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대중. 

97년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 거의 직전까지도, 호남 사람이 아닌 사람이 김대중을 지지한다고 이야기 할때는 약간의 용기, 아니면 일종의 합리화의 주문이 필요했다. 

(누군가에 의해) 세간에 만들어진 이미지에 의하면 김대중은 대통령 병에 걸린 환자였고, 거짓말장이에 식언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호남에서만 인기 있는 정치인. 기존 제일 야당의 파괴자. 87 대선 단일화실패의 원흉. 김대중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슨상님 숭배하는 호남의 무지렁이'와 같이 취급받았고, "너도 혹시 전라도냐?" 하는 시선도 따라왔다.  그러기에 김대중에 대한 지지는 언제나 "비판적 지지" 여야만 했다. 

그렇지만 냉정히 잘 따져 봤을때, 개인적인 지적 능력외에도, 나라와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의 양과, 정책에 대한 준비및 미래에 대한 비전같은 컨텐트의 질에 있어도, 가장 압도적이었던 사람은 김대중이었다. 

지금 안철수의 포지션은 이상하게도 그 때를 연상시킨다. 호남에서만 인기 있는 정치인. 대통령 병에 걸린 사람. 단일화 안해주는 아집, 제일 야당의 파괴자.  그렇지만 나로선 아무리 스스로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려고 해도 (정무감각은 예외로 하고), 지적 능력, 국가와 국민에 대한 헌신. 정책에 대한 준비와 미래 비전등에서 현재 정치인중 가장 압도적인 컨텐츠를 들고 있는 사람은 안철수라는 결론 또한 피할 수가 없다. 



(2) 노무현과 후단협. 

노무현은 당시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에서 비주류였다. 그래서 대선 후보 내지는 대통령이 되리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노무현이 정국의 기대를 받는 스타로 떠오른 것은 광주 경선에서 승리하면서였다. "호남이 선택한 후보"라는 라는 레이블은 단숨에 그를 야권의 적자로 만들어 주고, 그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러나 당시 정치 엘리트들 심지어 민주당 "주류" 정치인들에게 비주류였던 노무현은 제대로된 취급을 받지 못했다. 노무현이 지지율이 높을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의 지지율이 빠지게 되자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민주당 주류 정치인들의 반발은 이윽고 "한나라당 집권을 막기위한" 대의를 위해 당시 "지지율이 더 높은 후보 (정몽준)"과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나섰던 것이다. 그렇게 총대를 맸던 사람들이 지금 이완용급 취급을 받고 있는 '후보단일화 협의회' 일면 후단협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정치 엘리트들이 강요된 선택은 놀랍게도 대중들에 의해 거부되고, 의외의 결과로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시대의 요구는 삼김 정치라는 기존의 정치 문법 대신 새로운 리더쉽을 찾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정권이 그 요구를 충족시켰다는 다른 이야기.) 

역시나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 안철수를 보고 있으면 또 그때의 상황이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안철수의 정치적인 포지션도 역시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주류 세력에게는 당내에서 있을 때건, 당박에 있을 때건, 핍박과 멸시와 증오와 조롱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후원하고 있는건 야권 최대 주주인 호남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러니컬한 것은 당시의 "후단협" 이라면 매국노 이완용 급으로 취급하며, 그때 이름을 알렸던 김민석은 '김민새' 취급을 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새누리당 (국회) 집권을 막기 위해, 지지율이 더 높은 후보쪽으로 단일화를 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정동영, 천정배, 신기남, 그리고 열린 우리당

참여정부가 시작되고, 기존 새천년 민주당을 벗어나서 전국정당을 표방한다는 열린 우리당이 출범한다. 그리고 호남 출신 젊은 정치인들이었던 정동영, 천정배 그리고 신기남 일명 천.신.정이 (적어도 외부적으로 광고될때는) 그 중심에 있었다.

호남에서도 일부 열린 우리당의 지지자들이 있었고, 특히 전북은 (정동영, 정세균 등과 함께) 열린우리당의 지지지역으로 남았다. 탄핵 사건 이후로 과반수 의석까지 확보했던 열린 우리당은, 이후 호응 받지 못하는 정부 정책과 무기력한 국회 여당의 모습속에, 국민의 지지를 잃고 선거때마다 연전연패하게 되었다. 

