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과학 게시판
1. 완성되지 않았던 자작시
사람은 어둠을 낳고
어둠은 죄를 낳는다.
그 속에서
사람은 다시 어둠을 낳고
일단의 무리들은
대체로 위로만 뻗은 도시의 빌딩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중학생 한그루는 '죄의 구조'를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완성되지 않았던 저 시를 언급하면서 시에 대한 '야부리'를 까볼까 한다.
2. 유물론자 물상선생님에게 핀잔을 받았던 시
아, 늦었다.
명절, 제사 때마다 반복되는 엄마의 피곤함이
아빠의 새벽 출장과 맞물려
나의 개근상을 날려버렸다.엄마의 당황스러운 표정은
개근상을 날린 짜증보다는
내가 남자라는 안도감을 앞세웠다.
안도감은 이내
개근상에 흠집이 간 상, 전근상
흠집이 간 상이라도 타겠다는 초조감으로 바뀌어
나의 등교길을 재촉했다.
재촉의 끝에 도달한 학교
학교 운동장에는 개미 한마리 없었다.
중학교 3년 동안 내 담임선생님은 영어 과목 담당 선생님. 거기다가 동일 인물.
그런데 며칠 임시로 담임을 맡은 물상 선생님은 교내 백일장에 써냈던 내 시를 읽고는 이렇게 말했다.
"한그루, 너가 눈이 얼마나 좋길래 운동장에 개미가 있는지를 어떻게 알아?"
그 때 내 머리 속에는, 당시 중학생이라면 결코 떠올릴 수 없는 유물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이런, 유물론자 같으니라구'라고 생각을 했었다.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이유는 사회선생님의 신신당부 때문이었다. (내가 왜 당시 유물론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는지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
내 개념으로는 '물상 선생님'은 유물론자였고 국사, 역사 선생님들은 '변증법론자'였으며 국어선생님은 유물론과 변증법을 구사하기 위한 언어를 가르치는 선생님. 그러니까 예수의 제자 중 예수의 옷자락을 만져보고서야 예수의 부활을 믿었던 어떤 제자처럼 물상선생님은 눈으로 인식되어야지만 표현이 가능하다고 말했으니까.
3. WTF, 왠 영시 작문반?
He says, "I write a novel"
I say, "I read a novel"
He says, "I write a poem"
I say, "I recite a poem"
Why don't I say "I read a poem"?
Because poem is something special.
And something special makes me tired specially.
Yes, it is poem.
"선생님은 학창 시절에 산수를 무척 못하셨나 봐요"
"시꺼 임마. 너가 산수를 잘하는거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나는 담임선생님들로부터 '걸어다니는 스프레드 시트(엑셀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된다)' 취급(?)을 당했다. 요즘이야 한 학급에 30명 남짓이고 학교에서도 컴퓨터는 일상적으로 쓰지만 IBM-PC가 먼훗날에 나올 위대한 발명품이었던 그 시절, 선생들에게 시험 후 성적표를 작성하는 것은 큰 일이었다. 더우기 학급 인원수도 60명을 넘었던 시절이니까.
담당 과목 시험지를 채점을 하고 점수를 내고 기록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학급을 맡은 담임들은 각 과목의 점수를 과목 담당 선생에게 받은 후 그걸 옮겨 적고 평균을 내고 석차를 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이틀 야근을 해야 했다. 복잡한 산수는 아니기 때문에 하루만 꼬박 고생하면 되지만 수업을 병행하면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야근을 담보잡는 일을 나는 단 십분만에 해결했다.
