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범곤 사건.



1982년 4월 26일. 전두환 독재정권이 막 시작된 시점에서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궁류지서에서 우범곤 순경에 의하여 동네 주민 62명이 사망하고 33명이 부상 당하는, 2011년 노르웨이의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에 의하여 기록이 경신될 때까지 미증유의 연속대량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범인 우범곤은 수류탄으로 폭사하여 시신을 알어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노르웨이의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크비크는 멀쩡히 살아서 투항했으며 비슷한, 우범곤 사건 이전에 발생했던 일본의 쓰야마 사건의 범인인 쓰야마가 '할머니가 살인자의 할머니로 살아가게 할 수는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총으로 자살한 반면 우범곤 순경은 수류탄으로 폭사했다는 것이다. 대량학살범들의 기록들을 전부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존재감을 내세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수류탄으로 폭사한 우범곤의 경우에는 범죄 프로파일링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조지워싱턴 공대 총기난사 대량학살 등의 이후에 범죄학자들은 모방범죄를 줄이는 방법은 매스컴 등을 통해 범죄자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일을 하지 말 것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폭사는.... 당시의 경찰이 휴대할 수 있는 무기들을 잘 모르지만, 경찰이 수류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의문이며 연속대량학살이 가능한 실탄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의문이며, 권총 자살과는 달리 자신의 존재감을 없애는 행위이며 시체 바꿔치기 등 사건을 은폐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리고.... 우범곤이 마지막 살인을 한 것은 자정에 총기난사를 마친 뒤 주민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새벽 다섯시 경에 수류탄 2발을 터뜨려 폭사했다는 것은 대량학살의 프로파일링과 상치하며 사건을 은폐할 수 있는 공간적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점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더우기.... 우범곤 연속대량학살 사건이 일어난 후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서정화는 사건이 수습되기도 전에 장관직을 사임했는데 이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건을 수습하고 사임하는 것과는 너무 다른 양태이고... 그리고 그 후임으로 바로 다음 대통령이 되는 노태우가 내무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상세한 사건일지가 있다면 세밀히 검토해보겠지만 그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외견상으로만 보아도 우범곤 연속대량학살 사건은 속된 말로 좀 '아다리'가 안맞아 떨어진다. 물론, 잔혹한 사건일수록 그 동기가 어처구니 없고 어처구니 없는 동기만큼이나 기가 막힐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전개가 일어나지만 말이다.



과연, 전두환 일당은 광주에서만 학살극을 벌렸을까?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