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좀 아는 척하는 문학 청년들 가운데 꽁트를 장편(掌篇)이라고 쓰는 경우가 있었다. 손바닥 장(掌) 즉 그만큼 짧은 소품 소설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일본식 조어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사실 저렇게 쓰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저 掌은 오히려 무협소설의 장풍(掌風)에 쓰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요즘에야 꽁트라는 장르 자체가 거의 유명무실화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내가 잘 모르고 하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내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장편 즉 꽁트 작품이 있다. 황순원의 <사진>이 그것이다. 이 작품을 생각하면 모파상의 <진주>, 포우의 <검은 고양이> 등과 함께 단편소설의 surprise ending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단편은 아니지만 골딩의 <파리대왕>도 surprise ending의 전범이랄 수 있으며, 영화에서는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이 비슷한 효과를 보여준다.

어떤 전쟁터. 수색대 같은 부대에 프로급 킬러가 있다. 이 군인(주인공)은 진정으로 전쟁을 즐기는 사람이다. 혼자서 적진에 침투해 마주치는 적을 해치우고 그 희생자의 소지품을 갖고 귀대, 내무반에서 동료들과 함께 그 물건들을 돌려보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 그의 유일한 취미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달빛과 별빛이 전혀 없는 칠흑같은 밤이었다. 이날도 주인공은 혼자서 적진 정찰에 나섰다가 적군과 마주친다. 이날 마주친 적군은 주인공이 그때까지 만났던 어떤 상대보다 강적이었다. 하마트면 적군에게 당할 뻔했지만 주인공은 끝내 상대방을 해치우고 그 군인의 소지품을 몽땅 챙겨 내무반으로 복귀한다.

내무반에 돌아와 밝은 불빛 아래 그 소지품을 살펴보는데 소지품 중 지갑에서 사진이 하나 툭 떨어진다.

그 사진 속 인물은 바로 주인공이었다.

요즘에야 워낙 스토리라인들의 구조가 널리 알려져서 처음 몇 줄만 읽고도 결말을 짐작하신 분도 계실 것 같다. 이 작품을 읽으신 분들도 꽤 있으실 것이고. 하지만 내가 처음 읽었을 때는 충격이었다.

상황 설정 자체는 무리가 많다. 군부대가 무슨 서바이벌 게임도 아니고 혼자서 수색 나가는 경우도 상상하기 어렵고. 하지만 이런 약점은 정말 사소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 작품의 무대가 어디인지, 어떤 전쟁인지에 대해서는 작품 안에 단 한 마디 설명도 없다.

하지만 한국 문학 작품 가운데 민족 분단의 비극을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도 드물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때 읽은 작품 같은데 그 뒤로 찾아보려 해도 이 작품이 실린 책을 찾지 못했다.

우리나라 문화 풍토에서 제일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이것이다. 말과 글 생활에서 좀 한국문학 작품 내용을 조금씩이라도 인용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