'주산1급, 부기 3급 타자 1급', 초등학교 때 땄던 자격증들, 특히 주산은 3급부터는 암산으로 계산하는 과목이 있었고 주산1급이었던 나에게 두자리, 또는 세자리 숫자들의 합을 내고 학생별로, 과목별로 평균을 내고 그리고 학급 전체의 평균을 내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내가 주산1급이라는 사실을 담임선생님이 알리가 없었는데 우연히 교무실에 갔다가 자리를 비운 담임선생님 책상 위에 있던 성적 전표를 보고 '심심해서' 산수를 했고 그 산수의 결과를 기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한두달 후에 나는 한학년 당 15반, 그러니까 3개학년 45학급의 성적처리 계산을 해야 했다.
한 학급은 60명 한 학급의 한 과목의 평균을 내는데 걸리는 암산시간은 그냥 쯕 읽어 내리면 되니까 3초 정도? 적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넉넉 잡아 5초. 과목은 국산사자음미체실 등 10개 정도. 그러니까 한 학급의 과목당 평균을 내는데 15초. 그리고 학생별로 평균을 내야하는데 1초 정도? 계산 시간보다 평균 내고 적고 다음 학생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더 걸리니까... 이 것도 3초 정도? 그러니까 한 학급의 학생당 평균을 내는데는 3초 x 60명 = 180초 = 3분
한 학급의 과목당 평균 내는 시간 15초, 학생당 평균을 내는 시간은 3분. 합해서 3분 15초. 그걸 45학급을 해야 하니까 두어시간 남짓? 실제로는 두시간 정도 걸렸었다.
ㅠ.ㅠ;;; 그리고 나중에는 학급별, 학년별 평균점수별 소팅 작업까지 해야 했다.
나의 주산1급으로 인한 산수 실력은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구세주' 역할을 했지만 성적 산출을 끝내 '구세주'가 된 나는 '구세주'를 찾아야 했다. 왜냐하면, 성적을 낸 후에는 자기 점수가 궁금한 급우는 물론 선배들까지 질문의 쓰나미를 이뤘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특활시간에 영시 작문반에 갔던 이유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1학년 때 담임선생님과 같은 선생님이었고 성적 산출이 계기가 되어 담임선생님의 시다바리(?) 역할까지 겸해야 했던 내가 담임선생님 심부름 차 교무실에 갔었는데 그 교무실에 간 동안 특별활동 반배정을 했었고 그리고 내가 교실로 돌아왔었을 때 남은 유일한 반은 영시 작문반이었다.
"뭐냐..... 이게.... 왠 영시 작문반?"
뭐, 당시 영어 실력이야 영어과목 담당이었던 담임선생님에게 인정받을 정도였지만 영시는 내게 정말 생경한 세계였고 그리고.... 1년 동안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아스트랄한 정신 세계를 체험해야 했다. 그리고 위에 적은 시는 그 때 썼던 영시들 중 그나마 기억에 남는 영시이다.
3. 객체지향 프로그램
디지탈은 0과 1의 조합이다. 영화에서 SOS라는 무전을 치는 이유는 SOS가 'Save of ship' "Save of Sea' 등의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해석되고 알려진 것은 문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일종의 의도의 오류(Intentional Fallacy)이다. SOS는 디지탈 최상의 조합이다. 무선의 신호는 무선을 타전하는 스위치를 길게 누르거나 짧게 누르는 것의 조합인데 길게 누르면 0, 짧게 누르면 0이다.
그리고 SOS는 '짧게, 짧게, 짧게(0,0,0=S)', '길게, 길게, 길게'(1,1,1=O), '짧게, 짧게, 짧게(0,0,0=S)'의 조합이다. 그러니까 위기 상황에서 실수를 하지 않고 가장 정확하고 명료하게 보낼 수 있는 디지탈 신호가 바로 SOS라는 것이다.
