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자에게 듣는다] <2>정동영 (전주 병)

  

“전북의 힘을 키우겠다. 다시 전북 정치를 중심에 세우겠다.” 정동영(62) 당선인이 선거기간 줄곧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다. 그는 “19대 전북 정치는 존재감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한 굴종만 있었다. 이 때문에 전북은 퇴보했다”면서 전북 정치 복원을 외쳤다. 전북을 대표하는 정치인 정동영이 국민의당으로 옷을 갈아입고 돌아왔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초짜 정치인보다 더 낮게 내려가 읍소했다. 거리에서 찬비를 맞으며 깊게 허리를 숙였고, 무릎 꿇고 경청했다. 후배인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을 상대로 한 싸움은 버거웠다. 개표 결과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다. 세 차례에 걸친 전국 최다 득표 이력은 무색했다. 일각에서는 이겨도 이긴 게 아니라며 정동영 브랜드에 회의감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제20대 총선은 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정치적 부침을 거듭하던 그에게 4.13 총선은 새로운 출발이다. 첫 출발점이었던 전주 덕진에서 제2의 정치 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미움을 이번 선거를 통해 해소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무엇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9명이 장악하고 있던 철옹성에 균열을 냄으로써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전북 정치 팀장이 되어 전북 정치를 한국 정치 중심에 놓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전북 정치인들에게는 공심이 부족하다”는 정 당선인은 향후 행보에 대해 “정권 교체에 필요하다면 문지기 역할이라도 하겠다. 모두가 탑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전에 비해 숙성된 상황 인식이다. 치열한 선거 뒤끝인 까닭에 극도로 지쳐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목소리는 강단 있고 논리는 정연했다. 그가 생각하는 전북 정치 복원은 무엇이며 전북 발전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 16년만의 여소야대 국회다. 20대 총선을 어떻게 평가하나.

“박정희 시대로 회귀를 저지하고, 박근혜 독재를 거부한 것이다. 수도권에서는 더민주를 선택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오만과 무능을 응징했다. 또 호남에서는 야당을 교체함으로써 무능한 더민주당을 주저 앉혔다. 호남 전체 28석 가운데 23석을 국민의당이 차지했다. 야당의 모체는 호남인데 호남인들은 국민의당을 1당으로 선택한 것이다. 결국 새누리당에는 철퇴를 더민주에는 1당이란 왕관과 함께 회초리를 쳤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킨 선거다.”



-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제3당이 아니다. 정당 투표에서는 더민주를 앞서 제1야당이 됐다. 서울지역 정당 투표율은 새누리당 30.8%, 국민의당 28.8%, 더민주당 25.9%로 국민의당이 더민주를 앞섰다. 국민의당은 창당한지 두 달여 만에 한국정치를 뒤집었다. 결과적으로 야권분열이란 책임론 속에서 국민을 믿고 뚝심을 보여준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과 뚝심이 야권의 외연을 넓혔다. 수도권과 호남이 전략적으로 교차 투표를 했다. 국민들은 더민주에 확실한 경고장을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 심판을 위해 수도권에서 더민주를 도구로 쓴 셈이다.”



- 선거 초반 고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얼음장처럼 두꺼웠다. 선거 초반에는 말 붙이기도 힘들 정도로 냉랭했다. 두 가지 서운함이 겹쳐 있었다. 하나는 ‘지지해줬는데 버리고 떠났다’는 서운함이다. 또 ‘정동영이 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을 왜곡한 상대 후보의 선거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지역 민심은 냉랭했다. 선거 기간 중 8~9차례에 걸친 방송 토론은 얼음장을 녹이는 계기가 됐다. 4년 전 강남으로 떠난 게 오해였다는 것을 풀었다. 당시 더민주당은 신건, 강봉균, 조배숙 등 중진 의원들을 경선에서 원천 배제하고 정치적으로 학살했다. 내게도 험지로 출마하라고 압박했다. 강남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유권자들이 처음 알게 됐다. 친노 패권 행태는 미국무부가 작성한 비밀 문건을 폭로한 위키리크스를 통해 확인됐다. 그들은 ‘정동영 패배해도 우리와 관계없다. 이명박 당선 되도 대한민국 망하지 않는다’며 이명박과 문국현을 지지했다. 또 하나, 정동영이 한 일이 없다는 오해도 풀었다. 한옥마을 부활, 35사단 이전, 전주월드컵경기장 건설 등 굵직한 일을 했지만 자랑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 총선을 통해 ‘버리고 떠났다’, ‘한 일이 없다’는 두 가지 오해가 풀렸다. 선거 막판 택시 기사들은 귀가 열렸다. 진실을 알게 됐다”며 격려해줬다.”



