽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링크한 글과 같은 문제의식 때문입니다. 농촌으로 귀촌했을 때 여성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민들이 겪기 쉬운 문제들이 심각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저개발의 문제입니다. 이 저개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기반에서 출발하지만 현상적으로는 문화와 관습, 시민적 상식 등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이것은 경기도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농촌 심지어 서울 강북 변두리 지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호남에서 이런 현상이 더 자주 나타난다면(이게 사실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것은 그 지역이 한마디로 근대화의 세례에서 더욱 소외됐다는 그래서 시민적 감수성이라는 점에서 취약점을 드러낸 결과라고 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호남이 저개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그냥 손놓고 이런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인 원인과 현상은 꼭 단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개발이 시민적 감수성의 부족을 낳는 게 사실이지만, 시민적 감수성의 고양이 저개발을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의 철저한 수사와 가해자들에 대한 엄정 처벌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신안군 일대 주민들을 포함해 호남과 전국의 농촌 지역 주민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좀더 예민한 감수성을 가져줬으면 합니다. 어떤 글을 보니 과거 신안군 섬의 학교에서 근무했던 여교사의 경험담이 올라왔더군요.

학부형 남성의 스킨쉽이 너무 심해서 그 학부형의 아내에게 넌즈시 그런 얘기를 했더니 "선생님이 이뻐서 그런가 보요"라고 했다는 겁니다. 저는 그 아내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외지인인 여교사 앞에서 남편 우세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겠죠.

호남 여인네들이 이런 식의 부부관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태도가 쌓여서 이번 일 같은 비극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신안군과 호남 전체의 손해로 이어집니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 이후 신안군 일대에서 변사체 발견이 엄청 늘었다고 하던데, 이 문제도 좀 샅샅이 파헤쳤으면 합니다. 그런거 덮어둬서 누구에게 도움이 됩니까? 정말 이 잡듯이 털어서 감옥 보낼 놈들은 감옥 보내고 공권력과 여론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음습한 곳에 숨어서 나쁜 짓 하는 놈들 좀 솎아냅시다.

사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호남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 보면 속으로 신이 났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평소 눈엣가시 같던 호남 놈들 씹어댈 사안이 생겼으니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지난 총선 이후 더이상 감출 수도 없게 되었지만, 그 혐오 발언에 친노 성향 인물들이 대거 가세하고 있는 게 눈에 띄더군요. 친노 성향 여성들이 많이 모인다는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들 보면 가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정면으로 반박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기로 한 것은 사안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이 문제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뭔가 변화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몇년 전 염전노예 사건 당시 같은 막무가내 혐오 비하 저주와는 다른 분위기라고 느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본질적으로 지역차별과 호남 혐오에 대한 사람들의 감수성이 높아져가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적 혐오 발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랄까, 그런 게 생기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아, 저 사람들도 사람이구나' 하는 각성이랄까요? 이것도 일종의 시민적 감수성의 발현입니다.

이거, 우습게 볼 것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변화에요.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가 시민적 감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발언해주시는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여유를 갖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호남의 독특한 위상에 대한 자부심 때문입니다. 뭐 호남이 잘났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정상화되려면 반드시, 다른 무엇보다 먼저 호남이 정상화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자의건 타의건 호남에게 부여된 역사적 소명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충격과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하루속히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고 교사로서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가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