4. 객체지향적 논쟁
객체지향 프로그램은 인문학적으로도 중요한 메세지를 던진다. 메세지 전달 방법에 주목한다는 것은 그 메세지의 결과만 취급한다는 것이지 그 메세지를 만들어낸 방법은 관심 밖이라는 이야기다. 메세지를 만들어낸 방법에 주목한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것인 '메세지를 까지 않고 메신저를 깐다'는 것과 같고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사상 검증'과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비행소년님과 '한국 경제에 대하여 논쟁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논쟁에 있어서 나나 비행소년님은 각각 상대방의 최종학력이 어떻게 되는지, 출신지는 어디인지, 사는 곳은 어디인지 그리고 연봉은 어떻게 되는지는 '한국 경제를 논하는데 전혀 관련이 없다'. 단지, 서로의 발언이 이론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그리고 그 이론이 현실에 맞게 적용이 되는지, 그리고 그 적용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또는 될 것인지만을 따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학출 출신 주제에' 또는 '그 쪽 지방 출신이기 때문에' 등등 논쟁에 전혀 관계없는 소위 인신공격을 하는 것들을 너무 많이 보고 또한 스스로도 드물지 않게 범한다.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 논쟁의 무의미성은 그 논자들의 무식과 진영논리에서도 기인하지만 이런 객체지향적 사고 방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혐오동물로 전락한 진중권의 '척보면 압니다'라는 말이 유효한 이유이다. 논쟁의 첫마디에서 그의 속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속성이 논쟁과 관련이 없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무시해주는 것이 맞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본 객체지향 프로그램을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객체지향은 민주주의의 핵심 중 하나'라는 것이다.
5. 시는 객체지향 프로그램이다.
객체지향 프로그램의 특징인 '메세지 전달 방식'을 가장 잘 활용한 것이 시라는 문학 쟝르이다. 객체지향에서 메세지는 속성과 전달의 두가지로 구성이 되어 있고 다른 프로그래머 또는 자신의 다른 프로그램 부분에서 그 메세지의 허용 범위를 논한 것이 encapsulation(캡슐화)이다.
소설은 모든 메세지의 속성과 전달 방법을 독자에게 공개한다. 그리고 그 방법의 섬세함이 소설의 완성도를 높인다. 그러나 시는 메세지의 속성은 작가가 숨겨놓고 전달방법만 공개하여 독자들에게 퀴즈를 내는 형식의 쟝르이다. 프로그램에서 encapsulation을 얼마나 잘했는지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판별하는 것 중 하나인 것처럼 퀴즈의 난이도가 시의 완성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현대시다...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내가 최근에 시를 읽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이 퀴즈의 난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래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성격과 궁금증이 생기면 반드시 해답을 찾아야 하는 괴팍한(?) 성격이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나는 프로그래머로서 프로그램을 작성할 때 Assemble와 C/C++ 언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Assembler를 선택한다. 보다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32비트 이상 프로세서들로 프로그램을 할 때 library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나는 assembler로 프로그램을 작성한다. 물론, 개발기간으로만 따지면 C/C++ 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럼에도 assembler를 선택하는 이유는 나의 완고함에 기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text 세대인 내가 video 세대에 적응한 부작용의 결과이다. 시인분들에게 정말 죄송한 표현이지만 나는 시를 읽고 퀴즈를 푸는 것보다 웹툰을 보는게 더 낫다. 속물적이다라고 비난하면 감수하겠다. 그러나 그건 내 탓은 아니다. 생존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의식의 결과이다.
아래 로자한나님께서 나를 호출하셨는데 당황스러움과 죄송함 때문에 몇 자 적었다.
내가 시에 대하여 로자한나님께 인상적인 멘트를 했었나 보다. 그런데 그건,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격'이다. 뭐, 소통의 즐거움을 생각한다면 '뒷걸음 치다가 쥐만 잡는다'면 허탕을 수백번 하더라도 뒤걸음 칠 용의가 있다. 그런데 소가 뒷걸음 치는 곳에는 쥐만 있는게 아니다. 웅덩이도 있고 심지어는 절벽도 있다. 뒷걸음 치다가 허탕치는 것이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지만 웅덩이에 빠지는 꼴을 연출한다면? 으~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寂易騷"를 남기고 간다.
