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이니까 거의 20여년 전의 일인 것 같다.

같이 스터디를 한 적이 있는 학교 후배와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학생운동의 선후배끼리 회고담을 나눈 자리였던 셈이다.

이 후배가 술을 좀 마시더니 나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형은 우리에게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가르쳐줬다고 봐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해준 적이 없었어요. 그게 형의 한계였어요."

얘기를 들어봤더니 이건 그 후배만의 평가가 아니고 그 친구 연배 후배들의 공통적인 이야기였다고 한다.

나로서는 좀 충격적인 얘기였지만 사실 생각해보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내 주제에 '왜'라도 잘 이야기했다면 그건 대단한 일이었다고 본다. 그 이상을 나한테 요구하는 것은 무리 아니냐?" 이렇게 웃으면서 지나갔다.

사실 나로서는 그런 얘기를 듣는 게 억울한 점이 있었다. 학생운동은 이미 학교간 연결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 계보 또는 족보에 들어가 있지 않은 나로서는 후배들에게 순수한 '학습' 이상의 것을 해줄 수가 없었다.

나는 사회과학 학습도 선배 없이 혼자서 시작했기 때문에 선후배 간의 구체적인 지도선이란 게 없었다. 후배들에게 학습을 시켜준 기간도 극히 짧았다. 나와 가장 많이 학습을 한 친구들도 그 기간이 3~4개월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위 등 실천의 조직과 동원은 학교간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후배들의 학생운동 이후의 진로나 실천에 대해서는 나는 별로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나 혼자 갈 길 찾아가기도 바빴다고나 할까. 사실 의도적으로 후배들과 만나는 면적을 좁히기도 했다. 졸업연도가 지나고도 또는 졸업하고도 학교 근처를 얼쩡거리면서 운동하는 것처럼 폼을 잡으면서 선배랍시고 후배들 만나 술이나 쳐먹는 것들이 졸라 역겹기도 했다.

아무튼 나로서는 후배들에게 why만 말하고 how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던 것이 한계이자 아픔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더 먹고 다른 학교 출신의 운동권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과연 내가 why만 말한 게 잘못이었을까? how를 말한다는 게 가능했다 해도 그게 바람직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학생운동의 날고 긴다는 스타들이 의외로 그 사상이나 철학적 바탕이 초라하고 빈약하다는 것을 자주 느끼면서부터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

운동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뿌리'를 너무 경시한다는 점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기본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얘기이다.

평판관리 강의를 하신 한 페친께서 학생들이 즉각 적용 가능한 팁만 요구하고 원론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한탄을 하셨다. 이 문제 역시 그 출발점은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 근본적으로 why라는 질문과 그 답변이 탄탄해야 how를 말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why라는 질문을 극도로 기피합니다. 이건 사실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의 구조와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라고 봅니다.

외국에서 이미 검증된 이론과 방법론을 들여와 거기에 우리의 제한된 자원을 집중해서 단기간에 최대의 효과를 보는 방식으로 경제를 발전시켜왔고 정치는 그런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고 방어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why라는 질문 자체가 비효율적이고 시간 낭비일 수밖에 없어요. 중요한 것은 그 이론과 방법론을 실제 현실에 최대한 빨리 적용할 수 있는 how일 수밖에 없습니다. 강의에서 원론보다 tip을 강조하고 요구하는 분위기도 거기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크게 보면 영남패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닥치고 ~하라, 까라면 까라, 안되면 될 때까지, 이유는 없다, 시끄럽다 마 등등이 영남패권이 조성한 폭압적이고 '묻지마' 방식의 사회 질서를 보여주는 표현들이라고 봅니다. ]

기승전 영남패권...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런 집중개발 방식의 주체세력이 영남이었고 그런 방식을 통용해온 기간이 너무 길었다. 그 방식이 극복되지 못하면서 한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일제식 교육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군부 엘리트들이 박정희 정권의 주력군으로 권력을 좌우했던 것도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래저래 생각이 나서 지껄여보는 얘기.

* 이 글 역시 며칠 전 페북에 올린 글인데 옮겨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