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하루 앞둔 지난 12일(화) 저녁 6시부터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무등공부방에서 '영남패권과 호남의 진로'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발제는 1시간, 질의 응답은 40반 가량 진행했습니다.

진보 성향을 가지신 분들로서는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는, 논쟁의 소지가 많은 주제였고 실제로 활발한 반박과 질의, 응답이 진행됐습니다.

[영남패권과 호남의 진로]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9년 동안 매주 중요한 주제의 토론이 이루어진 무등공부방의 자리에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강정채 이사장님과 김성종 대표님, 이영우 선생님 그리고 오늘 사회를 맡아주신 박미란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 이야기가 상당히 익숙치 않은, 귀에 거슬리는 내용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쓴 것처럼 충성스러운 메시지도 귀에 거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담론 구조의 문제점은 듣는 분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메시지만 전파되고, 정작 필요한 얘기,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메시지는 거의 실종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제 얘기는 기존의 담론과 다른 측면에서 영남패권과 호남의 문제에 접근했다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호남의 열악한 처지는 세 가지 측면에서 나타납니다. 즉, 경제/산업적 낙후, 공공과 민간 분야의 인사차별, 광범위한 인종주의적 혐오 현상 등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처지를 해결하는 것은 호남만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다른 지역의 광범위한 동의와 양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호남 지역 문제의 해결에 다른 지역민들의 동의와 지원,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까요?

<호남의 문제가 곧 대한민국의 문제>

호남의 문제를 호남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문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호남의 한풀이가 아닌,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로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주장을 허위와 기망으로 사실처럼 꾸며서도 안 됩니다. 그런 방식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진실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호남 문제의 해결이 대한민국 전체가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라는 것을 설득하는 것, 이것이 호남 문제의 객관화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호남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고민과 고통, 불만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지역주의라는 비난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했습니다. 호남이 친노 PK세력에게 의탁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태도가 단적인 사례입니다. 호남의 정치적 사회적 정당성을 영남 세력에게 인증 받겠다는 태도인데, 웃기는 얘기입니다.

인증이란 우월한 자격을 가진 자가 그보다 못한 자의 능력과 자격을 평가하고 검증해서 등급을 매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PK운동권 친노가 호남의 정치적 정당성을 평가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친노는 호남에게 정치적으로 평가받을 자격도 없는 무리입니다. 그런데 호남의 권리와 명분을 친노 세력에게 헐값에 헌납함으로써 호남의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해서 해결할 가능성이 사라졌습니다. 호남 정치와 호남 유권자들은 지역주의, 토호, 부패 세력이라는 전제를 깔고 그렇기 때문에 PK 정치인을 지지해야 한다는 도그마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대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저 도그마를 근본적으로 깨트리고 거부하지 않는 한 호남은 영원히 친노의 노예 신세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척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얻어맞는 사람은 있는데 때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구조가 호남의 지역차별 문제입니다. 얻어맞는 사람이 아프다고 울부짖으면 시끄럽다고, 지역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공론의 구조입니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은 맞는 자가 아니라 때리는 자의 정체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즉 호남이 아닌 영남패권을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영남패권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곳곳에 깔아놓은 가시덤불과 철조망, 지뢰밭을 통과해야 합니다. 지역감정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지역구도의 본질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이해관계의 대립입니다. 하지만 지역감정이라는 말에는 이런 지역차별의 본질을 감정의 문제로 돌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영남과 호남이 다 문제고 그런 점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호남이 더 문제라는 메시지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얻어맞아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에게 왜 시끄럽게 떠드느냐고 나무라는 논리를 담고 있는 표현이 ‘지역감정’입니다.