디지탈은 구별되는 두 양상으로 세계를 분해하여 표현하려는 소통방식의 한 국면에 불과한 수단이다.
즉 디지탈이란 전위차에서 한쪽을 1, 다른 쪽은 0으로 규정하고 bit단위(보통 5V 전위차)에 세계를 부어 편가름하는 중간 단계이고 이 단계에서 걸러진 결과를 아날로그적으로 되돌려 세계를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개체(객체)지향 언어 역시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시를 개체지향언어라고 푼다면
프로그래밍 언어의 한 방식에 불과한 수단으로
전통적인 시의 규정인 '함축된 한 윤율적 소통방식'이라는 것을 담아내기에는 조금 힘에 부치지 않는가라는 생각입니다.
passion님/디지탈은 아날로그의 시뮬라크르이죠. 아날로그가 real이라면 디지탈은 simulation이고요. 그리고 해상도라는 것은 real과 simulation의 간극을 표시하는 다른 의미이고요. 그리고 이런 특징은 님께서 언급하신 소통방식의 한 국면이 아니라 그렇게 믿어지도록 하는 것 그러나 그 믿음에는 에러가 없다는 믿음이 증명된 것이고요.
소설이나 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소설이나 시는 사람들의 실제 심리를 시물레이션 한 결과이고요. 차이점은 아날로그와 디지탈이 대표값들을 주목하여 시뮬레이션하는 것과는 달리 소설이나 시는 대표값들(가장 보편적인 사람의 심리)을 그리거나 가장 극소수의 값들을 그린다는 차이입니다.
그리고 저는 시가 소설에 비하여 객체지향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그 이유는 메세지 전달 방법의 함축성을 거론한겁니다. 구조적으로는 님 말씀대로 아니 원천적으로는 담아내지 못할겁니다. 바둑두는 알파고는 있겠지만 시를 읊는 베타고는... 엔지니어인 제가 생각해도 상상이 안가니까요.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프로그래머 감마고는 충분히 예견이 되는 현실에서도 말입니다.
이 글 읽는데 며칠 걸렸습니다. 구세대인 내겐 좀 어렵고 그리고 스테미너가 딸려서요.
처음 소개된 시를 보면 상당한 시인적 재능을 보였다고 생각되는데 글세...본인은 아니라고 하니.
그건 그렇고 다음엔 한그루 님 반응이 빨리 나타날 시를 고르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전자책에 관심이 많아서 프로그래머인 한그루 님 지식이 부럽습니다.
문화 게시판에 왠 OOP인가 싶네요. ^^
덕분에 재밋게 읽었습니다.
사실 코딩이라는게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글을 쓰는것과 같긴 합니다.
가끔 개발자들도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그루님이 정확한 지점을 적으셨네요.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 언어들은 고급언어라고 하죠. (좀 더 전문적인 부분은 잘 모르니 패스... )
인간의 언어로 되어 있죠. 이 고급 언어는 그 유명한 노암 촘스키란 분도 연관이 되어 있죠.
컴퓨터와 사람과의 약속된 문장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것 뿐입니다.
인터프리터든 컴파일러든 약속된 문장을 기계어로 변환해주는 또 다른 소프트웨어가 밑에서 번역가 역할을 해주죠.
개발자 또한 마찬가지죠.
다만 그 개발을 함에 있어서 한그루님 말씀 대로 무엇에 집중을 하는가는 계속 달라져 왔죠.
개발 방법도 많은 발전이 있어왔지만 남한사회에서는 그런거에 거의 관심이 없었죠.
OOP, UML, RUP, CBD, TDD, 스크럼, XP 등등...
글을 쓰는것도 중요하지만 글의 기획도 중요한데 그 부분을 많이 간과하는 듯 해요.
시가 객체지향이라는 건 어느정도 공감하게 됩니다.
