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치는 이데올로기고 이익은 경제적 문제이고 '먹고 사는 문제'가 곧 이데올로기 즉, 가치=이익이니 말이다.

'땅을 파봐라, 10원 한푼 나오나?'라는 속언은 가치와 이익의 합치적 표현이다. 그리고 호남의 선택 변경은 '문재인이라는 우물'을 열심히 팠는데 물이 안나와서 '안철수라는 우물'을 선택한 것 뿐이다. 물이 안나와서(또는 안나올 것 같아서) 우물 파는 곳을 변경했는데 그건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이다.

"WTF, 그렇게 고생했는데도 물이 안나왔으니 어쩌카나스카?"


굳이 비난해야 한다면 먼저 파던 우물을 매립해야 했는데 하지 않아서 안전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고 새로 판 우물에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리라. 뭐, 이 것도 부언하자면 길어질 비유이므로 생략하겠지만 말이다.


2. 피노키오님은 5 x 5 = 25라는 계산을 하다가 '오 곱하기 오가 25 맞던가? 내가 구구셈을 제대로 외우고 있나?'라는 의심이 들어 5+5+5+5+5=25라는 검산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passion님께서 '야, 오 곱하기 오는 25잖아?'라는 일반성과 보편성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다.

5 x 5 = 25
5 + 5 + 5 + 5 + 5 = 25

둘다 맞는 결과를 쓰기 위한 기호 '='는 보편성, 결과를 도출하기 위하여 쓴 기호인 'X'와 '+'는 일반성. 바다는 강에서 흘러들어 오기도 하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려 채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바닷물의 구성을 구분하면서 '이건 강물이니까 바닷물 자격이 있고 이건 빗물이니까 바닷물 자격이 없다'라고 할 수 있을까?


3. 가치는 이익이고 이익은 가치이다. 수식으로 표시한다면 가치 = 이익인데 피노키오님은 이걸 우선 순위로 부여했다. 읽는 사람에게는 이익 > 가치라는 부등호로 읽혀질 수 있는데 이는 피노키오님이 간과한 것이고 또한 passion님은 반대로 가치 = 이익이라는 수식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가치는 이익에 우선한다'로 생각 저 부등호로 잘못 인식한 결과이다.


4. 1960년대의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를 생각해 보자. 과연, 우리가 배운대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싸움'이었을까? 아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싸움'은 레토릭에 불과하다. 그 실제는 땅따먹기이다. 소련이 표방한 공산주의는 미국이 표방한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땅이 넓을수록 즉, 땅이 넓어 소비자들 수가 많을수록 유리해지는 경제구조이므로.


이는 식민지 시대에 서구 열강이 더 많은 식민지를 획득하기 위하여 서구 열강들끼리 전쟁도 불사했던 이유와 아주 같다.

결국, 냉전은 경제적 이익이라는 기의를 숨기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이라는 기표를 내세운 것으로 기표는 기의에 반하지 않고 기의는 기표에 반하지 않는다. 이는 곧, 가치와 이익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원론과 이원론의 논쟁은 치열하기는 하지만 그 논하는 대상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보편성과 일반성의 논쟁에서 일반성이 보편성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일반성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전에 독재를 했던 독재자들의 공통점은 경제를 부활시켰다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일등 공신은 경제를 부흥시킨 박정희'라는 호사가들의 발언이 아주 허언이 아닌 것처럼, 가치와 이익은 선후 구조를 가질지언정 우선 순위를 가질 수 없다. 논점은, 그 선후 구조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후'를 해결하기 위하여 '선'이 잘못되었을 때 그 '선의 방법'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passion님의 주장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비추어지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일등 공신은 경제를 부흥시킨 박정희'의 반대되는 명제인 '민주주의는 경제의 부흥이 없어도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라는 주장으로 판단되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passion님의 주장이 이렇다면 간단하다. passion님께서는 '경제의 부흥이 없이 민주주의를 토착시킨 나라'의 예를 들면 된다. 그런데 이 명제는 '박정희는 독재자지만 훌륭한 이유가 독재자 중 유일하게 경제부흥을 시켰기 때문'이라는 양상논리의 또 다른 형태의 명제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