<호남이 비명 지르면 “시끄럽다” 타박>

이 모든 것은 결국 호남이 자신이 겪고 있는 차별의 고통을 자기 자신만의 문제로, 협소화해서 수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호남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접근 방식에 문제가 없는지 원점에서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발언은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고민의 결과를 정리한 것입니다.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오늘 제 발언이 여기 오신 분들이 대부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왔던 논리와는 매우 다른, 심지어 완전히 상반되는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좀더 다양한 관점의 수용이 필요하다는 자세를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가장 먼저 벗어나야 할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 론이라는 착각입니다. 호남과 진보세력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권력을 잡지 못하는 이유를 외부에서 찾는 논리입니다. 호남의 인구가 적기 때문에, 애초부터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등의 구조가 기득권과 영남패권에 유리하게 구성돼있기 때문에 계속 선거에서 패배하고 소수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논리는 패배를 당연시하고 자신들의 실수를 합리화하는 논리에 불과합니다. 정말 호남이 소수인가? 소수라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소수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분석이 결여된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나오는 것이 정치공학입니다. 유권자들의 정치 인식의 변화에 호소하지 않고 그냥 유권자들을 장기판의 말 옮기듯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장난을 치는 겁니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단일화 논란이 이런 정치공학적 접근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전국적으로 호남을 지지하는 정체성을 가진 유권자는 전국민의 25% 정도라고 봅니다. 영남은 어떤가요? 영남 역시 절대적인 다수는 아닙니다. 35%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영남과 호남을 합쳐서 60% 정도. 나머지 40%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호남/진보진영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은 머릿수가 적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호남과 진보의 정치가 영호남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 40%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이 패배의 진짜 원인이라고 봐야합니다. 언론 지형 등을 탓하기도 하지만 한경오 등 진보 언론의 존재 그리고 인터넷과 SNS 등의 발달로 진보의 메시지가 대중에게 전파될 수 있는 길은 훨씬 넓고 다양해졌습니다.

진보언론의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80년대에도 6.29선언을 쟁취해냈고 이후 두 번이나 정권을 창출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보다 진보의 메시지가 훨씬 더 많이 전파되는 요즘 호남과 진보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 대중의 외면을 받는 것 같습니다. 혹시 진보의 메시지가 과거보다 좀더 널리 전파되는 것 그래서 대중들이 진보의 주장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이 대중이 진보를 외면하게 된 진짜 원인은 아닐까요? 이거 농담으로만 이해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새누리당과 더민당이 양분하고 있는 정치의 과점구도를 깨트리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해야 한다고 보지만 그것이 직접 다당제로 이어진다고 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치구조에서 영남패권이 극복되기 전까지는 다당제는 불가능하고 양당제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제3의 정치공간이 없다>

대한민국 정치에는 단 두 개의 정치적 기반과 상징자산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는 박정희-경제개발-반공-남북대립-영남-새누리당으로 구성된 정치 기반 그리고 또 하나는 김대중-경제개혁-민주화-남북대화-호남-민주당으로 구성된 정치 기반입니다. 이번 총선으로 3당 구도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이것은 과도기적 형태에 불과하고 결국 양당체제로 회귀할 것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의 주도권을 영남패권이 장악하고 호남이 거기에 반대하는 구도가 유지되는 이상 제3의 정치세력은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됩니다.

호남과 진보가 다수가 되지 못했던 것은 저 김대중-경제개혁-민주화-남북대화-호남-민주당이라는 정치 기반과 상징 자산이 영호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호남보다는 영남이 내세우는 정치적 자산이 다른 지역에게 좀더 설득력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정치의 본질, 진보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가치가 존재합니다. 도덕과 철학, 학문, 종교 등등. 하지만 정치가 추구하는 가치는 결국 딱 하나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의 개선 좀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먹고사니즘 다른 말로 부국강병의 가치가 그것입니다. 진보는 바로 그러한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물질에 기반한 과학과 합리주의를 내세우는 정치 철학입니다. 실사구시의 정신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진보들에는 무슨 도사, 철학자, 종교인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바보들아 문제는 경제’라고 단언했습니다. 우리나라 진보들 특히 호남 사람들은 물질이나 돈,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부정하고 고상하지 못한 태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며 진보에 대한 오해와 무지의 소치입니다. 진보는 경제적 조건의 개선, 성장 그리고 생산력의 향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가치이며, 그러한 물질적 조건의 개선에 기여하는 가치입니다.

