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는 좌와 우의 측면이 있다. 좌는 평등, 공정, 인권을 중시하는 입장이고 우는 능력, 경쟁, 성장, 효율등을 중시하는 입장이라고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모두 사회가 작동하는데 있어서 균형있게 갖춰져야 할 가치이고 덕목들이다. 좌로 쏠린 사회는 모택동, 스탈린식의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우로 쏠린 사회는 나치즘이 그 적나라한 예시다. 

하지만 더 넓은 시야로 인류 문명을 살펴보면, 빨라도 18세기 이후에나 등장한 좌와 우, 혹은 진보와 보수 개념을 넘어선 더 큰 차원의 분류법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와 미래'이다. 

인류 문명 자체가 과거와 미래라는 기준을 바탕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면, 과거에 붙들린 문명과 국가는 필연적으로 쇠퇴했고, 미래를 지향한 국가는 최소한 가만히 있다가 쇠퇴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적어도 진보냐 멸망이냐의 선택지는 있었다. 올바른 길을 잘 걸어가면 진보했고, 길을 잘못 찾아들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면 멸망했다. 하지만 과거에 붙들린 세력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무조건적인 멸망밖에 없었다. 

좌와 우는 선택과 통합의 대상이다. 어떤 경우에는 좌로, 어떤 경우에는 우로, 어떤 경우에는 좌우를 통합해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미래/과거라는 분류와 입체적으로 교차하여 다양한 정치사회적 양상을 도출해낸다. 한때는 미래적 개념이었던 시장자유주의와 방임주의라는 우파적 가치가 포디즘 대량생산이라는 새로운 미래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요부족에 이은 대공황이라는 모순을 노정하자 국가개입주의라는 좌파적 가치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포디즘과 총자본-총노동 협약이라는 좌파적 체제가 공공부분의 비효율과 과다 복지로 모순을 빚자 새롭게 정비된 '신자유주의'가 그 해결책으로 불려나왔다. 이렇게 좌와 우는 번갈아가며 현실적응(미래적응)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그렇다면 한국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 좌와 우 혹은 진보와 보수 세력이 미래에 맞서 올바른 대응을 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커다란 문제가 있다.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은 경제적으로는 국가개발주의, 정치적으로는 우파 권위주의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변화하는 문명사적 격변 속에서 그저 가만히 앉아 현상유지에만 급급하고 있다. 더민주당이 대표하는 진보세력은 경제적으로는 민중계급주의, 정치적으로는 투쟁적 민주쟁취론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정권을 잡은다 한들 새누리당보다 나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두 과거 세력이 빚어내는 퇴행적이고 소모적인 정치갈등이야 말로 대한민국을 주저앉혀 2류 국가로 전락시키는 주범이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이 재벌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애매하게 대변하는 소극적인 우파적 정책을 내놓으면 더민주당이 빼애액! 거리며 모든 민중주의적, 계급주의적, 민주투쟁적 파토스를 끌어모아 정국을 흑과 백의 살벌한 싸움터로 만들어버리는, 하지만 정작 최종 법안 자체는 의회정치에서 원내대표단이 어정쩡하게 합의해서 상황을 종결시키는 현재의 갈등 양상은 정치의 피로도와 비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미래 대안을 최고 레벨의 정책입안자와 지식인들이 모여 고민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한국 정치의 최대 고질병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대외적으로 진보와 합리와 변화를 외치는 민주당쪽에 아무래도 더 묻지 않을 수 없다. 중도개혁적 합리주의로 접근해도 될 사안을 무리한 민중계급론/민주쟁취론으로 들이받아 사태를 도리어 악화시키는 게 그들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이 만약 성공한다면 그것은 좌우를 넘어선 미래 지향의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 때문일 것이다. 군화발 권위주의와 민중주의적 정의론을 극복한 새로운 정치를 보고자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아마 합리적 보수, 중도 개혁, 진보 좌파를 아우르는, 전혀 새로운 좌표에 존재하는 정치적 정체성일 것이다. 기존의 좌우 담론의 매트릭스를 정면으로 깨부수어 지식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정치 운동일 것이다. 이는 박찬종식의 정치혐오주의적 제3지대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새로운 스탠스이다. 

다행히도 국민의당은 선거 기간 내내 미래 세력을 기치로 내걸며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내 판단으로는 유권자의 내심 깊에 감춰져 있는, 진정 2016년에 맞는 새로운 정당과 정치를 보고 싶다는 욕망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건드려 온 것 같다. 국민의당이 30석 이상을 확보한다면 적어도 추후 10년간 전개될 새로운 정치 역동의 수원지로서 작용하리라는 확신이 든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호남이니 친노니 하는 것보다 백배는 더 중대한, 국가의 운명이 걸린 사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