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평안도와 함경도에는 의병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래는 제가 조사한 자료입니다.

강희보 : 본관 진주 < 제1차 금산 전투, 제2차 진주성 전투 >
고경명 : 본관 장흥
고인후 : 본관 장흥
고종후 : 본관 장흥
곽재우 : 출생지 의령
권응수 : 본관 안동
김개국 : 출생지 영천
김덕령 : 본관 광산 (광주광역시)
김성일 : 본관 의성
김제남 : 본관 연안
김천일 : 본관 언양
마응방 : 본관 장흥
마하수 : 본관 장흥
민여운 : 본관 여흥
심수경 : 본관 풍산
영규   : 본관 밀양
임계영 : 본관 장흥
정인홍 : 본관 서산
정흔   : 본관 경주
조헌   : 본관 경주
지성해 : 본관 충주
처영   : 승려(서산대사의 제자)
최경회 : 본관 해주
한명련 : 본관 미확인 (영남지방에서 의병활동)
한효순 : 본관 해주


선조는 임진왜란 후에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의병이 없었다'면서 괘씸하게 생각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연하죠. 왜냐하면, 당상관, 그러니까 현재 대한민국으로 치면 고위관직을 지낸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 인사는 조선 내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차별을 받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이유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이북지방은 신경을 쓰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동지방을 제외하고는 '농토가 없었기 때문'이죠. 통일을 해서 국토로 해봐야 국토를 지키는 비용이 그 국토에서 나오는 산출물보다 적었기 때문입니다. (추가 : 신라의 통일은 북한이 산업기지로서의 매력이 점점 잃어가는 현실에서 남북한 통일 방식에 대한 참조가 될 것입니다. 추가 하나 더 : 제가 아크로에 썼었나요? 백제의 왕-어느 왕인지는 기억이 안남 - 이 수나라(또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멸망시켜라...라고 주문한 역사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라의 삼국통일은 그냥 하나의 정치적 이벤트입니다. 그걸 민족의 혼으로 등치시킨 이문열류도 웃기고 삼국통일을 반민족적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죠.)


어쨌든, 황해도와 평안도 그리고 함경도는 조선 내내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영남지방은 정희량의 반란 이후 100여년 동안 과거를 보는 것조차 금지되었다가 순조 때 풀렸지만 고종 때까지 당상관의 벼슬은 금지되어 차별을 받았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경국대전에서는 과거 시험 합격자를 지역별로 안배를 했다는 것입니다.

과거응시의 초시 합격자의 경우 인구비례로 지역별 합격자수를 배정한 지역별 쿼터제도가 있었다. ?예전?의 문과 초시(初試) 규정에는 240인의 합격자 수에 대하여, ‘관시(館試:성균관에서 학습하고 있는 생원, 진사 중에서 뽑는 시험) 50인, 한성시(漢城試) 40인 이외에 향시(鄕市)로 경기 30인, 충청도와 전라도 각 25인, 경상도 30인, 강원도ㆍ평안도 각 15인, 황해도ㆍ영안도(함경도) 각 10인 등을 뽑을 것’을 규정하였다. 초시 240명의 선발에서 지역별 안배를 하고, 복시(覆試) 합격자 33명의 선발은 능력에 의거함으로써 지역 안배와 능력의 조화를 꾀한 것이다. 생원과 진사 시험에도 이 방침은 적용되었다. 초시 합격자 700명에 대해서는 지역 안배를, 복시는 성적순으로 뽑았다. 『경국대전』 관리 선발 규정은 지역차별 문제가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오늘날 상당히 음미할 만한 부분이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


상기 경국대전 주해에서는 황해도, 평안도 및 함경도도 포함하여 지역안배를 했습니다. 그런데 고위직인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평안도, 함경도 지역은 단 한 명도 배출을 하지 못했고 영남 지방은 위에 쓴 것처럼 '정희량의 반란' 이후에 당상관 임명은 물론 과거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조선의 차별이, 평양은 새로운 외래 종교를 믿게 하고 대구는 새로운 외래 사상을 믿고 널리 퍼지게 된 동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조선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경국대전에서는 벼슬로 나가는 길에는 지역안배를 했지만 고위직 배출은 차별했다는 것으로 이는 (팩트는 더 확인이 필요합니다만) 흐강님 등이 예로, 삼성이 호남인들의 입사 차별은 하지 않지만 임원급으로 승진하는데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다는 주장의 역사적 방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차별이....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민족개조론'을 주장하게 된 동기이며 '상해임시정부'가 삐걱거리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이승만의 경우에는 양녕대군의 후처 후손으로 태생에 대한 컴플렉스와 권력욕이 상당 부분 작용했지만 안청호, 조만식 등이 바로 조선에서 차별받던 평안도 출신이기 때문이죠.(참조로 이승만은 황해 출신)


추가 : 독립군 중에서 양반 출신 독립군이 평민 출신 독립군의 뺨을 때리며 '상놈 주제에 독립 운동을 해?'라고 했다는 고증들이 있습니다. 독립운동에서도 반상 사열과 출신은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즉, 역사적으로 지속되었던 차별이 국난이 닥쳤을 때 하나의 힘으로 뭉치기는 커녕 '남의 일' 또는 '삐걱거리는 요인'으로 작동했다는 것입니다. 차별은........... 국가를 망치는 가장 주된 요인입니다. 우리가 하나될 때가 가장 큰 안보의 힘인데 통치권에서는 국민들을 '분할하여 통치하고 있으니' 답답할 수 밖에요.



아래 WTFISTHAT님께서 호남차별에 대하여 언급을 하셨길래 몇 자 적습니다. 상당히 많은 역사적 자료 및 한국 현대 정치사가 언급이 되어야 하는데 그 부분은 passion님께 드릴 답변에서 언급하겠습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