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사만 봐도 한경오 기자들의 수준과 기사가 얼마나 쓰레기이고 언론의 외투조차 벗어버린 것인지 알 수 있죠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읽어보면 들을 만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53&aid=0000021656

4·13 총선 전, 대표적 친노(親盧)인 유시민 전 장관은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 창당을 “안철수의 혁명적 패배주의”라고 규정했다. 그는 바둑 격언인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를 예로 들었다. ‘내가 두 집을 확보해서 일단 살아남고, 그 다음에 상대방을 공격한다’는 의미다. 유씨는 “안철수는 중원에 있는 집을 모두 내주고, 귀퉁이에 두 집을 지었다”고 했다. 하수(下手)라는 것이다. 
친노가 ‘귀퉁이’라고 부르던 호남에서 한 달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흥미로운 점은 4·13 총선 직전 호남의 들끓는 여론 속에 ‘친노 영남패권’의 극복과 ‘호남 정치’의 복원이란 말이 슬슬 회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국민의당이 ‘호남 자민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관론에 대해 “호남당이면 어떤가. 호남에서 개혁적인 정당이 싹쓸이했다는 것이 뭐가 잘못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호남은 한(恨)의 고장이다. 한국 현대사의 참혹한 원형(原形)인 광주 5·18민주화운동은 물론, 산업화 과정에서도 경부축이 중심이 되면서 호남의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호남의 위기의식은 역대 선거에서 싹쓸이라는 몰표행태로 전략적 선택을 해왔다. 대표적으로 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에 대한 경의적인 몰표로 확인된다. 당시 대선에서 김대중의 호남 득표율은 94.7%(광주 97.3%, 전남 92.3%, 전북 94.6%)였다. 호남은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노무현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노무현의 호남 득표율은 93.4%(광주 95.2%, 전남 93.4%, 전북 91.6%)였다.


호남이 국민의당에 몰표를 던진 까닭?

지난 4월 8일 광주를 찾은 문재인 전 대표가 김홍걸 공동선대위장과 함께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헌화·분향하고 무릎을 꿇고 있다.photo 김영근 조선일보 기자

호남은 선거 때마다 몰표로 집단응집력을 보여왔다. 그러나 맹목적 지지가 아니었다. 지역주의적 성향과 정당일체감(party identification)이 일치했을 경우에만 표를 몰아주었다. 


김 교수는 ‘영남 친노’(노무현·문재인)에 대해, “겉으론 영남 패권주의에 맞서는 척하지만 ‘은폐된 투항적 영남 패권주의자’들”이라고 했다. “득표력 있는 영남 후보를 호남 몰표로 뒷받침하고, 그렇게 당선된 영남 대통령은 ‘민주성지’ 호남의 정신적 양해 속에 세속적인 영남을 물질적으로 유혹해 지역주의를 타파하자는 식”이라는 것이다.

기자와 통화한 광주시 구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시쳇말로 호남은 노비보다 못하다. 노비는 끼니는 챙겨주고 일을 부리지만 친노들은 선거 때만 굽실대고 선거가 끝나면 호남의 차별을 외면한다. 호남홀대론을 얘기하면 친노는 지역주의자라고 몰아세운다. 호남과 친노는 결코 같이 갈 수 없다.”

다시 김욱 교수의 주장이다.

김대중은 ‘영남 패권주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1997년 반영남 패권주의 지역연대인 DJP 연대를 통해 집권했다. 반면에 노무현은 ‘영남 패권주의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호남을 바탕으로 영남의 표를 확장시켜 당선되기를 원했다.


“유권자의 80~85%는 反친노”

호남은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역평등시민연대 주동식 대표는 “호남과 친노의 관계는 매우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호남과 친노’(장수하늘소·2016)를 펴낸 주 대표는 “호남은 친노의 가장 막강한 지원 세력인데도 호남이 이들의 눈치를 봐왔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영남 패권이 반세기 이상에 걸쳐 호남을 악마화하고 고립시켜 온 결과, 호남인의 뇌리에 공포가 새겨졌다. 친노는 호남의 공포를 야비하게 이용한다. ‘너희들 전국에서 왕따지? 우리까지 너희를 외면하면 너희는 완전히 고립되는 거야. 그러니 우리말 고분고분 들어.’ 이것이 친노 세력이 호남에 줄기차게 전파하는 메시지의 알파와 오메가다.”

심지어 호남 정치인들은 “친노가 반호남, 반김대중 정서를 근간으로 정치를 해왔다”고 주장한다. “당내 개혁을 빌미로 호남의 민주화세력에 구태·지역토호·부패 이미지를 덧씌워 주도권을 탈취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극좌(極左)로 기운 친노 핵심의 이념적 편향도 한몫했다.


논의를 호남의 몰표로 좁혀 분석하면, 호남의 싹쓸이 투표행태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self-determination)이란 시민의식과 관련성이 깊을지 모른다. 그 결과 호남의 ‘몰표정신’은 민주화 세력의 주요한 자원이 되었고 결국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러나 호남이 야당 지지의 거점으로 ‘동원’되면서 상대적으로 호남사회의 내적 동력이 정체화되기 시작했다. 호남정치에 부패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