호남이 우리나라 주류 질서에 의해 소외되고 억압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탓에 호남 지식인들은 반자본, 반시장, 반기업, 반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일 수는 있어도 결코 진보는 아닙니다. 진보는 물질의 기반 위에서 변화와 개선을 추구하는 철학이며 종교와는 정반대의 지향을 나타냅니다. 동물은 자기 자신을 재생산할 뿐이지만 인간은 이 세계를 재생산하는 존재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반자본, 반시장, 반기업을 추구하는 게 근대화를 뛰어넘는 게 아니라 근대화 이전으로 즉 전근대와 봉건의 유습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되어서는 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호남과 진보가 추구해온 대안이란 게 사실은 전근대와 봉건, 미신은 아니었는지 과학에 대한 거부와 적대시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남패권이 우리나라의 지배권을 장악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부국강병의 명분과 업적이라는 점에서 호남이 내세우는 정치적 가치보다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서? 영호남을 제외한 나머지 40%의 국민들이 그렇게 평가한 겁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이 방법론에서 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고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지만 결국 광범위한 유권자 대중이 그들의 업적을 인정했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영남패권 지속되면 경제발전 불가능>

그러면 호남에게는 희망이 없는 걸까요? 앞으로도 계속 영남패권이 대한민국의 주도권을 계속 쥐고 호남은 그 억압과 차별, 모욕을 감수해야 할까요?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영남패권이 앞으로도 계속 대한민국의 경제와 생산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그 점에서 저는 영남패권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영남패권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주역이 아니라 그 걸림돌이라고 봅니다. 그걸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1997년 IMF 외환위기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경제 성적이라고 봅니다.

IMF 외환위기는 정권 내부의 정보 유통과 의사결정 구조의 왜곡, 고위 공무원 집단의 도덕적 파탄, 기업 경영의 투명성 부재 등에서 비롯된 비극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 문제들을 낳은 핵심 요인은 영남패권 엘리트들이 독점해온 대한민국 의사결정의 불투명성과 불공정, 부족주의적 폐쇄성입니다.

영남패권은 박정희 정권 이래 영남 출신 관료들이 영남 출신 재벌들에게 제한된 자원을 독점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개발했습니다. 그 결과 영남 지방에 거대한 공업 벨트가 들어섰고 영남 사람들이 취업과 부동산 가격 폭등의 혜택을 입었습니다. 이 방식은 성과도 거두었지만 그 내부에 치명적인 약점과 한계도 키워왔습니다. 그 약점과 한계가 외부 환경의 변화에 의해 그 전모가 까발려지고 추락한 사건이 바로 IMF 외환위기인 것입니다.

영남패권이 주도해온 경제개발 방식의 한계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역할을 맡았던 김대중 정권의 성과와 비교해보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5년 4월 “우리나라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발언합니다. 이른바 베이징 발언입니다. 이로부터 2년 후 IMF 위기가 현실화되고 우리나라 일류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말하는 2류 기업이란 사실 삼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기업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사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당시 세계 시장에서 대부분 3류 수준이었습니다.

IMF 당시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의 통계를 전혀 믿을 수 없다고 한 IMF 관계자들의 발언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고위 공무원들과 기업, 권력층이 끼리끼리 뭉쳐서 봐주고 땅 짚고 헤엄치기로 경영을 하니 경영의 투명성은 존재할 수 없었고 오히려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습니다.

기업들은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이윤을 얻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부정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의 저러한 노력이 신기술과 경영 효율화를 낳고 사회 전체의 경제적 여유를 낳는 기초가 됩니다. 기술과 사회 나아가 문명의 혁신을 이루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혁신 대신 공권력 결탁 선택하는 구조>

하지만 바로 저런 속성 때문에 기업은 가능하다면 혁신을 피하려고 합니다. 혁신이란 고통스러운 과정이고, 투입하는 자원에 비해 실패할 위험성도 높습니다. 흔히 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하는 표현이 이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업은 혁신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이윤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 방식을 선택합니다.

