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고대 문영 사회에서 바지는 야만인 남성들이나 입는 옷이었다.



그런데 편리성 때문에 야만이라고 업수히 여기던 문명 사회의 남성들도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지금도 스코틀랜드 등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남성이 치마를 입고 있지만 만일 남성이 치마를 입고 길거리를 나선다면?



모르긴 몰라도 '공연관련법'에 걸려 경찰에 달려가지 싶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바지를 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민족의 기원에서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의 민족은 각각 다른데 물론, 고구려는 다민족 국가이기는 하지만, 신라는 기마민족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마민족은 야만인이고 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치마를 입었을 한반도 원주민들은 외부에서 유입된 기마민족의 문화를 흡수했고 이는 한반도에서도 편리성 때문에 문화인이 야만인의 문화를 채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한반도 원주민들의 문화 수준이 기마민족의 문화 수준보다 높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편리성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 동력이 되고 그리고 1971년 박정희가, 비록 부정선거로 이겼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는 증거들이 많지만, 대선에서 이긴 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편리성 때문에.



그런데 문화는 점점 복잡해지고 이제는 편리성만이 채택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제 4차 산업혁명의 시점에서는 더욱더. 그래서 어쩌면 한 때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발전이 기마민족의 편리성에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의 편리성은 곧 영남패권주의를 말한다. 그리고 영남패권은 영남패권주의로 타락을 했고 영남패권주의가 기마민족의 편리성을 계승하여 역사의 승리자가 되었지만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은, 동종교배의 위험성 이외에 편리성이 더 이상 시대의 패러다임을 끌고 가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논지는, 영남패권주의의 원형인 영남패권을 온존히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다는 것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