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철수의 발언들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그의 정치학습 속도가 무척 빠르기 때문이다.


최소한 2여년 전의 안철수 발언들은 '장삼이사'인 나에게도 '구상유취적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안철수의 발언들은 내가, '한국 정치는 이런 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푸후후~ 깨몽해라 한그루, 작금 한국 정치인들 중에 내 생각에 비슷하게나마 할 능력있는 정치인은 없으니까?'라는 생각도 같이 했던, 그런 나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서는 것이다.


아니, 안철수의 발언들을 찬찬히 분석해보면, 그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의 발언은 '주권재민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 '정치인이라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와 주권재민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안철수의 발언들'이 찬찬히 분석해 본 후에야 그렇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정치인들은 '당연한 이야기, 그리고 주권재민의 정신 실종적 발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솔까말, 인문학적 개념에서 판단하자면, 생사의 경계를 넘어서면서도 자신의 철학을 포기하지 않았던 DJ를 제외하고 안철수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압도적이다. (추가) 그리고 이공학 개념까지 포함한다면, 이공학에서 박정희 프레임을 넘지 못했던, 아니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던 DJ보다 낫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한글 창제와 V3 무료 배포.

한글이 백성들에게 '지식을 쉽게 쌓는 도구 창설'이라는 개념이라면 컴퓨터 시대 개막 시점에 컴퓨터 쓰는 것을 방해하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V3를 무료로 배포한 것은 그 정신이 같다.
 
이공학에 대한 중요성 인식 및 정책적 장려는, 국민들에게 '먹거리 해결'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할 것인지를 제시하고 실천했다는 점에서 같다.

세종대왕의 경우에는 '부민고소법 방지'라는 치명적인 제도를 만들었고 이 제도가 조선 패망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 내 판단이지만, 세종대왕이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왕이기는 했지만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기 때문에 세종대왕의 '백성 사랑 정신'이 부인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철수의 경우에도 몇가지 논란이 되는 그의 과거 행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들은 '주권재민의 정신'을 잊어버린 적이 없다.


이런 안철수에게서 세종대왕의 향기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하다'라고 하면 지나친 발언일까?


그리고 4.13 총선에서의 호남의 전략적 선택.

그들의 전략전 선택은 세종대왕이 선정을 베푸는 환경을 제공해주었던 태종의 '외척 말살 정책'과 같다. 차이점이라면, 호남의 과거 선택의 결과로 인한 쓰라린 상처의 학습효과 때문에 '몰표를 주지 않았다'는 점. 영남에서도 4.13 총선에서 박근혜에게 '까불면 혼난다'라는 메세지를 전달한 것처럼 호남에서도 안철수에게 '까불면 언제든지 혼날 수 있다'라는 메세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양자간 메세지의 차이점이라면 영남의 메세지가 '현재에의 반영'이라면 호남의 메세지는 '미래지향적'이라는 점이고 영남의 메세지는 '메세지를 적은 쪽지가 꽉 찬 느낌'이라면 호남의 메세지는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또 다른 차이점은 태종이 후계자가 선정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은 조성했지만 후계자로는 딱히 세종을 특정화하여 임금 자리를 계승하려고 하지 않았고, 양녕대군의 '파격적인 양보'가 세종대왕의 왕위 등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문재인은 '앙앙불락'하고 있다는 점.


구조적으로 같으면서도 디테일에서는 차이가 나고 또한 조선시대와 같이 권력이 왕에게 있는 것과는 달리 현대 대한민국에서 주권은 국민들에게 있는 현실에서 그 디테일이 구조적인 측면까지 바꿀 수 있는게 현실이지만, 구조적으로 같고 디테일까지 같은 역사의 반복은,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는지 그리고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같고 디테일까지 같은 역사가 다시 한번 반복된다면, 대한민국이 지금 처하고 있는 수많은 국가과제들의 난제들 중 상당 부분이 해소될 것이다. (추가)그리고 이런 미래의 역사가 반복된다면, 칼 맑스가 주장한, '역사는 한번의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 전개된다'라는 것이 깨지는 것을 의미한다. '한번의 희망으로 또 한번도 희망으로 전개되었으니까'.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