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겟살레님께서 질문을 하신 것을 사회연결망 조사 결과를 가지고, 질문을 받은 당사자는 아니지만, 답변을 드려볼까 한다.

우리 속언에 '한다리만 건너면 다 안다'는 말이 있다. 흔한 표현으로 '한국은 연줄이 지배하는 사회'이며 사회학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한국은 좁은 세상(small world)'라는 것이다. 이 사회연결망 조사를 한 것이 있는데 한국은 3.5명 그리고 미국은 5.5명이라고 한다.


한국은 좁은 사회라고들 한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고도 한다. 과연 한국 사회는 몇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회일까. 중앙일보·연세대 공동 '사회 연결망 조사' 답은 3.6명이다. 전혀 모르던 사이끼리라도 세 사람 또는 네 사람만 거치면 다 알게 된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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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이와 같은 조사가 있었다. 결론은 '5.5'였다.'6.5단계'라는 답이 나왔지만 그네들은 우리가 한 다리 건너는 것을 두 단계 거친다고 계산했기 때문에 우리식으로 말하면 '5.5 다리'다. 어떻든 한국은 미국보다 한결 '좁은 세상'(small world)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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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살레님은 '성평등주의자'로 알고 있다. 나도 '성평등주의자'이다. 그런데 만일, '외부 손님이 왔을 때 커피를 타서 대접하고 잔심부름을 하는 사환급 여성을 뽑을 때 판단기준을 이야기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므로 나는 '성평등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업무 능력의 변별력이 중요하지 않은 경우에 나는 '미모 우선'으로 직원을 뽑는다. 좀더 나아가 볼까?


여성이 많은 디자이너들을 채용할 때 입사 지원 여성들 중 직무 능력의 변별력을 내가 판단하기 힘들 때 (사실, 이력서나 첨부된 포트폴리오로 직무 능력의 변별력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 디자인이라는 직무의 특성 상. 이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은 세심한 정도의 변별력 차이를 부여할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변별력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하드웨어 엔지니어들 변별력 차이를 부여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나는 미모 우선으로 직원을 채용한 적이 있다.


두번째의 경우, 겟살레님은 나에게 '성평등주의를 가장한 드러운 성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할 수도 있고 그렇다면 비난을 감수하겠다. 어쨌든 변별력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것은 내 무능력이니까. 그러나 첫번째의 경우에는 겟살레님은 채용 기준을 다르게 가져갈지언정 나를 '성차별주의자'라고는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미모를 출신지역으로 치환시키면 어떨까?

'호남사람은 경리직에 채용하지 않는다'라는 어느 호남출신의 여성 엔지니어가 오빠에게 핸드폰으로 통화했던 내용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2년 내가 테헤란로에 있던 한 벤처기업의 연구소장으로 근무할 때 우연찮게 엿들게 되었던 내용이다.

'호남 사람과 제주 사람은 뒤통수를 잘친다면서요?'라는 제주 출신인 내게는 너무도 모욕적으로 들려 들고 있던 커피잔의 커피를 발언자의 얼굴에 쏟아부었던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지금도 후회하는 것은, 몇천만원의 합의금을 물어내더라도 그리고 합의를 보지 못해 콩밥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 발언자의 두다리를 뿐질러버리지 못한 것이다.



겟살레님은 새벽에 열리는 일용직 용역시장을 가보신 적이 있는가? 2002년 당시 테헤란로에서 조금 더 가면 새벽마다 용역시장이 열린다. 철야를 하다가 머리를 식히려고 주변을 배회하다가 발견한 곳인데 새벽 6시쯤에 열리는 그 용역시장에는 많은 일용직을 원하는 사람들이 운집해 있으며 봉고차가 와서는 '복불복식'으로 일하는 사람을 선별 차에 실고 간다.


당시에 나는 호남차별에 대하여 구조적인 접근을 할만큼 인식이 높지 않았고(뭐, 지금도 그렇지만 ^^) 또한, 뽑히지 않은 사람들에게 '호구조사를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뽑히지 않은 사람들의 출신도별 조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매일 뽑아가는 사람만 뽑아가네.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물론, 이 이야기가 어떤 차별 의식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아주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뽑힌 사람들은 이미 일을 성실히 하는 것이 증명이 되었고 봉고차로 픽업해 가는 사람들에게 그 리스트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치, 각 기업의 채용담당자들이 어떤 인명리스트를 공유하는 것처럼)


그러나 내가 사환급 여성을 미모 기준으로 뽑는 것처럼 과연 일용직에서 성실성이 뽑는 기준이 되었을까? 나는 성실성보다는 인맥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위의 사례들을 호남차별에 대입해보자. 여기서 호남차별의 실재성에 대하여 논의하고 싶지 않다. 당사자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 당사자들의 주장이 참이라면 경험에 의한 것일테고 거짓이라면 정치성이 높다는 것일테다. 거짓이라면? 왜 그들이 정치성이 높을까?하는 문제인데 이는 내가 아래에 분석한 각국의 투표 참여율이 '소득이 높고 학력이 높을수록 비례해 가는 경향'과는 반대 현상이고 이는 호남차별이 실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차별을 정치권력을 잡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며 호남의 지역낙후가 가장 심함에도 역대 선거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런 사실을 가지고 겟살레님께 답변을 드려본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난한 사람은 호남에만 있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중, 집단적인 정치적 성향은 골수 새누리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예를 들면 대구에 사는 평범한 빈민들은 집단적으로 새누리를 지지할 겁니다. 

호남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난이 영패주의라는 사회구조 때문임을 알고 있다고 했는데요,
그렇다면 호남에 살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의 가난이 어떤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보는가요? 그리고 이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집단적으로 새누리 등을 지지하는가요?

지금은 인력파견회사로 대부분 대체된 일용직 인력시장에서 딱히 영호남의 출신지 차이가 아니더라도 '사회 연결망 조사'에서 보여주듯 인맥이라는 것은 한국에서 중요한 팩터이고 따라서 같은 빈민층의 경우에도, 사회의 계층 이동성이 빈약한 대한민국에서, 국가적 헤게머니를 쥐고 있는 영남의 현실이 영남빈민들에게는 이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며 호남빈민들에게는 이 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그들의 경제적 이익을 높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결국, 논의해야할 부분은 '호남차별의 실재인가?'이며 호남빈민을 논하는데 영남빈민을 끌고와서 질문하는 것은 한국 진보진영의 잘못된 접근인 '계급에 의한 투표 주장'과 같은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