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직위는 막중한 자리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정전(停戰)상태에 있는 한반도는 동북아의 화약고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외교적인 식견이 탁월해야 하고, 올바른 결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 올바른 결단력은 확고한 정치철학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신념에서 나오는 것이다. 야합(夜合)에 익숙한 정치인은 이런 올바른 결단력이 생길 수 없다.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자신과 자신의 정파만을 위하는 마음을 비우고 국민과 민족의 통합(統合)정신으로 마음을 채워야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헌법을 준수하고...”라는 선서를 하면서 취임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규정하고 있고, 제4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취임선서와 헌법의 규정은, 헌법을 보위하고 준수할 의무가 대통령에게는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한 정당, 한 계파의 수장이 아닌 것이다. 대통령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인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대통령은 남한 만의 대통령도 아닌 한반도의 대통령인 것이다. 곧 북한의 주민들도 대통령의 정치영역인 것이다.

이런 대통령이 한 정당도 아니고, 한 정당의 계파의 수장 노릇을 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통합정신이고, 자기 희생정신이다. 이 말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이런 정신을 가지고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한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평생 고난을 함께한 “동교동계” 참모들은 국민의정부에서 권력을 누리지 못한 유일한 계파이다. 동교동계 참모(가신)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군부독재세력들에게 투옥과 고문을 일상처럼 당하면서도 자신들의 주군인 후광 김대중 선생을 배신하지 않았고, 끝까지 후광선생과 함께 했다. 그런 그들이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자 자신들의 지분을 요구하지 않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2선 후퇴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김대중 정권을 계승한다고 했던 노무현은 아무런 정치경력도 없는, 능력을 검증 받지도 못했던 문재인을 단지 자신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정권의 요직 중의 요직인 “민정수석”으로 발탁했다. 이런 사실은 노무현이 인사(人事)를 공적으로 하지 않고 사적으로 했다는 방증이다.

염동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염동연 전 금강캠프(노무현 대선캠프) 사무총장이 2015년 월간조선과 인터뷰한 내용을 분석하면 왜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는가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이 인터뷰에 대한 문재인 측의 정정보도 요구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 염동연의 인터뷰가 팩트에 기반한 것으로 간주한다. 필자 註)

(염동연) “대선 직후 당이 인사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김태랑 최고위원이 위원장을 맡고 이상수, 이미경 등 선수(選數)가 꽤 있는 의원들로 구성했는데, 나도 위원으로 들어갔죠. 국회의원도 아닌데 실세라고 알려져 있다 보니 그리된 거죠. 근데 그 위원회는 명목상의 위원회고 사실 대통령이 따로 만든 인사위가 있었어요. 김원길, 문희상, 신계륜, 정동채, 유인태, 그리고 나까지. 대통령이 믿는 사람만 모아 놓은 거였습니다.”

(월간조선)—‘비선’이네요.

“비선이라 하긴 좀 뭐하지만… 언론에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 소공동 롯데호텔에 방을 빌려 놓고 보안을 철저히 했지요. 정권 창출하고 나면 이런저런 곳에 보내야 할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공직은 물론 산하 공기업까지 인사 및 추천을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최고 실세들만 딱 모였던 거라고 할 수 있죠.”

—문재인, 이강철 등의 이름은 없었군요.

“이강철은 여러 이유로 대통령이 깊이 신뢰하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근데 세 번째 모임을 하던 날, 문재인이 떡하니 나타난 겁니다. 당선자가 문재인을 데려와서 ‘부산에서 활동한 문재인 변호사를 올라오라 해서 이 모임에 정규 멤버로 참석토록 했다’고 말하더군요. 나는 문재인 실물을 그날 처음 봤어요. 몇 년 전부터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선거기간에도 본 적이 없고 사진으로만 얼굴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겠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대통령이 그렇게 몇 번이나 도와달라고 할 때 모른 척하고, 심지어 대통령이 되더라도 절대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던 사람이 당선되고 나니까 딱 나타난 겁니다. 이중적 태도라는 생각이 안 들겠어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대통령한테 ‘이 모임 더 하면 언론에 노출될 것 같다, 비선 논란이 생길 수 있으니 이 모임은 그만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버렸습니다. 그 후 모임은 없었습니다. 명분은 그랬지만 솔직히 내 사심(私心)이 있었던 거죠. 그런 사람과 함께 앉아서 국사를 논의하기 싫었던 겁니다.”

