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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곡중 <...추억>은 7분 이후입니다. 앞선 두곡은
Albeniz의 <Jota Aragonese>와 Franz Ries의 <La Cappriciosa>.

 음악을 듣는 사람이면 에밀 길렐스 이름을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길렐스(1919~2008)를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둘은 자매간인데 엘리자베스의
이름은 그 빛나는 연주력에 비하면 왠지 그늘 뒤에 감춰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모스크바의 추억>, 폴랜드가 "바이올린의 쇼팽" 이라고 자랑하는  작곡가 핸릭 
비에냐프스키의 불과 8분여의 소품인데 곡명이 너무 평범해 그냥 지나칠 수도 있
지만 작곡가 특유의 매력들이 골고루 배치된 범상치 않은 작품이다. 모스크바, 그
도시에 대한 추억이라면 나도 할 얘기들이 꽤 있는 편이다. 남의 나라 도시를 그
리워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지만, 가끔 그곳에서 겪었던 이런저런 기억들을
떠올리다 보면 그곳에 다시 가서 전에 거닐던 골목이나 상점 거리를 다시 걷고 싶
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비에냐프스키의 이 곡을 찾아 듣는다.
 
 비에냐프스키 작품이 모두 그렇지만 이 곡 역시 매우 섬세하고 바이올린의 난해
기교를 요구하는 변화무쌍한 곡인지라 마음에 맞는 연주를 듣기가 쉽지 않다. 이
름있는 연주가들 연주를 이것저것 찾아들었지만 한차례도 만족을 얻지 못했다. 어
떤 것은 너무 거칠고 산만해서 듣다가 그만두었다. 유명 연주가도 자기 기분에만
젖어 곡이 지닌 섬세한 부분을 놓치고 지나는 경우도 있다. 곡은 작곡가가 썼지만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연주가이다. 그런 불만으로 이것저것 연주를 찾다가 운 좋게
도 엘리자베스 길렐스를 만났다. 
 
 음악은 물안개처럼 증발해버린 기억의 영상을 되살려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러시아의 두 도시 페테르부르그와 모스크바, 그곳에서 음악생활 전성기를 모두 보낸
작곡가에게 그 땅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년대기를 살펴보면 모스크바의 기억
들이 핵심부분인 걸 알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멋진 연주회를 가졌고 우연이지만 이
곳에서 45세 짧은 생을 마감했다. (<모스크바의 추억은> 1952년에 치러진 이 연주회
를 위해 준비된 곡이라고 한다.) 재능 많고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작곡가에게 그 도
시의 기억들이 얼마나 다채로운 그림들로 채워졌을 거라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
는 8분의 곡 안에 그 다채로운 풍경들을 유감없이 그려놓았다. 가슴을 저미는 것 같은
아픈 장면, 환희의 날개 짓을 하며 비상하는 모습들, 뒷골목의 가난, 화려한 연회장의
뜨거운 열기, 이런 풍경은 그 도시 태생 보다 잠시 머무는 이방인이 더욱 생생하게 느
낄 수 있다.
 
 추억의 문을 여는 바이올린 서주는 마치 날아간 기억들을 불러올듯한 기세로 강렬하
고 장엄하다. 그러나 곧 다감한 속삭임으로 바뀌어 우리를 아련한 기억 속으로 끌고 간
다. 이런 급변신은 작곡가의 특기이다. 엘리자베스 길랠스는 이런 변신에 너무도 능숙
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는 여인이 수틀을 들고 수를 놓듯 섬세하고 변덕 많은 이 곡을 
흠집 하나 없이 완벽한 풍경으로 빚어낸다. 그렇다고 힘이나 기세가 부족하지도 않다.
정확하고 단호한 프레이징, 남다른 감수성이 묻어나는 그의 연주에서 위대한 이자이의
모습이 느껴지는 데에 스스로 놀란다. 유진 이자이는 벨기에 음악원 시절 비에냐프스키
의 제자이기도 하다.
 
 이 짧은 환상풍의 곡은 "붉은 사라판(The red Sarafan)"이란 러시아 민요의 선율을 주
선율로 차용했는데 사라판은 러시아 민속무용단 여성복장에서 흔히 보는 소매 없는 긴
치마를 말한다. 무명 배우가 썼다는 노랫말은 "꿈꾸는 화려한 젊은 날은 순간이니 빨리
결혼하라는 어머니와 그 말을 외면하는 딸의 대화로 되어있다. 저무는 황혼의 풍경을 그
려놓은 것 같은 아련한 회상 속 짙은 아쉬움이 가득 배어있는 이 민요 선율은 노랫말의
내용에도 걸맞고 <모스크바의 추억>에서도 이 곡의 매력과 특징을 살리는 데 큰 기여를
하고있다.

  엘리자베스 길렐스는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의 누이이며 러시아 현대 바이올린을 대
표하는 레오니드 코간의 아내이기도 한, 아주 특이한 음악가계를 갖고 있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하필 같은 바이올린으로 각자 독자영역을 구축한 이들의 결혼은 비
슷한 사례조차 없다. 불행의 예감을 갖는 게 상식이다. 실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어린 아들과 딸-이들 또한 이후 뛰어난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로 성장했다.-의 손을 잡
고 부부가 공원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다감한 부부모습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엘
리자베스의 연주녹음은 발매된 몇 곡의 CD를 제외하면 찾아 듣기가 어렵다. 연주흔적은
찾기 어렵고 그가 음악원에서 후진양성에 힘썼다는 기록만 보인다. 남편 못지 않은, 보
기에 따라 도리어 개성이 더욱 뚜렷한 바이올리니스트 엘리자베스 길렐스는 어느 시점
부터 슬며시 무대연주를 자제하고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에 전념한 것 같다. 우리가 부덕
(婦德)이라고 말하는 이런 전통이 러시아에 지금도 생생히 살아있다. 
 러시아에는 "아내의날" 로 이름붙인 날이 있는데 아마 이런 희생적 부덕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그러나 이자이를 연상케 하는 엘리자베스의 연주력이 너무나 아깝다. 소비에트 
시기가 아니고 개방사회였다면 사람들이 그 재능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