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김태일교수가 2016년4월13일 총선을 하루 앞두고 기사를 썼는데 제목이 "[김태일의 정치시평]호남과 리버럴, 지역주의 인식의 한계"이다.


 한데 공교롭게도 이 기사에서 그의 지역주의 인식의 한계또한 바라볼수가 있어서 한마디 적지 않을수 없다. 이 기사에서 그는 흔히 친노라고 불리워지는 정치세력을 리버럴로 그리고 호남을 두개의 중심 갈등축으로 놓고 이 두축이 가지고 있는 지역주의 인식의 한계를 집어서 얘기하면서 결론에서 얘기하기를 "문재인 전 대표와 호남의 불화는 한 정파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결론까지 읽고 나면 자연스레 한가지 궁금증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그는 분명히 호남과 리버럴만으로 문제를 해결할수 없다고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역주의 해소노력과정에서  제3의 빠지면 안될 중요 갈등축에 대한 설명은 하고 있지 않다.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면서 빠진 핵심축에 대해서 충분한 얘기를 하지않은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사실 김태일교수가 빠진 핵심축에 대해서 설명을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본문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그 빠진 핵심축에 대한 설명이다.
 "호남지역주의는 영남지역주의의 선행적이고 공격적인 자극에 대응하느라 생겼다. 호남지역주의는 방어적이며 수세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영남지역주의는 정치적 권위주의와 결합한 것에 비해, 호남지역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결합하였다. "
"우리나라의 지역주의는 영남의 선행 원인에 의해 생성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만들어진 후에 영남지역주의와 호남지역주의는 ‘거울효과’를 통해 서로를 강화해 간다. 마주 세워놓은 두 개의 거울은 서로의 모습을 되받아 끝없이 이어지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남·호남지역주의는 서로를 보면서 끝없이 강화된다."

그의 또다른 기사(유시민에게는 노무현의 역사의식이 없다)
를 보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지역주의는 영남 지역이 선제적, 권위적, 위압적으로 시작했다. '호남 배제' 식으로 네거티브하게 시작했다. 호남의 지역주의는 어쩔 수 없이 방어적이고, 수세적이었다. 그래서 민주적 가치와도 결합됐다. 그러므로 지역주의에 관한한 영남이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이 두개의 기사를 놓고 보면 김교수가 영남을 지역차별로 인한 지역갈등의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하지만 김교수의 인식의 한계가 여기까지 이다. 영남에게 책임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밝히고 있으면서도 이 문제의 해소에 대해서 영남이 당연히 해야 할 노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첫번째 기사에서 처럼 리버럴에게는 호남의 자기방어적인 성격을 이해할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호남에게는 

 "지역주의의 해결은, 그것의 발생사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제공한 순서에 따라 결자해지를 요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동시에 거울을 깨야만 한다. 거울효과와 동시해결의 원칙이 지역주의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영남지역주의에 대해 발생사적 책임을 규탄하거나 결자해지를 요구하는 것은 영토적 보수주의처럼 지역주의를 오히려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라면서 영남에게 단순히 책임을 규탄하거나 결자해지를 요구하는 것은 지역주의를 오히려 강화하는 경향이 있으니 영남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리버럴과 호남은 해야 될 숙제가 있고 그 숙제를 끝내야한다고 주문하면서도 정작 지역차별을 초래한 영남에 대해서는 어디서도 숙제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 책임을 가지고 있는 영남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주문을 하지 않으면서도 책임에서 거리가 먼 호남과 리버럴에게만 해결을 위한 숙제를 주문하는 사람이 과연 지역차별문제 해결을 진실로 갈망하는 사람일까하는 진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영남출신 지식인들이 가지는 한계가 아닐까? 영남지역주의가 정치적 권위주의와 결합했다고 소개한 것처럼 그 역시 그가 평생 살아온 영남에서 주류로 인식되는 영남 권위주의에 포섭되어 영남권위를 비판하지 못한다고 보는게 그리 무리수이지는 않을 것 같은 것이 그 정도되는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얘기할 다음의 내용에 대해서 전혀 답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기사에서 그는 "지역주의는 처음에는 감정으로 시작한다. 호남배제, 고립감정. 그것 위에 특정 정당을 반복적으로 지지하다보니까 정당 정체성이 얹혀져 강화됐다. 거기에 이데올로기가 덧붙여져서 고조됐다. 감정적 수준, 정당 정체성, 그리고 이념, 이렇게 구조화됐다. 지역주의는 처음에는 좀 말하기 창피한 것이었다"라고 밝혔다. 호남배제, 고립감정을 얘기했는데 박정희 경상도 정권하에서 호남배제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나하면 경제개발시기단계에서  호남을 배제하고 고립시켰다는 얘기는 이익공유에서 호남은 배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생한 이익을 호남과 공유하려면 경상도의 몫은 당연히 적어지겠지만 호남을 고립시키고 배제함으로써 경상도의 몫은 커지게 되었던 것이고 그러한 이익분배의 과도한 쏠림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영남이 비정상적인 이익을 수십년간 독점해오면서 영남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이 되었고 요즘도 경상도에 더 많은 예산이 돌아가는 것에서 심화되는 지역 불균형 발전 문제에 대한 영남인들의 문제인식또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호남 고립과 배제, 지역차별이 가져오는 결과는 간단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호남과 영남의 지역개발 격차의 심화이다.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고위공무원직에 경상도출신이 차지하고 이익향유측면에서 호남배제를 수십년간 진행시킨 결과 호남과 영남의 지역 개발 차이가 극심하게 벌어진 것이다. 이 이익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차별이 지역차별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김태일 교수는 그가 정말로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다음의 질문에 답할수 있어야 한다. 영남은 그들이 과도하게 이익을 독점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지역차별을 해소하겠다는 의미는 경제개발과정에서 나오는 이익을 타지역과 공유한다는 의미로 그것은 경상도의 과도한 이익독점을 포기해야 하는 결단을 요구하게 될수 밖에 없는데 그럴 용의가 있는지 영남인들이 답해야 한다. 영남인들이 이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기를 꺼리면 단언컨데 한국 지역주의의 해소는 불가능하다. 

내가 김태일교수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유가 김태일교수 역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못내놓고 있다고 보기때문이다. 영남인들만이 투표가능인구수가 많다는 이유에서 과도한 혜택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선민의식을 버리고 타지역과 화합할수 있는 보통시민이 되겠다는 마음가짐 없이는 한국지역차별문제는 해소될수 없다. 호남출신이 고위공직에 오르면 경상도로 돌아갈 몫이 줄어든다는 영남인들의 기본 인식에 변화가 없이는 1차적으로 인사차별문제가 발생하고 자연스럽게 지역경제격차 또한 벌어지게 마련이다. 경상도출신아니고서는 신뢰를 못하는 영남인들의 기본인식이 경상도 출신 군인의 쿠데타와 독재정치시기와 맞물려 오늘날과 같이 정치 경제 문화 언론 군 거의 모든 조직에서 경상도출신의 득세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지, 영남인들이 선민이거나 유전자가 출중해서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김태일 교수에게 영남인들의 타지역민을 불신하고 오직 영남인이여야지 만이 신뢰할수 있다는 기본의식 변화 없이 지역차별 문제가 고쳐질수 있다고 보는지 그리고 영남인들의 과도한 이익독식에 대해서 문제점은 없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