- 19대 전북 정치를 평가한다면.

“선출직 공직자로서 공심(公心)은 부족하고 사심(私心)은 넘친다. 사익 추구 정치가 전주를 지배하고 있다. 자신의 정치력과 정치적 이익 확대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 여론조사 착신율 전국 최고, 인구 대비 권리 당원 비율 전국 최고는 그 반증이다. 또 정치적 소신도 없고 침묵했다. 예를 들어 광주전남 정치인들은 문재인 대표가 분열의 씨앗이라며 퇴진을 요구할 때 전북 정치권은 침묵했다. 오로지 당선을 위한 굴종만 있다. 공익에 대한 헌신 결과가 당선이 되어야 하는데 4년 내내 당선에만 매달리는 꼴이다. 표가 있는 곳에만 쫓아다니고 갈등 현장은 외면하고 있다. 송천동 변전소 문제가 좋은 사례다. 이는 공심의 정치가 아니다.”



- 어디에서 그런 정치 문화가 형성됐다고 판단하나.

“ 아전 정치와 맥락을 같이 한다. 부패한 전라감사가 부임할 경우 개혁을 하기보단 권력에 편승해 기득권을 나눠 갖던 아전 습속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부당한 정권과 중앙 권력의 대척점에서 차별과 소외 극복을 위해 소리내기보다 지역 내 패권 추구에만 혈안 됐다. 앞서 언급했듯이 공심보다는 자신의 사익(당선)에만 집착하면서 못된 정치 문화가 자리 잡았다.”



- 전북 출신 대선 주자를 지냈던 정치인으로서 정동영에 대한 애증이 교차한다.

“20년 투자했는데 버리기 아깝다는 정서를 확인했다. 미워도 다시, 그래도 정동영이라는 애정이다. 돌아보니 국회의원으로 11년 활동하면서 밖으로만 나돌았다.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하더라도 변명할 수 없고 용납도 안 된다.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그래서 주거지와 본거지를 전주로 옮겨야겠다고 결심했다. 중앙정치를 하더라도 전주에 본거지를 두고 지역민들과 호흡하며 부대끼는 정치를 할 생각이다. 다시 전주에서 출마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다. 지금까지 국회의원 선거 7번, 전국 선거 7번 등 14번 선거를 했다. 이 가운데 10번을 밖에서 치렀으니 에너지를 전주에 온전히 쏟지 못했다. 이제는 전주에서 시민들과 함께 밥 먹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접촉면을 넓혀가겠다.”



- 친노 패권주의 폐해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기본적으로 여당은 영남이 뿌리고 야당은 호남이 모체다. 친노가 당권을 장악한 뒤 호남을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밀어냈다. 호남을 표만 찍어주는 내부 식민지화한 것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친노는 자신들 세력인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가운데 후보가 나오길 바랬다. 그러나 정동영이 후보로 선출되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이 때문에 지지를 철회하고 이명박과 문국현을 지지했다. 분열의 씨앗은 그 때부터 잉태됐다. 그 결과 집권여당 후보가 500만 표 차이로 낙선하는 납득 못할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반성하지 않은 채 모든 대선 패배 책임을 정동영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리고 호남 필패론, 호남 주자는 안 된다는 논리를 유포시켰다. 영남이 당권을 장악하고 대선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그런 친노 패권주의를 고발할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 호남에서 국민의당으로 야권 교체는 친노 패권에 대한 심판인가.

“국민의당으로 야당을 교체한 것은 호남 정치 복원의 시작이다. 호남 필패론을 거부하고 호남이 결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시 말해 호남 중심으로 대권 후보를 결정하고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선언이다. 호남과 수도권의 전략적 교차 투표는 호남 중심 정권 교체를 의미한다. 물론 참여정부에서 각료를 지낸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친노는 비판 없는 성역화에 매몰됐다. 친노의 패착이다.”



- 호남정치 부활, 전북정치 복원은 어떤 의미인가.

“호남의 중심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야당에서는 호남과 전북이 중심이다. 거듭 말하지만 호남 필패론, 호남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호남이 대선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대선 후보를 선택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도 호남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17대 대선에서 호남 후보 지지를 철회했다. 호남 선택에 의해 정권교체를 하는 것이 호남정치 부활이다. 덧붙여 존재감 없는 전북 정치를 복원하는 것은 지역 이익과도 직결되는 일이다.”