“4월에 노무현이 대선후보가 되면서 인터뷰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묻는 질문에 부산에서 같이 일해 온 문재인 변호사라고 답했고, 그때부터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언론이 주목하던 시기니까요. 사실 나는 그때도 별로 인식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같이 변호사 사무실을 했던 친한 사이고 경선에서 좀 도와달라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 계속 거절했던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노 후보가 문재인을 내보내자고 하더군요. 어차피 안 될 거라면 이기택, 신상우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내보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이) 거절했군요.

“단순히 거절했으면 그렇게 기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람 설득하러 갔던 캠프 후배가 이렇게 전하더군요. ‘제발 나한테 그런 소리 좀 하지 마라, 난 정치에 관심 없다, 변호사 하게 좀 놔 둬라, 노무현이 대통령 돼도 그 근처에 얼씬도 안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말입니다. 노무현이 대통령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때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던 노무현의 흔들림과 아픔은 옆에서 본 사람으로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문 대표는 (대선 2개월 전인) 10월에야 선대위에 참여했죠.

“그때 우리가 겪은 어려움만 해도 책 여러 권 나올 겁니다. 4월에 경선에 이겨서 대선후보가 됐는데 당이 선대위를 10월에야 구성한 겁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비선이 이랬다저랬다 하는데, 당 조직이 안 만들어지는데 어떻게 합니까. 측근들이 움직여야죠. 동교동계는 후보직 내놓으라고 난리인 데다 당에서는 후보실 여직원 월급도 알아서 내라고 하는 지경이었습니다. 우리 캠프 사람들이 그렇게 주변에 조금이라도 도와달라고 부탁하다 번번이 거절당하고 유리걸식(流離乞食)하는 동안 문재인, 이호철은 그냥 변호사, 여행사 하게 나 좀 내버려두라고 했답니다. 10월 돼서 당 선대위가 발족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그 두 명이 이름 올린 겁니다. 말 그대로 막차 탄 거죠. 그나마 막차라도 타 줘서 고맙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얼굴을 보진 못했습니다.”

—그 두 분은 정권 초기 요직에 임명됐죠.(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민정1비서관)

“노 대통령이 그렇게 캠프에서 고생해 놓고도 비캠프 출신들을 중요 자리에 앉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그때 여당 후보였던 만큼 예선(경선)이 본선(대선)만큼 중요했고 그렇게 경선 좀 도와달라고 해도 꿈쩍도 않던 사람들인데 말이죠. 이강철은 지금도 문재인 얘기만 하면 육두문자를 날리곤 합니다. 캠프 출신들이 문재인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다른 사람들은 상상 못할 겁니다.”

—어려울 때 외면했다면 그럴 만도 하겠군요.

“아닙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나라종금 사건으로 구치소에 100일간 있다가 2003년 4월에 나왔어요. 나와 보니 당이 깨져 열린우리당이 생기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는 배신자라며 인기가 바닥인 상황이었죠. 2004년 4월이 17대 총선이니까 당이 총선준비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이 상태로는 지지를 얻기 어려운 상황인 겁니다. 청와대에 들어가서 대통령한테 얘길 했어요. 청와대나 정부에서 인지도와 인기 있는 사람들을 총선에 내보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1년 가까이 벼슬살이 했으면 은혜도 입었고 이제 보은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대상에 문재인 민정수석이 있었나요.

“문재인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수석, 이창동 문광부장관, 강금실 법무부장관 네 명은 꼭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이 살아야 대통령도 살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때 내가 당에서 맡았던 직책이 ‘정무조정위원장’이었어요. 관료들 등 떠밀어서 출마하게 하는 역할이라 관료들은 내 전화 피하면서 ‘저승사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걸 다들 아니까 그런 자리에 앉힌 거죠. 근데 4명 출마를 요청하고 며칠 후에 대통령 전화가 온 겁니다. 내가 말했던 넷 다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요. 대통령이 임명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부탁하는데 모른 척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내가 기자들 앞에서 ‘가빈사양처 국난사명상(家貧思良妻 國亂思名相·집안이 어려우면 어진 아내가 생각나고 나라가 혼란하면 훌륭한 재상을 그리게 된다)’이라며 네 명을 사정없이 비난한 겁니다.”

염동연 전 의원은 “문재인은 노무현이 어려울 때 도와준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기자들 앞에서 문재인 수석을 특히 심하게 비판했던데요.

“대통령 어려울 때 대통령 뜻에 좀 따르라고 강조했습니다. 근데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까. 그때 문재인 수석이 사표를 내길래 대통령은 그래 이제 결심했나 보다, 나를 위해 출마하나 보다 하고 사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건강상 사유 운운하더니 네팔로 트레킹을 간 겁니다. 대통령이 피눈물을 흘리는 시점에 측근이라는 사람이 해외로 트레킹이라니요. 정말 기가 막혀서 입이 안 다물어지더군요. 그런 사람이 친노라고요. 정말 그때 생각만 하면….”

