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련 주제에 대하여 passion님과 미투라고라님 간의 논쟁을 주의 깊게 읽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느 분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효율성과 효과성에 대하여 아래 미투라고라님의 관련 글(전문은 여기를 클릭)에 대한 언급.


2. 생산력이라는 단어는 맑시즘 용어 그리고 효율성이라는 단어는 자본주의적 용어.

따라서, 생산력과 효율성 그리고 효과성이 같은 논점에서 언급된다는 것은 passion님의 실수. 이 부분은 미투라고라님과 비행소년님 양자의 주장 전부 맞다.

그리고 맑시즘 용어와 자본주의적 용어를 혼용해서 쓴다면 효율성 ≠ 생산력. 이 부분도 미투라고라님의 주장이 맞다.


생산력은 맑시즘 개념이다. 맑시즘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생산력은 항상 증대가 되어 왔다. 왜? 인간은 생산력의 주요 요소이고 인류의 개체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으니까. 따라서, 생산력은 '재화 생산의 총합'으로 치환시키는 것이 맞다. 그리고 효율성은 맑시즘 용어로는 생산관계로 대치하는게 적절할 것이다. 생산관계=효율성으로 곧바로 대입할 수 있는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헤겔의 '양의 질화'에서 '종이가 나무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나무가 종이라고 할 수 없으며 종이가 나무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고찰이 생산관계, 즉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생산관계=효율성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3. 내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왜 효율성과 효과성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생산력이 언급되었을까?"이다. 미투라고라님의 주장에 의하면

a. "생산력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데 효율성이라는 단어를 동원한 것은 실수"라는 미투라고라님의 주장은 맞지만
b. 여전히 효율성을 언급하면서 생산력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3-b항에 대하여 물론, 미투라고라님은 'passion님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여전히 생산력이라는 단어를 동원하였다'라고 생각이 되고 이 생각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옳다'라는 키워드로 생각해 본다면 '옳다',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옳다'라는 관점에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련 논제에서 '옳다'라는 개념은 맑시즘 개념으로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개념으로는 일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물론, 엄밀하게는 이 논쟁에서 '옳다'라는 개념이 맑시즘 개념에서 보편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라고 반박되어지겠지만 롤즈의 정의론을 대입하면 맞다....라는 것이다.)


즉, 미투라고라님은 선풍기의 예를 들면서 '효과성'에서 '옳다'라는 개념을 보편성이 확보된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을 미투라고라님은 하셨을까?


4. 미투라고라님의 본글

여기에 든 비용은 선풍기 값 단 몇 십 달러에 불과했다. 외부 컨설턴트를 동원해서 최단 기간에 최소의 비용으로 거창한 빈 곽 색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효율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일을 '옳게' 한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것은 효과성과는 무관한 얘기다. 효과성은 바로 저렇게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빈 비누곽을 찾아내는 것이다. 즉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효율성이 low cost 지향, 그리고 효과성이 high value 지향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미투라고라님이 설명하신 효과성은 효과성이 아니라 효율성이다. 즉, 두가지의 통합된 효율성을 두 개로 분류하면서 하나는 효율성 그리고 하나는 효과성으로 나누었다는 것이다. 사실, 미투라고라님도 전제를 하셨지만 효율과 효과를 엄밀하게 분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효율과 효과는 다음에 말하는 공식처럼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효율 = 효과 ÷ 투입 --- a
효과 = 성과 ÷ 투입 --- b

따라서, 효율 = 효과 ÷(투입 x 투입)이고 이는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직감적으로 효율은 한계 효과의 곡선(한계 효과라는 것이 있다면)과 비슷해질 것이기 때문에 효율과 효과는 사실 엄밀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효율 = 성과 ÷(투입 x 투입)이고 이는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직감적으로 효율은 한계 성과의 곡선(한계 성과라는 것이 있다면)과 비슷해질 것이기 때문에 효율과 효과는 사실 엄밀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다.


5. 미투라고라님께서 비유를 하는데 동원된 '선풍기' 대신에 '비정규직'을 대입하여 글을 다시 한번 써보자.

비정규직을 도입하는 것은 '효율성이 높아지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른바 일을 '옳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정규직을 도입하여 비정규직이 정규직만큼 아웃풋을 낼 수 있게 조직화시키고 교육시키다면 이는 효과성이며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미투라고라님의 글에서의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은 '기업에 옳은 일'이다. 물론, 효율을 높여 소비자 가격이 낮출 수 있는 효과는 있고 결국 소비자의 이익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독과점 체제에서 이야기되는)초과이익 개념을 생각한다면 '기업에 옳은 일'이 반드시 '사회에 옳은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기업에 옳은 일'일 수 있지만 '사회에 옳은 일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며 수시로 교체되는 비정규직 교육에 드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기업에 옳은 일인지조차' 확신이 안된다는 것이다.(그래서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생산직은 가능한 한 비정규직, 그리고 사무직이나 연구직들은 가능한 한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는 하지만)


즉. '옳은 일'의 결과가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그 대상이 가지는 효과는 반드시 이익이 되는 쪽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데 미투라고라님은 '옳은 일'이 '모든 대상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가정에서 비유를 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미투라고라님의 비유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의 비유이며 그래서 생산력을 여전히 도입했는데 비정규직을 대입하여 맑시즘 관점에서 비유한다면 좀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즉, 생산력은 효율성과는 다른 차원(domain)에서 이야기되야 한다...라고 끊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선풍기의 비유를 비정규직의 비유로 바꾼다면 passion님의 생산력=효율성으로 등치시킨 발언이 개념적으로는 잘못되었지만 '기업의 효율'이 생산력과 관계있다는 점에서 본다면(기업은 직원을 무한정 고용할 수 없으므로) 아주 터무니없는 발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아나코 캐피탈리스트이신 sheepnation님께 드린다. 'Government is thief'라는 주장을 하는 아나코 캐피탈리즘에 대하여, 요즘 바빠서 글을 쓰지 못하고 있고 sheepnation님과의 논쟁을 이어가고 있지 못하지만 뭐 여차하면, 장소가 디시겔이라는 것이 좀 찜찜하기는 하지만, sheepnation의 홈페이지로 건너가서 오랜만에 흥미로운 논점을 가지고 논쟁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경제의 도덕'이라는 측면에서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내가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즉, passion님과 미투라고라님의 '이익의 효과와 범위'가 논점이라면 이 것은 보다 거시적인 '경제의 도덕'이 논점이고 그 논점을 논하고 싶다는 것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