박정희 정권은 보호무역, 차관 도입 특혜, 시장 규제로 인한 진입장벽, 세제혜택, 관치 금융 등으로 재벌 기업들을 지원했습니다. 그 재벌 기업의 오너 대부분이 영남 출신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보호막이 주어질 경우 기업들은 굳이 힘들여서 혁신을 하고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온실 안에서 보호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세계 경제는 계속해서 국가 간의 무역 장벽을 없애고 거래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필연입니다.

IMF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우리나라 최고 권력과 고위 공무원 집단 그리고 재벌들이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귀결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영남패권이 독점한 의사결정 권한과 자원 배분권을 회수하고 정상화하는 방법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IMF 극복 과정과 그 결과가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지만 IMF 극복 과정의 방향과 방법론이 김대중 대통령의 독특한 철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IMF의 강요에 의해 부득이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정책이 많았고, 선택의 폭도 넓지 않았습니다. 정책 집행 과정에서 일부 의도치 않은 실수도 있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남패권 아래의 대한민국에선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거대하고도 결정적인 변화가 바로 김대중의 집권으로 가능해졌습니다. 그것은 영남 출신 정권과 영남 출신 관료들과 영남 출신 재벌들이 결탁해서 서로 봐주고 담합해서 대한민국 경제를 주무르던 구조가 깨졌다는 것입니다.

바늘끝만한 틈도 허용하지 않던 영남패권의 거대한 카르텔에 박정희 정권 이래 최초로 이질적인 요소가 섞여들었습니다. 바로 호남 또는 비영남 출신들이 정권 내부의 핵심에 들어가기 시작한 겁니다. 물론 과거에도 호남 출신 또는 비영남 출신이 정권 내부에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성격이 달랐습니다. 철저하게 영남패권의 하수인 부속물로서 기능하던 사람들과 독립적인 발언권을 가진 사람들의 영향력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김대중 정권에서 호남 출신들은 숫자로 따지자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능력도 그리 대단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죽하면 김대중 정권에서 호남 출신을 등용하려고 해도 그럴 자격을 갖춘 인물을 찾을 수 없다고 했겠습니까?

<사소한 변화가 불러온 거대한 혁신>

하지만 영남 출신들끼리 다른 사람들 시선을 전혀 의식할 필요 없이 자기들끼리 대한민국의 부와 권력을 주고받던 이너서클의 질서를 위협하는 데에는 충분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메기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더 이상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온실 속 화초 식으로 특권에 의지해서 이윤을 누릴 수는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경제학자도 아니고, 당시 기업들의 내부에 들어가보지도 못했던 저는 그 구체적인 과정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게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말했던 그 2류 3류 기업들이 IMF 이후 어떻게 됐습니까? 자동차, 중공업, 석유화학, 통신, 금융, IT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대다수 대기업들이 세계 일류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이거 부인할 수 있습니까?

삼성을 비롯한 한두 기업이 저런 변화를 이룩했다면 우연이거나 또는 개별 기업들 차원의 변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IMF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의 혁신은 전방위적인 것이었습니다. IMF가 시행한 정책 때문일까요? 하지만 똑같이 IMF 외환위기를 맞이한 국가들 가운데 한국처럼 성공적이고도 혁신적인 변화를 이룩한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김대중 정권 이후 다시 영남 출신들이 정권을 차지한 이후의 변화도 이 사실을 보여줍니다. 김대중 정권의 기조를 어느 정도 유지했던 노무현 정권 이후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은 본격적으로 호남색 지우기에 돌입합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김대중 정부의 경제 성장률은 5년 평균 5.32%이지만 IMF 파문의 직격타를 맞았던 1998년을 제외하면 8.03%에 이릅니다. 노무현 정권은 4.48%, 이명박 정권은 3.2%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지난 3년간 평균 2.6%입니다. 세계 경제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까요?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들 중에서도 한국보다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곳이 많습니다. 원래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성장률도 낮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통계는 김대중 정권의 영향이 감소할수록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정권 내부에서 호남의 영향이 줄어들고 영남패권의 영향력이 강화될수록 대한민국의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이 위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간접 증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영남패권의 입장에서는 공무원의 권한과 규제가 강화되고 공공 부문이 확대되는 것을 원합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권력은 개방과 투명성, 경쟁을 싫어합니다. 절대 권력일수록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가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것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힘들게 혁신에 나섰던 기업들은 다시 공무원들의 눈치를 보며 편하게 이윤을 확보하는 길에 매달리게 됩니다. 이것은 기업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경쟁 기업이 보다 손쉽게, 위험 부담 없이 이윤을 확보하는 판에 자기들만 힘들고 위험부담 높은 길을 선택할 경우 경쟁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개별 기업들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경제 전체에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개방은 경제 전체에는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개별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위협이 됩니다.