—선거 때마다 문재인 차출론이 있었잖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 전까지 총선, 지방선거, 재·보궐선거 때마다 문재인에게 제안을 했어요. 민주당이 아무리 영남에서 약세여도 노무현 주변인물인 송인배, 이봉수 이런 사람들이 야당후보로 총선 출마해서 거물급인 박희태, 김태호와 몇백 표 차이로 선전하곤 했잖습니까. 김정길 후보가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해서 45% 득표했죠. 전부 다 노무현 생각대로 문재인이 나갔으면 이기는 선거였습니다. 근데 끝까지 거절하고 안 나간 거예요.”

—문재인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입니다.

“《운명》(문재인 대표 자서전)이라는 책 봤죠. 운명이 뭡니까. 노무현 서거가 자기 성공할 운명입니까. 노무현 동정론 업고 정치에 나선 인물이잖아요. 성공할 수 있었던 노무현 정권에 기여는커녕 역행한 인물입니다. 그럼 그대로 조용히 있든가. 당 대표라고 당을 저렇게 사분오열 만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문재인은 위의 “운명”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전남지역 판매상들”에게 돈를 떼여(사기)를 당해서 어렵게 살았다고 “지역”을 명시해서 저술했다. 대개의 정치인들은 이런 사실을 기재할 때, “소매상인 들에게 사기를 당해”라고 기술하지, 지역 명을 거론해서 명시하지 않는다. 문재인은 왜 “전남 소매상들”이라고 명시했을까?

그리고 당시 광주에는 1935년에 설립된 무등양말 공장이 성업 중이었다.그런데 왜 전남 소매상들은 거리도 엄청나게 멀어서 물류비도 많이 드는 부산까지 가서 양말을 가져왔을까?  문재인의 주장을 쉽게 납득하지 못하겠다. 가까운 광주에 무등양말 공장이 있었고, 더구나 무등양말 공장은 지역유지들이 독립자금을 만들기 위해서 설립한 공장이었다는데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쉽게 이해가 되는가.

“지금도 양말공장을 운영 중인 광주의 무등양말 공장은 1935년 창립됐다. 무등양말은 조상원씨가 사장으로, 주주는 광주지역 유지 12명이었다. 이들의 목적은 독립운동 기금 마련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 신문을 보면 ‘양말은 살에 붙는 것으로 얼른 해지기 쉽습니다. 조금 신고는 곧 빨아서 다시 신는 것이 오래 신는 법입니다’라며 양말을 자주 빨것을 권했다.”(조선닷컴)




염동연은 노건호씨가 친노에 대해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친노세력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싶어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건호의 울부짖음이 친노세력에 시사하는 바가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심지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노무현정신 운운하며 노무현을 이용하는 세력이 없었으면 하는 가족의 마음을 다들 좀 헤아렸으면 합니다.”

—요즘 친노라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어떻습니까.

“그들이 만날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48% 얻었으니까 이번 대선에서 2%만 더 얻으면 된다고. 48%는 이미 자기네 것이고 2%만 선거운동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도 ‘도와달라, 2%만 메워 주시라’는 제안이 종종 오곤 합니다. 정말 착각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지난 대선 당시 MB(이명박) 정권 인기도 바닥이었고, 헌정사상 유례 없던 여성 후보에, 이른바 독재자의 딸을 상대로 48%밖에 못 얻은 걸 부끄러워해야죠. 김두관이나 다른 사람 나갔으면 60% 이상 얻었을 건데 후보 잘못 나가서 졌다는 사실을 왜 인정을 못합니까.”

—당 운영도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당연하죠. 친노 패권주의의 폐해는 심각합니다. 당내에서 자기들 입맛에 조금만 안 맞으면 어마어마하게 공격하고 흔들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예가 박영선 전 원내대표입니다. 원내대표로 선출됐으면 협상 재량권을 줘야지 협상해 오면 흔들고, 다시 협상해 오면 또 흔들고 이러니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문재인 아니라 그 세력 중 누가 대표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당 제대로 운영도 못하고 호남 민심도 못 잡고….”

“노무현은 그야말로 ‘이웃아저씨’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언행이 가볍다는 평도 있었지만 그 정도로 권위주의에서 벗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민주화를 이뤄 냈다는 YS·DJ도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노무현이 그 틀을 벗어난 겁니다. 그게 노무현 캠프의 이미지 전략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변하더라는 겁니다. 남의 말 잘 안 듣고, 권위주의로 돌아간 것이지요.”

