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의 글

문재인에 대한 반복된 실망과 감동의 이유는 똑같이 '좋은 사람'이다. 정치를 하기엔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실망하고 정치는 역시 좋은 사람이 하는 거라며 감동한다. 정치인과 개인적으로 사귀려는 게 아니라면, 이념과 정책부터 살펴보는 게 상식적 태도다. 그가 어떤 사람들의 혹은 어떤 계급의 삶을 대변하는가, 그가 지향하는 사회는 무엇이며 구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 능력이 있는가 등등. 그런 면에서 문재인은 여느 민주당 정치인과 별다를 게 없는 보수 정치인의 면모를 일관되게 보여왔다. 새누리와 야합하는 이런저런 반동적 정책들에 특별히 반대하거나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 적도 없다. 실망하기엔 지나치게 평범하고 감동하기엔 근거가 부족한 정치인인 것이다. 다들 나쁜 놈들에 질릴 만큼 질렸다는 건 잘 알지만, 정치인에 대한 평가에서 정치를 빼는 감상적 태도는 한국 정치의 큰 장벽 중 하나다. 일찍이 부모 여의고 불쌍하다며 박근혜를 지지하는 노인들만 비웃을 일이 아니다.



이 글과 비슷한 취지의 글을 쓰려고 했는데 제가 쓰려던 글을 짧게 쓰자면,


"왜 한국 국민들은 정치인들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지를 않나?"


한국 국민들은 '정치놀이' 대신에 '우상놀이'를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상놀이는 안철수 지지자와 국민의 당 지지자들에게서는 안보았으면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국민의 당이 외연을 확대하려면 지지자들이 극성맞을 정도로 안철수와 국민의 당에 요구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 요구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안철수와 국민의 당이 '특정 분야 최상의 정책'을 내놓을 수도 있고 반면에 안철수와 국민의 당과 지지자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협화음이 '인간적 신뢰를 해치지 않는 범주의 것'이라면 안철수와 국민의 당의 외연을 확대하는데 긍정적 요소로 작동할 것입니다.


"자, 안철수와 국민의 당 지지자분들, 당신은 그들에게 무엇인가 요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한국 정치의 발전은,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꾸준히 요구하는 것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말은 이제 땅에 묻읍시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