<면세점 파문이 드러낸 영남패권의 ‘속살’>

지난해 면세점 면허 파문을 기억하십니까? 중국 요우커들을 상대로 유통 마진을 노리는 이 사업의 특허권을 얻기 위해 현대산업개발, 호텔신라, 롯데, SK, 신세계 등 굵직한 재벌기업들이 피 튀기는 경쟁을 벌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첫째, 대한민국의 최대 기업들이 단순한 유통 마진에 절박하게 매달려야 할 정도로 기술과 경영, 비즈니스의 혁신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 둘째, 거대 기업들의 운명이 어느 사이엔가 다시 규제와 혜택의 권한 즉 칼자루를 쥔 고위 공무원들의 손에 좌우되는 시대로 우리나라가 후퇴했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공공 부분은 전체 경제의 50% 내외라고 하지만 실제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포함하면 그보다 훨씬 비중이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공공 부문은 결코 합리적이고 경제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경제의 암적 존재입니다. 얼마 전 이세돌-알파고 대결이 관심을 끌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인공지능(AI) 발전을 위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자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한 얘기가 “한국의 인공지능은 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혁신은 창의적인 발상과 방법론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공무원과 공공 분야가 하는 일은 기존의 검증 기준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창의와 공공은 정반대의 방향을 추구합니다. 정부가 돈을 대서 창의와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까? 정부는 그 결과물에 이미 완성된, 기존의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를 바탕으로 한 혁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무원들의 갑질과 특권 나눠주기 그리고 영남패권의 영속화가 남았습니다. 이것은 조선시대 관존민비이며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재현입니다. 이런 시대에 흙수저 금수저 타령이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영남 출신 고위 공무원들이 영남 출신 재벌기업들과 결탁해 특권을 대대로 누리는 사회에서는 계급 이동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호남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해 민중대회가 그것입니다. 제 주변 호남 분들도 이 대회에 꽤 많이 참석하시는 것 같더군요. 그 중 한 사람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왜 민중대회에 참석하느냐고 물었더니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을 저지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지금 호남에 자본이 많은 게 문제냐, 적은 게 문제냐? 대답하지 않더군요. 제가 또 물었습니다. 노동개악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는 게 대한민국 상위 10% 안에 들어가는 민주노총, 공무원, 전교조라는 것은 사실 아니냐? 여기에 대해서도 역시 대답하지 않더군요.

지난해 민중대회에 울산이나 포항 등 영남 공업벨트의 노동자들이 참석해 싸웠다면 저는 찬성은 하지 않아도 이해는 했을 겁니다. 그게 국가 경제에 끼치는 해악을 생각하면 찬성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권익을 위해서 싸운다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에 자본이나 공장이 너무 없어서 착취당할 기회마저 없는 호남 지역의 가난한 민중들이 왜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상관없는 아니 오히려 자신의 이해관계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투쟁을 하고 피를 흘리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업과 경제의 혁신이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기술 발전으로 인해 열리는 비즈니스와 경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때를 놓치지 않고 현실화하는 것입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러한 혁신의 요구는 커집니다. 혁신하려면 과거의 틀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특히 자본과 인력, 정보의 이동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좌파는 이러한 이동을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호남에 자본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가요?>

