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20대 총선은 16년만의 여소야대 구도, 제1당의 교체, 국민의당이라는 제3 정치세력의 대두 등 기존 정치 구도를 뿌리째 뒤흔드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 정치 평론가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번 총선의 가장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현상은 총선 이후 나타나고 있다.

일부 정치 평론가, 교수 등 지식인들과 네티즌이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호남 유권자들의 선택에 노골적인 비하와 모욕을 퍼붓는 모습이 그것이다.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마음의 빚을 떨쳐버렸다, 5.18묘역에 콘크리트를 부어버리라, 전라도 것들은 역시 뒷통수 치기의 달인이라는 망언 등이 온라인 공간을 도배하고 있다. 특정 사이트의 경우 관리자가 혐오 발언을 자제하라는 공지까지 발표해야 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런 혐오 발언이 극우 성향의 일베(일간베스트)가 아닌, 친노 및 진보 성향의 사이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혐오 발언을 한 네티즌들 역시 친노 성향의 사람들로 알려졌다. 교수와 유명 지식인들도 호남 혐오 발언에 가세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 진보 언론은 이런 발언의 선전 무대가 되고 있다.

이런 발언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선택의 자유를 부인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파시즘적 사고방식을 드러낸다. 호남이 친노 세력을 지지하면 민주주의 성지이지만 친노 지지를 철회하면 지역주의 세력이라는 논리이다. 친노만이 민주주의 가치를 독점한다는 아니 친노 자체가 민주주의라는, 폭력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한 번도 친노 세력을 다수 정당으로 선택하지 않은 대구·경북(TK)이나 부산·경남(PK) 유권자들의 선택이 지역주의로 비판 받은 적이 없다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들 발언의 편향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 교수는 4월22일자 경향신문에 게재한 ‘문재인을 위한 변명’이란 칼럼에서 ‘오직 호남만이 지역주의 정치이며, 문재인은 호남을 버리고 영남 위주로 정치를 하라’고 요구했다. 조대엽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의 새로운 정치위원회 멤버였고, 담쟁이 포럼에도 이름을 올렸다. 호남 정치 혐오의 목소리를 높이는 발언이 친 문재인 그룹의 의도적인 행위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 4월 8일 광주를 찾아 “호남 홀대나 차별이라는 오해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치욕이고 아픔”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문재인의 정치적 동지들은 노골적으로 호남 혐오를 부채질한다. 정치 지도자의 공식 발언과 그 지지자들의 극단적으로 상반된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재인 전 대표의 4월 8일 광주 발언이 진정이라면 선거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을 대동하고 하의도를 찾는 것보다 측근과 지지자들이 자행하는 파렴치하고 반인륜적인 발언에 대해 준열한 비판과 경계의 메시지를 보내야 할 것이다.

호남과 호남 정치에 대한 인종주의적 공격과 모욕은 하루 이틀의 얘기가 아니다. 그 공격 대상에는 광주민중항쟁 등 민주화의 위대한 성취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호남의 지지를 얻어 국회의원 등 선출직에 올랐고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던 친노 정치인들이 호남을 보호하고 변호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친노 세력이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호남이 배신했다, 뒷통수를 때렸다”며 삿대질을 하는 것은 적반하장 또는 파렴치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이들의 행동이야말로 20대 총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이 보여준 선택이 정의롭고 지혜로우며 호남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시켜야 할 정치적 결단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명백한 증거일 것이다.

호남 정치에 대한 잔인하고 야비한 인종주의적 공격은 더 이상 용납하거나 방치할 수 없다. 이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인권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이다. 호남 그리고 전국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에 나서주실 것을 촉구한다.
(광주매일신문. 2016년 5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