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준은 권력이며 돈이다. 

- 한국에서 정치와 경제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이유는 '표준말'이 '수도권 언어를 기준으로 제정된 탓'이 크다고 보여진다. 방증으로 정치와 권력의 집중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이나 중국은 각각 그 집중화의 종착지인 서울과 북경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표준말로 제정이 되었는데 집중화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덜한 일본이나 미국 그리고 영국은 표준말이 없다.


- 1971년 대선은 영남을 대변하는 박정희 후보와 호남을 대변하는 김대중 후보가 '국민들에게 표준을 어느 쪽으로 할 것인지를 물어본 정말 멋있는 선거'였다. 만일, 그 때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더라면 '영남패권주의'라는 단어는 '호남패권(호남패권주의가 아니다)'라는 단어로 대치되었을 것이다.


- 영남패권과 영남패권주의는 다르다. 귄위와 권위주의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패권이 시회의 다수가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standard(표준)라면 패권주의는 사회의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것을 표준으로 강제시키는 것이다. 이를 박정희에게 대입하자면, '국민의 다수가 동의한 영남패권'을, 고의적이건 미필적이건 호남을 따돌리고 나아가 독재를 강권시켜 '영남패권주의'로 격하시킨, 리더쉽 제로의 참 멍청한 정치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이 새누리당과 친노를 비토하는 근본이다. 한마디로 '분할하여 통치하라'라고 하니 말이다.


- 미안한데, 패권, 패권주의는 국가 단위에서 언급할 때와 국제 사회의 질서를 언급할 때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외래어를 숙고없이 무차별하게 들여와서 외국말로 말하면 '식자로 대접받던' 서슬픈 시대의 자화상이다. 

패권과 패권주의의 영어는 헤게머니(hegemony)와 헤게머니즘(hegemonism).


체코의 프라하의 봄을 좌절시킨 소련군의 개입 당시 미국은 소련을 'hegemony'라고 비난을 했고 중공(현재 중국)의 신화사 통신은 패권주의로 의역해서 보도했다. 문화 상대주의나 민족자결주의를 기준으로 본다면, 국가간 민족간 헤게머니는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헤게머니와 헤게머니즘은 동의어로 볼 수 있다. 국제 사회의 질서에서는.


그러나 한 국가 단위에서의 헤게머니는 아래 그람시의 주장처럼 패권이라는 것은 그 국가의 정당한 지배 수단을 의미한다.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그람시(Gramsci,1891~1937)라는 학자의 저서 옥중수고(Selection from the Prison Notebook)에 의하면 헤게모니는 어떤 사회의 지배적 사회 집단이 사회 전체를 지적·도덕적으로 감독하고 그들의 목적을 지원할 새로운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문화의 생산 및 분배를 이념적으로 통제하여 다른 집단의 동의(同意)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나의 '호남패권'이라는 발언이 이상하게 변질되어 인구에 회자되는 현실이 참 슬프다. 뭐, 내가 관련 발언 때문에 '영남패권주의자'라는 누명(?)을 쓰는 것은 신경도 안쓴다. 단지, 정치과잉증이 이 땅을 휩쓸고 있는 것이 슬프다는 것이다.

뭐, 지금은 그 '정치과잉증'조차 '참 좋은 시절이었다'라고 생각되어질만큼 한국 정치의 바탕은 황폐화되어가고 있지만.


- 영남패권에 호남패권으로 대항하라는 과거의 발언은 표준과 표준의 격돌을 하라는 것이다. (물론, 관련 발언하여 과언인 부분이 있지만) 지금 고쳐쓰자면 이렇다.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듯 한 패권이 지배적이면 동종교배효과로 그 집단은 패망을 했다. 그리고 이런 역사의 교훈에서 동종교배현상을 막기 위하여 민주주의라는 것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영남패권은 권장되어야 한다. 호남패권은 신장해야 한다. 호남정치 복원은 이렇게 호남패권 신장의 필수적 통과점이다. 그리고 국민은 이 두 패권 중 선택을 하면 된다. 우리가 경계할 것은 '패권주의'이다. 따라서, 영남패권주의는 모든 국민들이 비토를 하고 동참해서 깨뜨려야 하는 이유이다.


이 것을 경제학으로 풀어보자면, 경쟁 상태의 시장에서 제조자들은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추기 위하여 필사의 노력을 경주한다. 그런데 그런 시장의 경쟁이 깨지면? 그 때부터 제조자와 소비자는 시장에서의 동등한 위치가 아닌 종속관계가 되어진다. 패권도 마찬가지이다. 패권은 표준이며 패권주의는 표준주의이다. 표준이 되기 위하여 필사의 노력을 경주하지만 표준이 된 후에는 표준주의로 흘러 소비자는 피해를 입는다. 이 것을 정치학으로 표현한다면 민주주의 시민이 피지배자의 위치로 격하된다는 것이다.

호남에서 친노가 아직도 암약하는 것은 '새누리당에의 증오'를 볼모로 삼아 독과점을 누린 결과이다. 이제 깨야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북한을 미래에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전략적 사고는 없이 과거의 유산인 레드 컴플렉스만 울거먹는 새누리당의 야만도 깨야 하지 않겠는가?



- 윈도즈가 표준으로 된 IBM-PC 시장에서 애플 그리고 넥스트로 참패를 한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으로 우회를 한 전략은 결과적으로 탁월했다. 스티브 잡스는 표준을 표준으로 대항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안철수의 국민의 당 정강정책 연설은 스티브 잡스의 전략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이 것을 감히 '안철수 표준'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표준화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다.


"Stupid! It's future." (바보야, 문제는 우리의 미래야)


안철수가 이야기하는 미래는 다를 수 밖에 없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이익을 총합한 것이다. 미래가 제대로 설계된다면, 영남패권주의는 자동적으로 철폐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971년 이후로 한국은 미래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이제, 우리 과거에서 제발 좀 벗어나자.  환원하자면, 우리의 정치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