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각종 선거에서 '새누리당 선거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했던 북한이 이번 4.13 총선에서는 너무도 조용했다. 오죽하면, 새누리당이 북풍을 일으켜 볼 요량으로 1년 동안 눙치고 있었던 '고위층을 포함한 북한 주민의 대거 탈북, 망명'을 총선을 두고 발표했을까?


북한의 새누리당(박정희 정권 시절의 공화당) 선거 도우미 역할은 사실 벅정희 정권인 1968년 발생했던 1.21 사태 때부터였다. 김신조라는 아직도 최소한 486 이상 세대들에게는 기억에도 생생한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시도 사건은 당시 정치적 쟁점이었던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 등'의 이슈를 묻혀버리게 했다.


물론, 박정희의 폭압적 정치들 중 대표적인 유신독재의 무게감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대 정치사에서도 유신독재의 언급 회수에 비해 3선 개헌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1.21 사태가 너무도 충격적이고 그 결과, 3선 개헌이 제대로 이슈되지 않은 탓도 있다.


어쨌든, 그 이후로 북한은 고의적이던 미필적이던 각종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도우미 역할을 했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놀랄 정도'로 조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각종 선거의 결과 '레드 컴플렉스 울궈먹기'가 이제는 효용성이 없는 정치 상품으로 전락(?)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북한이 조용했다는 것은 많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북한의 새누리당 선거도우미 역할은 남북한의 관계를 고려하더라도 북한이 남한의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정치적 기동인데 그런 정치적 기동을 그만두었다는 것은 북한 내부의 변화를 예측하게 한다. 개성공단 폐쇄로 인하여 북한은 더 이상 남한과는 어떠한 교류를 원치 않거나 또는 남한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여 더 이상 관계가 경색되지 않기를 희망하거나(뭐, 더 이상 경색될 일도 없겠지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우려하는 점은 1965년의 역사적 사실의 되풀이라는 것이다. 레드 컴플렉스를 자극할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1965년도 북한의 김일성은 제2의 남침을 획책했던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북한이 작심을 한 결과가 이번 총선에서의 어색한 침묵의 이유라면? 설마......가 사람 잡는다지만 정말 설마다....



"김일성, 1965년 제2의 남침 준비…中에 파병 요청"


이영재 기자 =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65년 제2의 남침을 준비하며 중국에 파병을 요청했다고 중국 학자가 중국 외교문서를 인용해 밝혔다.

청샤오허(成曉河) 중국 런민대 교수는 24일 평화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 국제학술회의에 앞서 배포한 토론문에서 김일성 주석이 1965년 북한 주재 중국 대사에게 "북한은 조만간 전쟁을 일으킬 것이며 이는 불가피한 것"이라며 "전쟁을 하게 되면 중국에서 군대를 좀 파병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청 교수는 기밀 해제된 중국 외교부 문서 '북한 주재 조선인민공화국 대사 하오더칭의 김일성 주석 담화 현장'을 근거로 제시했다.

김일성 주석은 하오 대사에게 "전쟁을 하지 않고서 이 문제(분단)를 해결할 수 없다"며 "남조선 인민들은 계급투쟁이 고조되고 갈등이 증대돼 전쟁을 할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청 교수는 "1960년대가 사실상 북한이 최후의 수단으로 다시 무장통일을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시기였으나 김일성은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며 북한이 무력통일의 '역사적 기회'를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청 교수는 남한이 독일식 흡수통일에 나설 경우 중국이 이를 지지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했다.

그는 "중국은 평화, 신속, 자주, 충격 내재화(자체 흡수)로 일컬어지는 독일의 흡수통일 방식이 결코 나쁜 방법은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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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