고종석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다음은 언론인 고종석씨가 쓴 글이다. 일부를 발췌해서 올린다.

“그해 대선은 오마이뉴스가
문국현대통령 만들기라는 망상으로
그렇잖아도 어려운 선거를 아예 묵시발을 만들어 놨다.
친노 오마이뉴스의 선동으로 적잖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문국현을 지지해, 정동영의 패배가 더욱 처참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뒤 정동영에 대해 거의 발언하지 않았다.
사실 어차피 민주당을 깬 거,
그냥 노무현의 요구대로 열우당 후보로 나오는 것이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승리가능성은 더 낮아졌겠지만,
어차피 다른 변수가 없는 한 이명박을 이기긴 어려였다.

그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현직 대통령 노무현 뿐이었다.

노무현은
이명박의 BBK 스캔들이 엄중한 불법임을 알고 있었고,
현직 대통령으로서 그를 구속기소해
대선후보를 박탈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노무현의 행보에는
납득할 수 없는 점이 너무 많았다.

그는 집권당의 대선후보로 나설 만한
고건이나 손학규를 비수와 같은 비난으로 날려버렸고,
자기에겐 정권재창출의 의무가 없다고 공언했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던 유시민은
한나라당 집권해도 나라 안 망한다며
그에게 노무현이 BBK를 눈감아주는 대신에
이명박은 집권 후 노무현의 로얄패밀리(노건평의 표현)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게 그 내용이었다.

그러나 노건평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최근 노건평과 이상득의 만남을 주선한
이명박의 홍보비서관 추부길이 그게 사실이라고
매우 구체적 정황을 들어 증언했다.

노건평은 노무현 작고 뒤의 시련이 끔찍했는지
거기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고
언론을 피하고 있고,
이상득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한다.
이상득이 인정하지 않는 한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질 것이고,
이상득이 노무현에 대한 이명박의 배신을 인정할 리도 없다.

그러나 노무현 이명박 딜에는 개연성이 있다.

노건평과 이상득의 핫라인이 설치된 게
10월 말이라고 추부길은 주장하는데,
이건 대선 2개월 전에
이미 노무현은 정동영을 버리고
자신의 안위가 걱정돼
야당 후보 이명박과 거래를 했다는 뜻이다.

추부길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이후,
이명박이 노무현을 배신하고
그를 박연차와 관련해 구속기소할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혼란을 가라앉히려면 아무튼 속죄양은 필요하니까.

추부길은 노무현과의 밀약을 지키라고
이명박에게 건의했다가 
직싸게 욕먹고 결국 쫓겨났다고 한다.

이명박으로선 그렇잖아도 속죄양이 필요하던 차에
노무현이 청와대 기록물을 가져나와
이명박에게 개기고 있던 판이었으니,

배신의 결심도 쉬웠을 게다.

사태가 불리함을 깨달은 노무현은
이명박에게 문서로 항복선언을 했으나,
사악한 천재 이명박은 결국 노무현을 기소하고 
망신줌으로써 전직을 자살로 몰았다.

이명박에게 한 움큼의 가책이 없었으리라는 것은 명확하고.
그러나 우리는 노무현의 석연치 않은 행동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여권의 대선후보가 될 만한 사람들의 싹수를 잘라냈다.
자기에게 정권재창출의 의무가 없다고 공언했다.

청계천 복원 기념식에서도 이명박과 화기애애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명박은 서울시장으로서
참여정부의 국무회의에도 몇 차례 참가했다.

이 모든 정황을 볼 때,
이명박에 대한 노무현의 신뢰는 굳건했으며,
노무현은 자신의 후임으로
이명박을 선호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개연성이 상당히 높은 추론이다.

나는 여기서 노무현의 비윤리성을 지적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의 미욱함을 지적하고 싶다.

이명박이라는 사악한 천재를
자신의 보호자로 믿었다는 것은
그가 사람 보는 눈이 전혀 없던 말
그대로의 바보였음을 증명한다.

사실 윤리적 차원에서도,
만일 DJ가 2002년 대선 때
이회창과 밀약을 맺고
노무현을 버리는 상황이 상상되는가?

노무현은 비극적 선택을 감행하기 직전에 지지자들에게
"나늘 버려달라. 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이건 그간 자신이 친인척 관리를 못해서
(이건 비서실장 문재인의 책임이다!)
지지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뜻으로 해석돼왔다.