결국 열린 우리당은 참여정부의 실패와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주요 정치인들은 전부 탈당했고 결국 잔민당이라고 비웃던 기존 민주당과 (순차적으로) 합당하여 대통합민주신당이 된다. 그 마지막 모습이 얼마나 코믹했는지, 참고로 이를 반대하던 열린우리당 사수파의 마지막 모습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웃다가 쓰러질 수도 있다. 

그 때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력이었던, 어떻게 보면 호남 토큰이었던, 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정동영은 참여정부의 실패 책임 전가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는 포지션을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정동영의 패배를 "호남 굴종"의 상징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 레파토리는 '호남이 정치적 힘을 쓰려고 하면 그 결과는 제2의 정동영이다.' 이다) 그리고 이후 현장왕 활동도 하고, 강남에 출마에 몸도 날려보고, 아무리 선당후사를 해보려고 해도, 그는 끝까지 호남 굴종의 상징이 되어야 했고 그렇기에 그에게는 냉소만이 남았다. 

천정배는? 그역시 당내 비주류로 남아있었다. 더불어 민주당 주류들의 평생 직장인 호남 숙주 정치를 위해서는 혹시라도 당권을 잡을 가능성이 있는 호남 정치인들은 거세되어야 했기에, 그의 당내 입지 역시 쪼그라들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천정배가 탈당했을 때, 당내 주류 및 그 정치인들은 '권은희 공천 때문' 이라며 그 책임을 안철수 (와 김한길)에게 돌렸다. 천정배는 당시에도 권은희 지원 유세에 나갔었고, 지금도 당을 함께 하고 있다.

신기남은? 친일 부친 문제로 의장에서 물러난 이후, 다시 당권 근처에 가는 일은 없었다. 나름 주류와는 척을 지지 않았으나 그렇지만 또 이너서클에 안정적으로 장착한건 또 아니었다. 

신기남은 결국 이번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보이자, 마지막에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나섰으나 당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더불어 민주당에서도, 아니면 호남이나 국민의 당에서도 그를 살리기 위한 움직임은 없을 것 같다.

천정배는 지금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하고 있다. 사실 먼저 창당했던 국민회의의 지지율은 높지 않았었다. 그러나 국민회의와 안철수의 합당은 광주-전남 지역에서 지금 국민의당이 지지세력을 굳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칩거를 하던 정동영에게 문재인 그리고 안철수가 차례로 찾아갔다. 그리고 정동영은 안철수의 손을 들어준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모진 수모와 모욕를 다 받은 다음 정동영이 문재인을 따라가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일부 친노지지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출범한 국민의당이 주춤했던 이유중의 하나는, 호남에서 지지세를 확실히 다지지 못했던 것이었고, 특히 그 지지세가 전남 광주에 묶여서, 전북 이후로 뻗어나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천정배와의 합당, 그리고 한참뒤 이어진 정동영의 합류로 인해 전북을 뒤집으면서 국민의당이 안정세를 타기 시작했다. 호남의석과 비례대표 만으로도 안정적으로 교섭단체를 만들수 있다면, 국민의당이 선거에서 소멸될 걱정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열린 우리당을 만들었던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그 열린우리당의 후손인 정당을 무너뜨리려하고 있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4) 위협과 단결의 레토릭의 기억

군사독재 시절에 많이 듣던 레토릭중 하나는 "북한의 위협이 상주하고 있는 한국적 특수 상황" 때문에 국민들은 언제나 "하나로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정부에 반대하고, 불만을 이야기하고,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들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간첩과도 같은 놈들이며 배신자라는 것이다.

좀더 쉽게 이야기 하면, "니들 우리말 안들으면, 북한이 처들어 온다. 무섭지?"

지금 더불어 민주당에서 나오는 소리가 딱 이와 같다. "우리한테 단일화안해주면, 새누리 당이 과반 넘게 먹는다, 무섭지?. ."

이 논리 앞에서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선거권과 피선거권, 정치적 결사체를 세울수 있는 자유의 조항은 공포의 논리 앞에서 완전히 무시된다.