우버 택시라는 게 있습니다. 일종의 차량 공유 서비스로, 택시 면허 없이도 차량과 승객을 연결해줍니다. 지난해 기준 무려 69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 스타트업입니다. 물론 기존의 택시 업체들에게 이 회사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이 신생 서비스의 합법성 여부를 놓고 법적 분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 법적 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우버는 결국 합법화될 것이고 저런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국가 사회일수록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승용차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당시 우마차를 운행하던 사람들에게서 격렬한 저항과 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수용하려면 사회가 유연해져야 합니다. 자본, 인력, 정보의 이동이 이것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진보는 노동개악 반대라는 명분으로 유연화를 가로막습니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생산력 발전, 경제 발전, 합리성 제고를 방해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가로막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저 늦출 수 있을 뿐입니다. 늦추는 데 성공할 경우 무슨 결과가 될까요?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불행해집니다. 낙후되고 후진화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우버 서비스가 진출했지만 결국 기존 택시 사업자의 눈치를 본 서울시 박원순 시장의 강경한 태도에 밀려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서비스에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야 콜버스라는 신규 서비스가 규제에 걸려 불법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존의 비즈니스, 기존의 일자리를 보호하려고 들면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고 그 피해는 결국 국가 전체가 떠안게 됩니다. 규제로 인해 일시적으로 보호받은 택시 등 기존 서비스도 장기적으로는 똑같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호남은 지금까지 이런 진보의 태도에 우호적인 편입니다. 제가 감히 단언하자면 이런 경향을 벗어나지 못하면 호남은 결코 소수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소수라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가령 미국이나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이라면 소수도 괜찮습니다. 소수에게도 상당한 권리가 보장되고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영남패권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후진성과 전근대성, 비합리성이 결정적으로 호남에 대한 차별과 혐오, 증오를 통해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호남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영남패권보다도 더 합리적이고 선진화된 방식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하고 부국강병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게 바로 호남에게 주어진 대한민국 역사의 과제입니다. 이것은 누가 대신한다고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영남패권과 호남 차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호남이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지방이 되는 것, 그것은 영남패권의 척결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 전까지는 호남은 고통스럽지만 영광스러운 이 짐을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영남패권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호남의 고립과 호남 비하, 호남 악마화라는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사적 소유가 갖는 진보적 성격 이해해야>

이런 얘길 하니까 저를 자본의 주구, 수구꼴통이라고 보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제가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규제의 강화를 주장하고 큰 정부를 지향하는 사람들보다는 진보의 본질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를 어설프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진보의 적이며 무조건 척결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사회경제 체제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고 생산성이 높은 시스템입니다. 사적 소유를 절대악으로 여기는 진보 인사들이 많지만 사실 사적소유의 확립이야말로 인류 문명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사회적 진보의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구한말 우리나라에 왔던 외국인들은 당시 조선의 평범한 민중들이 무엇 하나라도 장만하면 관원들이 온갖 명분을 붙여서 뺏어가기 때문에 생산 증대나 부를 축적할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증언합니다. 우리나라 진보 진영은 이런 역사적 배경도 이해하지 못하고 사적 소유를 척결하고 규제를 강화하고 공공 부문을 확대하면 지상 천국이 도래할 것처럼 말합니다. 이건 좋게 말해서 착각이고 보다 적나라하게 말해서 사기입니다.

호남은 현재의 자칭 진보 진영과 결별해야 합니다. 진보 노선이랍시고 반기업 반시장 분위기에 젖어있으면 결국 돈은 모두 영남에게 헌납하고 호남은 늘 가난하고 헐벗으며 살자는 얘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호남이 왜 그래야 합니까? 문재인과 친노세력이 지난 대선 때 말했던 사람이 먼저라는 주장은 이러한 물질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무시하고 그냥 정신승리로 버티자는 얘기일 뿐입니다. 정작 친노와 유명 진보들은 정신승리를 믿지 않습니다. 그저 호남 사람들만 정신력으로 버티라는 얘기입니다.