그런데
나는 최근
노무현 발언의 참뜻이
"지지자들의 뜻에 반해
퇴임 이후를 보장받기 위해
BBK까지 덮어버렸는데,
이명박한테 배신 당한
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직 확정된 진실은 없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정치적 동료들을 죄다 내치고
사악한 천재 이명박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배신당해
결국 비극적 죽음을 선택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은
전직 대통령에게 분노보다는 깊은 연민을 느낀다.

그의 비극적 죽음이 노무현교의 시발점이었음은 유감이다.

그는 극단적 방식의 죽음을 택함으로써
한국 정치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광신도 훌리건 집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 훌리건들에 의탁해,
문재인은 가망없는 차기대권을 노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끝)“



친노문, 문빠들이 신격화 시켜서 숭배하는 노무현이 과연 민주진보적 이었는지 아래의 예시를 보고 판단하기 바란다.

1) 취임 불과 석달 만에 "대통령노릇 못해먹겠다고 온국민을 상대로 어리광을 부리고, "북핵문제는 해결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국제회담에 한국이 참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우기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시 미국대통령 부시가 " 한국도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것이고 그게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되는것" 이라고 적극 종용하자 그제서야 동의 한것이 자주외교인가.( 지금의 6자회담은 노무현 취임초기까지 북.중.미의 3자회담이었다)

2) 취임 수 개월후 미국가서는 " 6.25때 미국이 아니었으면 나도 정치범 수용소에 있게 되었을지도 ..." 라고 한 얼마뒤에 일본가서는 " 첨에는 백범을 존경했지만 백범 김구는 정치적인 실패자라서 존경 인물을 링컨으로 바꾸었다"고 한것이 자랑스러운 노무현정신인가.(2003.6.8. 일본순방 시 언론 인터뷰)

3) 노무현 대통령은 영어 공용화 문제에 대해 “우선 경제특구에서 영어문서가 통용되도록 해보고, 점차 수요가 늘면 거기에 맞춰 공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23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25년 뒤 영어를 한국의 공식언어로 하자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꼭 거절할 이유도 없고, 그것을 가지고 민족혼을 문제삼을 일도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2004.2.23. 경향신문)

이는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당시 서울시의 사업안을 보면, 오는 7월부터 공고·공시문 등에 한글과 함께 영문을 사용하고, 외국어를 잘하는 공무원에게 인사 가산점을 줄 방침이다. 직원들의 영어실력을 길러 2006년 이후 간부회의를 영어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이명박 서울시장의 구상이다. 



노무현은 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으로서는 상황인식이 전혀없는 답변을 했다. “전임 사장이 발행한 어음은 후임 사장이 결제하는 거다. 두 달이 남았든 석 달이 남았든 내가 가서 도장 찍어 합의하면 후임 사장 거부 못한다.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거 맞춰서 하겠다.”

그래서 전임사장 김대중이 합의한 6.15 남북합의문을 대북송금특검을 실시해서 쓰레기통으로 처박았고, 노무현이 합의한 10.4 선언은 후임사장인 이명박이 결제했는가. 참으로 어리석은, 아무런 고뇌도, 전술도, 전략도 없는 노무현이었다.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을, 더구나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러나 노무현은 정치인으로서는 최고의 위치인 대통령의 직위에 있었으므로 역사의 평가는 냉혹하게 받는 것이 옳다. 더구나 노무현 정권에서 요직에 있었던 문재인을 비롯한 친노문 세력들이 야권의 주류로 행세하고, 대선에서 이미 패배했던 문재인을 다시 대선후보로 옹립하여 또 다시 수구새누리의 정권연장을 가능하게 하려고 하고 있으므로, 민주평화개혁세력은 노무현과 문재인이 왜 민주개혁세력이 아니었고, 문재인이 얼마나 기회주의 적이었는지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문재인과 친노문 세력이 왜 패권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정동영도 봉화마을로 내려가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고자 했지만, 친노 그룹들의 같은 정당원인 정동영 상임고문의 조문을 강력히 막아 조문을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친노는 대장 문재인이 직접 노무현을 사지로 몬 이명박을 아주 극진해 예우했다. 노무현 아들(노건호)의 시선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고개숙이는 문재인보다는 더 인상적이다."

친노 유시민 :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나라 안망한다.“


바둑이 끝난 뒤 쌍방이 둔 수들을 하나하나 검토해 보는 것을 복기(復棋)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복기해야만 패배를 거듭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문재인과 친노문 패권세력은 이런 복기를 하지도 않는다. 복기를 해야 반성도 나오고, 지난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는 법인데 말이다. 이런 파쇼세력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아니 설령 승리 한다하더라도 민주개혁을 실현시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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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야당 건설을 통하여 김대중의 민주평화개혁 정신을 계승하는 정치세력이 나오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