새누리당 찍기는 내키지 않은데, 무능하고 구태의연한 더불어 민주당의 친노,486들 찍어주기는 그보다는 더 싫다는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낼 기회는 아예 근본적으로 막아진다.

"정통 야당" 도장 받아서 공천만 받아서 적당히 개발안되고 젊은 사람 많이 사는 지역구에 공천만 받으면, 특별히 하는일 없이도 국회의원 되서 4년간 떵떵거리면서 목에 힘주고 살수 있는 사람들 .. 그게 아니라도 그 밑에 줄 잘서면, 구청장이나 시의회를 하던지, 아니면 보좌관이나 기타 등등으로 꿀빨면서 살아갈 수 있는 '생계형 (자칭) 민주투사' 노릇 해가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 의 행태를 개선 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날아가 버린다. 

80년대 반공 제일 프레임과 지금의 반새누리 제일 프레임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5) 과반 국회의 기억

17대 국회는 열린 우리당 과반이었다. 이때 소위 '탄돌이'들이 많은 선거였는데, 과반을 가졌었던 열린 우리당은 아무 일도 못하고 세월만 허송했다. 그리고 야당과 거대 언론 탓만 했다. 그리고 그때 그랬던 사람들과 그 후예가 지금 더불어 민주당의 주류다.

19대 국회는 새누리당 과반이었다. 지금 더불어 민주당과 그 주류 의원들은 새누리당이 과반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아무 힘이 없다며 무기력하게 4년을 보냈다. 테러방지법만 하더라도, 지금 안보다 훨씬더 나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밥그릇 걸린 선거법 유리하게 받으려고!), 그 기회를 계속 놓쳐 버렸다. 

이 모든 난장이 벌어지기 전부터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계속된 예측은 새누리당의 과반 승리였다. 안철수의 탈당 하기 훨씬 전에도 그랬고, 민주당의 계속된 보궐선거 패배에서도 예측된 바였다. 당장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만 해도 목표치를 107석 근처로 잡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어짜피 과반을해도 아무일도 못하고, 과반 못하면 더 아무일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단일화라는 선물로, 정치 자영업자들이 몇명 더 배지를 달게 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나는 동의하기 힘들다.


(6)

안철수는 김대중도 아니고 노무현도 아니다. 김대중만큼 오랜세월 단련된 완성된 정치인도 아니고, 그를 따르는 실력있는 동지들도 없다. 노무현처럼 강력한 팬덤을 가지거나, 엄호해줄 야권 언론의 서포트를 가진것도 아니다. 비 정치인으로 살아온 경력 때문에, 정치판에서 굴러온 인간들에게 무시와 조롱과 냉소를 당하고, 어떻게든 벗겨먹고 뜯어먹을것만 노리는 사람들에게 포위되어 있다. 

다만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는 영웅 서사의 주인공처럼, 어느틈엔가 안철수가 다시금 이 선거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주춤했을 때는 더불어민주당의 맹공과 호남에서의 지지세를 확보 못한 상태에서 '안철수도 결국 끝났네' 라는 이미지를 만들때였다. 그런데, 그 공세를 견디어 내고, 다시 발을 앞으로 디딛자, 사람들은 "과연 안철수는 살아 남을 수있을까?"를 궁금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결과가 어떻게 끝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직 선거 끝난 것은 절대로 아니며,  남은 기간 동안 어떤 일이 일어 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 잠시 찾아온 반등을 이어갈지. 아니면 결국 다시 주저 앉을 지.

이번 선거 결과가 안철수 정계 은퇴를 종용 할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 대선과는 다르게 총선은 지역 이슈가 크게 작용하며, 후보자 개개인의 인물 경쟁력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늦게 출발한데다가, 양쪽 언론에서 집중 포화를 받아야 하는 국민의 당이 고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영웅서사가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안철수가 제시하고 있는 비전과 컨텐츠에 동의한다. 또 안철수가 가려는 길이 정치 자영업자들의 고인물, 패거리질의 장이 되어 버린 대한민국정치를 개선하는 길이라고도 생각한다.  또 안철수가 그 모진 수모를 다 견디어 내 가면서, 자기 재산 기부하고, 자기 재산을 당에 투자하며, 그 비전과 소신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감명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이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