시의 특성이 가장 압축된 글의 형태이지만
정확하게 상황이나 개체에 대한 설명이 되어야 하죠.
그런 면에서 객체지향의 객체 설계의 특성이 될 수 있겠네요.
시는 잘 모르지만 덕분에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
Asker님/아니, 빅데이터라는 첨단의 영역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겨우 32비트 프로세서 가지고 찌질되는 사람에게 그렇게 겸손한 모습을 보이시면 그건 오만이죠.... 농담이고요...
예전에 님께서 말씀해주신 이야기들이 제가 요즘 공부하는 것들의 방향성 결정에 한 20% 쯤 영향을 미쳤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분야를 탐구하느라....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생고생했지만.... 그 부분은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노암 촘스키 말씀하셔서 검색해보았더니 인공지능의 토대가 되는 이론인 형식언어의 기초를 수립(?)했더군요. 여러 의미로 대단한 분이네요.
그리고 글의 기획은 프로그램에서 플로우 챠트 또는 스테이터스 다이아그램으로 등치시킬 수 있겠는데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제가 작성하는 프로그램들은 procession보다는 control 개념의 프로그램들이 많고 개발 실적도 많아서 지금은 이런 것을 하지 않고 상품 타겟 스팩만 정해지면 곧바로 h/w 설계 이후에 coding.... ㅠ.ㅠ;;;
"개발 방법도 많은 발전이 있어왔지만 남한사회에서는 그런거에 거의 관심이 없었죠."
예전에..... 쌍팔년도에... 그러니까 제가 고학생 시절, 접대비 백만원은 물어보지도 않고 결재가 났지만.... 간단한 개발장비 30만원짜리는 구구절절 필요성을 설명했던.... 그런 때가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뭐 그닥 개선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SCV가 마인드 콘트롤되어 플토 진영으로 납치되는 것이....... 아마 한국 엔지니어들의 꿈일겁니다. 아마도...
한그루님/
개발 분야는 그래도 예전과 많이 달라지긴 한 것 같으면서도 바뀌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개발방법론은 어찌 보면 핵심 분야중 하나이거든요.
업무를 진행해가는 프로세스적인 측면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아가는 방법이죠.
제가 한때 가장 해보자 했던 Soft Engineering 쪽이기도 하죠.
현재의 일을 잘 할 수 있게 과정이 만들어지면 그게 좋은것이기도 합니다.
책을 좋아하시면 한번 읽어보길 권해드립니다.
"소프트웨어 장인"이란 책이예요. (중간에 SW의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소재처럼 나옵니다.)
http://www.yes24.com/24/goods/20461940
Asker님/1. 개발 방법론은 '분명히' 달라졌겠지요. 저는 지금 중소기업 소속이니 대기업의 사정을 잘 모릅니다만 대기업은 트렌드를 쫓아야 하고 그 트렌드는 R&D에서 선진국들을 따라야 하니 말입니다. 혹자는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대기업이 부정이 많다고 하는데 그래도 대기업은 수출을 많이 해야 하고 그래서 국제 표준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투명성에 대하여는 중소기업들보다 낫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제가 주장한, '이공학 프레임에서는 박정희의 방식을 DJ도 깨뜨리지 못했다, 아니 깰 생각도 하지 못했다'라는 것을 생각하신다면 엔지니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 어? 님 software engineer 아니세요? 제가 그 쪽 분야에 대하여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실무를 담당해본 경험이 없으면 묘사하기 힘든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혹시.... PM 그러니까 project management 직무이신가요?
어쨌든, 나중에 시간이 나면 관련 분야 이야기도 짬짬히 해주세용.
3. 책 소개는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ㅠ.ㅠ;;; 죄송한데 책을 읽지는 않을거 같네요. 제가 원래 위인전이나 자서전은 안읽고 왠만한 소프트웨어 장인들의 삶이나 그들의 사상들은...... 나름 꿰차고 있어서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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