진보 진영은 호남의 문제에 대해서 단 한 번도 관심을 갖거나 해결 노력을 기울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진보 진영 인사들을 만나서 지역 문제를 얘기할 때 거의 언제나 듣는 얘기가 “그런 문제는 지역이 아닌 계급으로 접근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그 계급 문제는 언제쯤 해결된다는 겁니까? 그때까지 호남은 굶어죽고 맞아죽고 욕먹어 배터져 죽으라는 얘기입니까?

우리나라 진보진영은 장애인, 여성, 다문화, 반려동물 등 계급문제가 아닌 이슈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오직 지역 문제에만 적대적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실제로는 영남패권의 동반자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다른 얘기는 다 떠들어도 신경 안 쓰지만 딱 하나 지역 문제, 호남의 고통만은 얘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 바로 지역차별, 호남의 문제가 영남패권의 본질을 건드리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슈는 영남패권의 위협이 아니지만, 호남의 문제는 영남패권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친노 패권의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해온 것도 친노 패권이 진보 세력과 한 몸이 되어 호남을 속박하고, 호남을 그들의 노예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남패권의 변형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의 도덕적 상징성을 무기로 내세워 호남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친노 세력은 사실상 우리나라 진보 진영의 제도권 대리인(agent)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남은 영남패권이 부닥치고 있는 한계와 허점을 치고 들어가야 합니다. 영남패권은 결코 규제개혁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개혁에 나선 것은 그 현실적 절박성 때문입니다. 그 진정성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의도가 좋아도 그 결과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본질에 의해 한계가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친노 좌파와 결별이 문제 해결 출발점>

그 한계란 바로 영남패권의 핵심인 고위 공무원 집단 및 그들과 밀접하게 결탁한 재벌 그룹 오너들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영남 유권자들입니다.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확실한 지지기반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이들 지지 세력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단순한 민주화 투사가 아니었습니다. 박정희식 경제개발의 한계를 드러낸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모델의 단초를 제시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것은 규제와 특권의 철폐, 소수의 폐쇄적인 이권 독점구조를 핵심으로 하는 영남패권의 극복을 말합니다. 이러한 과제를 이룩하기 위해 호남은 먼저 친노 좌파와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호남의 문제는 결코 호남만의 문제가 아니고 대한민국이 도약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필수 선결 요건입니다. 호남의 문제를 호남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문제로 만드는 것이 호남 문제의 객관화입니다. 그리고 이 객관화는 호남에게 정신 승리가 아닌, 물질적 개선과 생산력의 발달이라는 가치관으로 무장할 것을 요구합니다. 호남은 이 지역 진보 성향의 지식인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의 반시장 반기업 정서를 벗어나야 합니다. 호남이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내면화할 때 호남의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고 대한민국도 새로운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찾게 될 것입니다.

지역차별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의외로 호남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공부도 하지 않고 자료도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것도 진보 이념이 지닌 부정적 영향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진보 이념은 역사의 결론, 해답이 정해져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부적인 자료나 디테일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답이 다 나와있는데 시시콜콜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태도는 바꾸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하나, 우리나라 진보 세력이 잘 쓰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른바 행복지수라는 것입니다. 전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부탄이라는 겁니다. 대한민국은 거기 비해 행복지수가 매우 낮다고 하더군요. 대한민국이 경제는 앞섰지만 실제 삶의 질은 부탄보다 떨어진다는 얘기를 하는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과 부탄 사이에 비자니 뭐니 하는 제도적 경계를 없애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이 살고 싶은 곳으로 이동하도록 해보자. 과연 어느 나라에서 어느 나라로 사람들이 이동하게 될까?”

실제 이런 실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실험의 결과를 대신할 수 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전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부탄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취업을 하고 싶어서 현지에서 한국어 학습 붐이 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좌파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사례 아닐까 싶습니다.
(2016년 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