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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클라이번(Van Cliburn.1934~2013)은 "미국의 영웅" 호칭을 듣는 피아니스트이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를 헐리웃의 인기 높은 연예인 중 한사람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당
연히 그의 연주는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뒤늦게 음반 박스를 뒤져보니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두곡을 담은 것과 <폴로네이스>와 <연습곡>등 8곡을 수록한 음반 등 두
장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오랫동안 거들떠보지 않아서 먼지가 잔뜩 끼어있다. 언제나 무
지는 시야를 가리고 청각을 오도한다. 그래도 음반 두장을 가진 걸 보니 당시 새파란 
청년이던 반 클라이번이 일으킨 소동이 대단하긴 했던가 보다. 한사람 피아노 연주가
에겐 고금을 통해 두 번 있기 힘든 큰 소동이었다고 기억된다. 만년 청춘일 것 같던 그
도 2013년에 찬미자들의 곁을 떠났다.
 
 반 클라이번 연주를 찾아 듣게 된 것은 오직 후르시초프 때문이다. 후르시초프는 쇼팽
곡을 좋아한다. 60년대 초 유엔총회장 연단에서 구두를 벗어 탁상을 친 것으로 악명을
떨친 이 공산당서기장이 반 클라이번이 쇼팽의 <Fantasy in F minor Op.49>를 연주할 때
연주장의 발코니에 앉아 조용히 연주를 감상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겁고 유쾌한 일이
다. 옆에는 정치국원 미코얀의 얼굴도 보인다. 이 곡은 쇼팽 유일의 환상곡으로 그가 조
르주 상드와 함께 지내던 시기의 마지막 무렵, 갈등에 시달리던 그의 상태를 드러내는,
쇼팽 곡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은 이색 작품이다. 이 연주는 콩클 4년 뒤인 62년 러시
아를 다시 찾은 반 클라이번이 러시아 청중을 위해 마련한 연주인데 후르시초프가 여
기 나타나 연주가 끝날 때까지 연주를 조용히 감상한 걸 보면 그가 쇼팽 곡의 애호가이
자, 반 클라이번의 열열 펜이란 걸 알 수 있다. 후르시초프가 그토록 좋아하고 즐겼던
반 클라이번의 연주는 어떤 연주일까? 여기서부터 반 클라이번 다시 듣기가 시작되었
다.

 반 클라이번 연주에는 많은 찬사가 뒤따른다. 콩클 당시 심사위원이던 에밀 길렐스와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평가가 시발점이다. "천부적 예술성과 매우 섬세한 음악성
이 그의 연주를 격조 높게 이끌었다." 길렐스의 언급이다. 리히터는 아예 러시아 참
가자를 포함 다른 연주자들에게 0점을 매기고 오직 클라이번에게만 만점을 주었다.
아우성치는 청중들이 콩클의 승리자를 사실상 결정했다는 언급도 있다. 그러나 러시
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마련된 잔치인만큼 적국 청년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데는
서기장의 윤허가 필요했다. "그가 러시아인 보다 더 탁월하게 러시아 음악을 연주합
니다." 서기장에게 진행자가 보고했다는 내용이다. 후르시초프의 클라이번에 대한 관
심이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 같다.
 
 반 클라이번의 연주는 연주 장면, 그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이다. 190의 큰 체구, 조
각상처럼 잘 생긴 외모, 거기에 바닷게의 다리처럼 긴 손가락을 활용 큰 보폭으로 스
케일이 큰 협주곡을 연주하는 모습은 연주내용은 접어놓더라도 우선 그 모습 자체로
멋진 그림이 된다. 그는 큰 악기인 피아노를 완전히 장악한다. 러시아의 많은 열광적
청중 가운데는 유독 여성이 많고 그중에는 오페라그라스를 들고 연주자모습을 감상하
는 관중도 적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 청중들이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연주 뒤에 무대 위엔 꽃다발이 산처럼 쌓인다. 꽃을 든 여성들이 쏟아져 나와 연주자
와 눈을 맞추려고 기를 쓰지만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는다. 그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악마의 나라"에서 건너온 이 천사 같은 청년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러시아인들의 오랜 좌절과 슬픔, 그것을 딛고 꿈을 향해 도약하려는 처절한
과정을 자기네 보다 더 절실한 감정을 실어 더 명확하고 선명한 발성으로 들려주는
연주에 감동한 것이다. 러시아 출신 로지나 레빈의 세심한 지도를 받아온 클라이번은
이미 러시아인들의 감성과 상통하는 음악을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세기 최고 인기곡이라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두곡, 큰 명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다지 큰 감흥을 못 느꼈다. 작곡가 자신의 2번 연주도, 호로비츠의 3번 연주도
만족감을 주지 않았다. 심하게 말하면 내게 이 곡들은 '지루한 러시아인들의 흐느낌'
으로만 들린 것이다. 구조가 복잡한 3번은 더 그런 느낌을 준다. 다수의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이 협주곡에 쉽게 끌리지 못한 이유가 뭘까? 반 클라이번의 두 곡 연주를 듣
고 어렴풋이 그걸 깨달았다. 반 클라이번의 연주는 솔직하고 담백하다. 섬세한 면을 십
분 살리면서도 발성이 투명하고 선명하다. 3번 첫 악장의 카덴차를 좀 더 쉽고 간명한
버전으로 바꾼 것도 곡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3번 2악장
아다지오와 빠르고 힘찬 연주로 진행된 피날레에서 몇차례나 전율을 느꼈다.

 반 클라이번은 "미국의 영웅"이란 호칭 보다 "러시아의 연인"이란 호칭이 더욱 걸맞
는 것 같다. 콩클에서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던 그 시간이 그의 생애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2008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20년간 그 순간에 머물렀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한순간에 다가온 너무나 큰 영광이 연주자로 그에게 도리어 불
행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는 러시아의 무대에 갇혀버렸다. 1978년 이후 사실상 그는
은둔생활로 들어갔고 연주자로 존재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