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출처: http://kwangju.co.kr/read.php3?aid=1461769200575979006

전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5·18 당시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고, 이후 대통령이 된 사람으로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싶다. 또 희생자 가족과 시민들을 위로하고 총체적으로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정호용 전 사령관도 “전 전 대통령도 우리도 모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털고 갈 부분은 털고 사과할 부분은 사과해야 한다는 큰 틀의 공감이 이뤄졌다”며 “이제라도 국민 통합을 위해 정리할 건 정리해야할 시점 아니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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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라는 말에 방점을 찍은 건 저 사람 아직 제대로 된 사과가 무엇인지 모르며 여전히 대통령이라는 페르소나를 유지하고 있는 탓이다. 그에게 빌리 브란트의 태도를 원하겠는가만은.

시민들 앞에서 무릎 꿇고서 석고대죄하며 통곡을 하라는 말도 아니고 그놈의 점령군 의식 좀 버리라는 이야기.
시민들 위로는 말고 지 꼬붕들이든 군 장성들이든 '위무'를 하든가 '애무'를 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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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팔 기념재단에서 해마다 자금이 나와 전라도는 군마다(민간 차원) 기념행사 준비위원회가 있어 그 자금을 집행하는데 내가 작년에 어찌어찌하여 참여할 일이 있었다. 그거 집행하는 녀석들이 말하자면 예전 통합진보당 얼라들인데 대빵이 부산 아인데 동의대 영문과 나온 녀석이고 완도 얼라들을 꼬붕으로 거느리고 있다. 학생운동하고 구속되어 문재인이 변론해줬고 돈은 나중에 갚으라 했다드라(갸 언행을 보자면 신빙성이 의심가는 게 당연하지만-구속되었다든가 문재인이 변론해줬다는가 하는 말 자체. 그 놈아 말은 최소 80% 가까이 뻥이다. 완도군 장보고 장학회에 5천만원을 기탁했다는데 확인해 보니까 350만원 했드라. 모두들 5천만원으로 알고 있다). 갸들은 완도 민생민주 행동인가 그것도 휘어잡고 있다. 민생민주 그거 시원이 어딘지 알 사람들은 알 것이고.

꼴새를 보아하니 그 집행자금 가지고 우리 이런 일 하노라고 사진 찍고 앞으로 지역 정치판에 나설 훈장 같은 것을 노리고 하는 거다. 그들만의 리그일 뿐, 완도 사람들은 거의 호응을 하지 않았다. 준비위원회 하는 걸 보면 싸구려라는 게 티가 난다. 뭐 전교조도 나오고 어디어디 나오지만 완장 차려는 모습일 뿐. 내가 일갈을 했고 그 소문이 퍼져 찌질한 부산 녀석과 그 꼬붕들은 한동안 아연실색해 기죽은 모습으로 다녔다.
쌍놈들의 그 르상티망이란.

바로 밑에 꼬붕이 삼십 대 후반 치과의사녀석인데 내 후배지만 생판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치과의사 녀석이 부산 놈(돈 많다드라. 한 20억? 이 놈 허언증 심하다. 그래도 완도-일본을 오가는 무역선을 소유하고 이런 저런 산이며 부동산 소유하고 있으니 최소 그 정도는 된다)하고 노래방에서 술 취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혁명을 외친다. 부산 놈이 말한다. "다음 번 선거에선 ** 자네가 나서 군수해야지". 치과의사 녀석, "아니요, 형님이 먼저 하셔야죠"

부산 놈을 첨 만났을 때 내 사전 정보가 조금 있었는갑드라. 귀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1-2대 민선 군수 차관훈 씨와 아버지는 10촌 사이. 그리고 완도에는 차씨 집안 하면 집성촌까지는 아니지만 차용애 씨를 위시하여 얼마간 좀 배운 사람들, 뭔가 있는 사람들 그런 쪽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은 전보다 쇠락했지만.

그 놈아가 나를 대면하고 첫 마디. "차씨라고 들었는데 차관훈 씨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그렇게 놈은 스스로의 수준을 드러냈다. 천하에 어떤 진보 외치는 나부랭이가 첫 대면에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아래 나오는 세례 받은 후배 녀석 말을 빌자면 저 녀석들은 '짝퉁 진보".

그 뒤로 여러모로 몇 번 부딪쳐 그네들은 나를 공격했고 나는 일단 당하고(원래 혼자 싸운다. 당한다는 것은 확신에 준하는 근거를 잡기 위한 면이 51% - 나는 항상 저런 모습들을 계집들의 모습으로, 군체들(colony, 그 다른 뜻은 식민지) 정한론 책자에 나오는 조선 사람들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내 어떤 인정욕구와는 별개이다 - 며칠 후 밟았다, 말과 글로. 그리고 또 한동안 그들은 고개 쳐박고 다닌다. 지금은 내가 어떤 놈인지 당최 이해가 가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여튼 조심은 한다.

그 얼라들이 내게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하나.
밀실(그 패거리들과 나만이 있는 공간, 식당이든 어느 사무실이든 술집이든)이 아닌 곳에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게 이른바 잘못된 권력의 잉태 시공이니까.

언젠가 호프집에 부산 놈을 불러 한 시간 넘게 장광설을 펴며 부산 녀석을 혼냈다. 욕설은 기본이고 근거를 대가며.
한 시간 내내 녀석은 별 말이 없이 고개 처박고 있다가 이따금 아냐 내가 언제?('내가 언제~에'는 경상도 억양) 이런 대꾸를 할 뿐.
한 후배 녀석을 불렀다. 후배가 하는 말, "이런 더런 새끼, 너는 사람도 아니야" 후배는 떠났다.
그렇게 후배는 돌아온 탕아로서 세례식을 치렀다.
나는 후배를 비롯하여 내가 만나는 많은 이들에게 저런 형태로 상처를 주었다. 새살이 돋기를 바라며.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라고. 거기서 힘이 생긴다고.

그런데하지만 나는 그 한 시간 동안 부산 녀석의 실체를 보았다. 충격을 받고 있지만 연산하는 눈이 돌아간다.
전문의들이라면 떠올릴 생각. 'fMRI를 찍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저 모습이 짐승의 얼개인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같다고나 할까(책을 읽어본 분들을 알겠지만 이 표현은 아직 애정이 남아 있기에 나오는 것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통합진보당과 더블당의 은밀한 연계에 대해 피부로 느낀 것은 고향에 돌아와서였다.
어찌보면 중국의 동북 공정처럼 호남 공정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가 싶은 수준이다.
그래서 나는 병신같은 호남 사람들을 욕하는 것이다. 유개념과 종개념을 빌어. 두 개념이 내가 세상을 보는 축이다.

앞으로는 근거 확보에 나설 생각이다.
인연이 된다면 이것저것 즐기고.
슬슬 몸에 신경학적 마비도 오고 죽기 전에 할 것은 해야 원귀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미디어몹식으로 이야기하자면 그예 '허파 호흡'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