- 전북 정치 팀장이 되어 전북정치를 복원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전북은 일당 독점 체제로 인해 정치적 긴장감이 없었다. 내부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응집력이 부족했다. 아무리 우수한 사람도 모래알로는 이기기 어렵다. 조직력과 팀워크를 바탕으로 예산과 인사, 현안 사업을 챙기겠다. 새누리당, 더민주까지 아우른 ‘전북 애향당’을 만들어 전북의 이익을 챙기고 목소리를 내겠다. 그런 중간 역할, 아교풀 같은 역할을 하겠다.”



-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유권자들의 열망은 지역발전을 위해 정권을 교체하라는 것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무슨 역할이든 하겠다. 우선 문재인과 안철수 대표를 묶는 일이다. 공동 정부 구성, 통합, 연대 등 다양한 길이 있을 수 있다. 더민주와는 형제당으로서 공조하고, 연대야권 단일화에 주력하겠다. 그런 일이라면 문지기라도 좋다. 모두가 탑이 되려면 팀이 되겠는가.”



-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어떤 일에 주력하고 싶나.

“전주에 돈이 돌게 하겠다. 20대 전북 정치는 생기가 돌고 역동적인 환경이 형성됐다. 정치의 생기를 지역경제와 사회분야에 미치도록 하겠다. 신뢰를 회복해 그 힘으로 한국 정치를 복원하겠다. 그동안 도민들의 전폭적인 신뢰에 기대 밖으로 돌았지만 이제는 안으로 강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 전주시민들은 부서지고 상처 입은 나를 보듬어줬다. 주저앉힐 것이냐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냐 기로에서 다시 손 잡아줬다. 그런 전주시민과 도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겠다.”

/임병식 기자 montlim@sjbnews.com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순창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자랐다. 면장과 도의원을 지낸 선친의 영향을 받았다.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진학했다. 재학 당시 민청학련 사건에 관련돼 강제 징집 당했다. 졸업후 문화방송 보도국 정치부 기자로 입사했다. '뉴스데스크 간추린 뉴스' 앵커, 'MBC 0시 뉴스' 앵커, 'MBC 뉴스데스크' 앵커로서 이름을 알렸다. 특히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서 특보를 전하는 장면은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전주시 덕진에서 전국 최다 득표로 정치를 시작했다.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총재 특보·청년위원장을 역임하며 입지를 구축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어르신들은 투표를 안하고 집에서 쉬셔도 괜찮아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미래가 걸려있기에 투표를 꼭 해야 합니다"는 발언이 노인 폄하로 왜곡되면서 선대위원장직을 사퇴하고 비례대표를 반납했다. 열린우리당 의장과 참여정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17대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지만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제18대 총선에서는 서울 동작구에 출마했으나 역시 한나라당 정몽준에게 패했다. 18대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전주 덕진에서 당선됐다. 이후 민주당에 복당했지만 2015년 1월 탈당해 국민모임 후보로 서울 관악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뒤 순창에 칩거하다 올해 2월 국민의당에 합류해 전주 덕진에서 당선됐다.

  



*이것만은 지키겠습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와 같은 관광 경제도시로 만들 것"

관광도시 가능성 전주 전체로 확산…동북부권 종합 스포츠타운 등으로 활기

 전주를 세계적인 이탈리아 밀라노와 같은 관광경제도시로 만들겠다.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관광도시의 가능성을 전주 전체로 확산시키겠다. 2018년 전라도 개도 천년을 기념해 전주종합경기장에 전라밀레니엄파크 조성을 추진하겠다. 2017년 여야 대선 공약화하고 국가사업으로 채택되도록 하겠다. 전주 동북부권에 활기를 불어넣고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겠다. 동북부권에 종합 스포츠타운을 건설하겠다. 축구장, 배드민턴장, 나비골프장을 집적해 체육인들과 주민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 송천동 농산물도매시장에 청년파크를 조성해 전북 청년들에게 창업과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겠다. 관광객이 넘쳐 자영업자들이 잘 먹고 잘 살도록 하겠다. 여성과 청년 일자리가 넘치는 도시를 만들겠다. 작은 일도 잘 하는 정치, 동네일도 잘 챙기는 정치를 하겠다. 전주 시민과 같이 울고 웃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는 현장 정치를 하겠다. 그래서 전주 시민들께서, 전북 도민들께서 전주 국회의원이 ‘정동영’이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실 수 있도록 하겠다. 전주의 자랑, 전주의 희망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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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