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정희의 친일행각

passion님께서 영남패권,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용례를 언급하시면서 박정희의 친일행각을 언급하시고 '영남패권'이라는 존재의 무효성을 말씀하셨는데요.... 우선, 박정희의 친일행각에 대하여 짧게 언급합니다. (아, 과거 친일파 논쟁에서 하도 상처주고 상처받아서 이제 언급하기도 싫은데... 말이죠)


우선, 박정희의 친일행각 중 가장 먼저 이야기되는 것이 혈서 문제.

1) 혈서의 존재 여부 - 예전에 이 문제 때문에 미디어몹에서 산하님과 다투기도 했습니다만 결론은? 혈서는 있다.
2) 혈서를 쓴 이유

안동교육대학 국문학과 교수를 지낸 뒤 은퇴한 유증선씨의 증언입니다.
그가 한 살 낮추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으로 문제가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신원조회를 하면 학교에 있는 박 선생의 기록과 호적이 서로 틀려 말썽이 생길 것 같았다. 나와 박 선생은 숙직실에서 밤새 고민했다. 우리가 연구한 것은 ‘어떻게 하면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이 환영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취할 것인가’였다. 내가 문득 생각이 나서 “박 선생,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면 어떨까”라고 했다. 그는 즉각 찬동했다. 즉시 행동에 옮기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 있던 학생 시험 용지를 펴더니 면도칼을 새끼손가락에 갖다 대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설마 했는데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는 것이었다. 박 선생은 핏방울로 시험지에다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고 썼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


위의 증언을 보면 혈서를 쓸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이 나옵니다. 그런데 박정희 친일행각을 비판하는 블로그에서는 혈서를 쓴 이유(인용문 중 빨간색 마킹 부분)는 생략한 채 혈서를 쓴 결과(인용문 중 파란색 마킹 부분)만을 언급합니다.

박정희 혈서.gif


박정희 특수부대 활약.gif



2. 박정희는 기회주의자 맞습니다. 그런데 혈서를 쓰게 된 이유인 '육군학교에 입학하고 싶은 열망'을 친일행위라고 비판한다면 419혁명 정부는 친일파 정권입니까? 그리고 박정희의 독립군 토벌 등은 증명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아마...2007년 기준으로 그 이후로 어떤 사료가 발굴되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그 것이 증명되었다면 자료 제시를 부탁드립니다.


419혁명정부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씨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낭인 중 한 명이 큰아버지였고 또한 내각수반이었던 장면씨 역시 친일파 행적으로 문제가 많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정권의 수반이 되었으니 419혁명 정부는 친일파 정권입니까? 아니, 419혁명에 참여했던 당시 사람들은 친일파 인물입니까?


이런 식으로 언급하자면 한국의 인물 중에 남아나는 인간들 없습니다.


- 안중근은 동학혁명 토벌군 대장으로 활약했었습니다. 그럼 안중근은 뭡니까?
- 안중근은 인종주의적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종주의적 발언은 친일파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안중근은 우리 국민에게 어떤 위치입니까?
- 이광수가 친일파로 분류되는 민족개조론의 원조는 도산 안창호 선생입니다. 그럼 안창호 선생이 친일파입니까?
- DJ 역시 친일행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 제가 조선시대 최고의 가요로 평가하는 '목포의 눈물'은 조선일보를 통해 세상에 나왔으니 목포의 눈물은 친일 노래입니까?
- 그리고 목포의 눈물 가사에 있는 역사적 사실 중 유달산.. 그 유달산에 친일파들이 득실득실했다는 것은 아십니까?
- 또한, 야당의 적통이라는 민주당의 원조인 한민당... 그 인적구성이 친일파가 더 많았다는 것은 아십니까?


친일파라서 박정희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친일행적에서 자유로운 인물, 자유로운 진영은 없으니 말입니다. 


