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 진영논리와 이중잣대의 진수를 보여주시던 분들이 갑자기 이성과 논리로 판단해야지 감정에 휩쓸리면 안된다라면서 점잖게 훈계를 하고 계시네요. 그런데 솔직히 그러는 사람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정말로 이성과 논리로, 사실로만 판단한겁니까? 소 뒷걸음질 하다가 쥐잡은게 아니고?

이번 박원순 건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입장이 있었는데, 대충 구분을 한번 해보죠.

1. 드러난 사실과 정황들을 토대로 최대한 선의로 해석해주기
2. 드러난 사실과 정황들을 토대로 최대한 박원순을 의심하기
3. 건조하게 드러난 사실로만 판단
4. 아예 관심이 없거나 별다른 언급없이 눈치만 보기

솔직히 1과 2의 입장은 이 사건에 대한 해석만 달랐을 뿐이지, 둘 모두 각자 진영의 입장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이 사건을 바라본게 진실입니다. 이 사건에서 박원순의 유무죄를 판단할 수 있을만한 객관적 사실이 드러난 건 바로 어제였어요. 그 동안에는 모두 정황에 의한 제각각의 추정만 하고 있었을 뿐인거죠. 그런데 어제 MRI 검증으로 1의 입장에 유리하게 사실이 구성되자 마치 자신들이 그동안 사실로써만 판단한 것처럼 위선을 떠시는군요. 언제부터 결과론이 '이성과 논리에 의해 사실로만 판단하기' 였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이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팩트는 몇 건 없었어요. 여기서 말하는 팩트란 강용석과 박원순이 모두 맞다고 인정하거나, 객관적 자료에 의해 사실로 인정될만한 것들을 말합니다.

1. 병역비리 연루의사의 진단서
2. 박주신 MRI와 병무청에 보관된 MRI의 일치

이거 두개 뿐이었죠. 나머지들은 모두 정황이고, 따라서 그런 정황들에 기반한 유추들은 판단이 아니라 추정이라고 불러야죠. 이렇게 각자의 추정을 가지고 박원순을 쉴드치거나 공격하거나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뭐 묻은 X가 뭐 묻은 X 나무란다고 사실에 입각한 판단 어쩌구 하면서 훈계를 하니 기가 막히네요. 어제 만약 MRI 검증에서 반대의 결과가 나왔어도 우리는 사실로만 판단했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그래도 박원순 공격하던 분들은 깔끔하게 사과라도 했지 박원순 쉴드치던 분들은 그런 것도 없이 생깠을거라는데 100원 겁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강용석 따위에게 사과를 하실 분들이 아니죠.)

제가 이 사건에 대해 줄곧 취했던 입장은 "정황에 근거한 강용석의 의혹제기들은 관심 없고, 이미 드러나있는 사실인 병역비리 연루의사 진단서 건에 대해서마저 박원순이 해명을 거부하고 침묵하고 있는 것은 매우 잘못이다. 뭔가 구린게 있는거 아니냐. 그것마저 선의로 해석하면서 박원순을 쉴드치는 사람들 문제있는거 아니냐" 였죠. 그런 제 입장은 저랑 논쟁했던 러셀님과 B612님도 문제없다 인정하였고, 그것 말고는 딱히 사실에 입각한 다른 판단이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어제까지 팩트로써 드러난 사실은 달랑 병역비리 연루의사 진단서 하나뿐이었거든요.

사실 이번 사건의 전개 과정은 과거 황우석사태 때와 진행과정이 매우 유사합니다.

1. 황우석이 사이언스에 체세포유래 배아줄기세포 구현에 성공했다는 논문 발표
2. 황우석의 논문에서 미심쩍은 부분들이 발견되며 의혹 제기 (포토샵으로 합성한 사진)
3. 의혹제기자들 체세포 공여자와 줄기세포 DNA의 일치 여부 검증 요구
4. 황우석 검증 요구 거부하며 '사이언스에 실리는 논문에 그런게 가능하겠느냐' 며 회피
5. 논문 조작 실토

박원순 사건과 황우석 사건에서  다른 점은 오직 최후의 검증에 응했는가 아니면 실토했는가 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번에 박원순에게 의혹을 제기하며 검증을 요구하던 사람들이 틀렸다면, 황우석에게 검증을 요구했던 사람들 역시 틀렸다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이번에 박원순을 무조건 편들면서 쉴드치던 분들 과거 황우석 보호운동 했던 분들이랑 다를게 없어보이거든요? 진영논리에 입각해 무조건 편들어주기.

어쨌든 이번에 진보진영 전체가 괴멸적 타격을 입었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 잘 마무리되서 다행이고 저 역시 가슴을 쓸어내리긴 했는데, 이번처럼 지지하는 정치인의 양심에 모든걸 걸고서 올인하며 도박을 벌이는 행태가 계속 반복되면 언젠가는 터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는 솔직히 운이 좋아서 넘어간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