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닮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과 닮아간다'라는 말의 축약형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니체의 '선악의 저편' 책에서 나온 '괴물의 심연' 표현에서 응용된 것(?) 같은데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싸우면서 닮아간다'라는 말의 출처와 그 원래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싸우면서 닮아간다'라는 표현을, '시집살이 시킨 며느리가 시집살이를 시킨다'라는 우리 속담과 그 의미가 같으며 또한, '가정폭력을 당하며 성장한 아이가 가정폭력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라는 통계가 '싸우면서 닮아간다'라는 표현의 사실관계를 입증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정치/시사에서 언급되는 '싸우면서 닮아간다'라는 말은 '싸움의 행위자'와 '싸움의 대상'을 동등한 입장으로 표현하지만 '싸우면서 닮아간다'라는 말에 포함된 두 주체, '싸움의 행위자'와 '싸움의 대상'은 결코 동등의 입장이 아니다. '싸움의 행위자'는 '싸움의 대상'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를 받아 트라우마가 있는 상태이며 여기서 싸움은 트라우마 극복 여부이며 '닮아간다'는 표현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 즉, 트라우마의 되물림.


그러니까 '시집살이를 독하게 한 며느리'가 시집살이를 시킨 시어머니에게 당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시어머니가 되어 며느리에게 독한 시집살이를 시켜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되물림하면서 '닮아가고' 또한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가 부모에게 당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모가 되면 자기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트라우마를 되물림하면서 닮아간다는 것.



지금 대한민국은 오랜 독재정권의 기간에 입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트라우마를 되물림하고 있는게 현실. 친노로 대변되는 그들은 독재정권 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싸우면서 닮아가져 있고' 지금은 너무도 닮아져 있어서 더 이상 싸울 필요도 없는 상태로 전락했다. 국민의 당은 '싸우면서 닮아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싸우되 닮지 않는 모습'을 보여 대한민국의 트라우마인 독재정권의 시절과 그 잔재를 털어내고 이제는 사람들이 정치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


"싸우되 닮지 않기" 

국민의 당의 모토가 되기를 바란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