3. 그리고 박정희의 친일행각 사실여부는 영남패권과 영남패권주의를 논하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passion님은 왜 영남패권, 영남패권주의를 거론하면서 박정희의 친일행각을 언급했을까요?


미안한데, passion님은 흐강님과 같이 선악론 또는 비교우위론의 함정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흐강님과 많이 다투는 것 중 하나가 흐강님이 '기독교 문화가 이슬람 문화보다 우월하다'라는 논지를 펼치기 때문입니다. 문화에서 우열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편리함만 있습니다. 더 편리하고 덜 편리한 것 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영남패권=표준이라고 했습니다. 표준이 선악의 기준으로 나누어지는겁니까? 표준이 우월의 기준으로 나누어지는겁니까? 아닙니다. 표준이라는 것은 단지 '편리하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표준이라는 것은 '유권자가 내게 더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표준은 선악의 기준으로 정의되는 것도 아니고 우월의 기준으로 정의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편리함 때문에 선택되는 것입니다. 표준은 시대가 변하면 불편함으로 바뀌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폐기됩니다. 미국 대선에서 센더슨의 열풍이 왜 일어났습니까? 바로 '그동안 미국경제의 표준이었던 성장위주 경제정책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서 센더슨 열풍이 일어난겁니다. 

즉, 영남패권은 대한민국 유권자가 편리했기 때문에 선택을 한 것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십시요.

제5대 대선과 제 6대 대선 우세지역.gif

강원도와 호남, 그리고 충청북도는 '표준으로 삼고 싶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동일한 대선 후보인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유권자들의 선택에 의하여 표준이 정의되는 것입니다.


4. 1971년 대선

예. 1971년 대선은 박정희와 DJ의 정책이 극명하게 갈립니다. 그 중, 크게 두 가지,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1) 안보

a. 박정희 : 현재의 6자회담의 원론인 4자 회담
b. 김대중 : 대북정책의 강경에서 온건으로 선회 (DJ 정권의 햇볕정책으로 다른 점은 당시에는 낮은 단위의 연방제 주장을 했다가 DJ정권 때는 높은 단위의 연방제 주장)

2) 경제

a. 박정희 : 성장주의
b. 김대중 : 대중경제론 (1992년 대선에서 DJ노믹스로 명칭이 바뀜)



표준을 국민들에게 선택하라고 한 것입니다. 1971년 대선은.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부정선거 때문에 '결과가 바뀌었다'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표준을 국민들에게 선택한 것이고 유권자들은 박정희가 제시한 표준을 더 많이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덜 선택된 DJ가 제시한 표준은 무효한가요? 그거 아닙니다.


예. DJ는 대중경제론을 포기했지만(자발적이건 타의적이건) 최소한 햇볕정책은 표준으로 채택했습니다. 그리고 DJ정권 그리고 노무현 정권 초반에도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비율이 50%가 넘었고 자신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70%를 넘었습니다. 당시에는 햇볕정책이 국방 관련하여 가장 채택을 많이한 표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햇볕정책에 대척점에 있는 '주석궁에 탱크를 몰고 가야 하는' 주전파들의 논리는 완전히 틀린겁니까? 아니죠. 그 것도 하나의 표준입니다. 단지, 제가 주전파들을 비난하는 이유는 그들의 이중적인 태도 때문이지 (예로, DJ의 햇볕정책은 나쁜 햇볕정책, 박근혜의 햇볕정책는 좋은 햇볕정책) 주전파의 주장 역시 하나의 표준입니다.


즉, 더 많이 선택되고 덜 선택된 것에 불과한 표준을 선악론이나 우월론의 잣대로 판단하니까 박정희의 친일행각이 소환되는 것이라는게 제 판단입니다. 표준은 여러 개가 존재하고 영남패권은 한국 정치/사회에서 있는 표준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걸, 박정희가 영남패권주의로 격하시켰고 그 결과, 지금은 채택될만한 것이 없다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영남패권이라는 것을 1971년에 대입하면 무용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어 씁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