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야권 운동권 또는 그 언저리에 있던 사람들의 한계가 새누리는 절대 악이기 때문에 우리편이 좀 나빠도 새누리 이기는 것이 먼저다라는 관념이 뿌리가 깊어요. 사실 이런 토양속에서 친노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죠.

흐강님께서 작성하신 쪽글로 이 내용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그동안 생각했던 것을 간단하게, 운동 가기 전에 몇 자 적는다.

'준마니스트들'은 아마도 강준만이라는 이름에 세균이라는 단어를 덧붙인 것을 보고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로바이오틱스'라는 용어를 언급하면서 제목에서 '바이러스'라는 표현은 친노를 극딜하기 위한 언급이라면 '세균'이라는 표현은 가치중립적인 것임을 먼저 설명한다.

프로바이오틱스라는 용어가 의미하듯, 우리 몸에서 세균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그리고 프로바이오틱스는 우리 몸에 좋은 세균을 (약물 등을 통해서) 배양시키자는 최근에 이슈가 되는 의학적 연구 과제이다. 반면에 바이러스는 어떤 경우에도 인체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점은,

1) 세균은 온도, 습도, 영양성분 등이 적정하면 자체 증식 가능이 가능하나,
2) 바이러스는 자체 증식이 불가능하며 반드시 숙주가 존재하여야 증식 가능하며 에너지를 생산하거나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세포내 소기관이 없다. 그래서 숙주로부터 필요한 물질을 공급받는다.


내가 누누히, 강준만의 '비판적 지지는 1997년 한번이면 족했다'라는 이유는,

'비판적 지지'라는 것은 당시 정치 상황에서 한국 정치에 '이로운 세균'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영남출신만 대통령이 되는 현실을 정합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정권을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 되어야 하고 그런 유권자의 몫이 작동하는 선례를 남기기 위한 아주 중요한 역사적 기점에서 불가피한 선택, 아니 필수적인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즉, 1997년 강준만의 비판적 지지는 우리 몸에 이롭게 작용하는 세균들처럼 한국 정치에 이롭게 작동하는 '정치적 버젼의 세균'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균은 활용하기에 따라 계속적으로 이로운 세균으로 남겨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1997년에는 이로운 세균으로 작동했지만, 비판적 지지라는 강준만 세균은 원래 위치인 '이롭지도 않고 해롭지도 않은' 가치중립적인 위치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치중립적인 '강준만 세균'에 나쁜 것으로만 작동하면서 숙주가 필요한 '노무현 바이러스'가 기생하기 시작한다. 물론, 의학적으로는 세균에 바이러스가 기생하기 시작하여 어떻게 변질되는지에 대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지만, 최소한 한국에서는 비판적 지지라는 세균에 노무현 바이러스가 기생하면서 아주 특질화된 병균으로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한국 정치계는 '시한부 사망 선고'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강준만 세균인 비판적 지지의 원래 의도는 '일단 우리 실력을 보여주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바이러스는 니체의 '노예의 도덕'과 그대로 등치한다.


"너는 나쁘다, 그러므로 나는 도덕적으로 옳다"


새누리당을 절대악으로 포지셔닝하는 순간, 절대악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는, 또는 절대악이 아닌 것으로 포장이 되는 모든 행위는 정당화되고 지금 문재인과 친노가 하는 행위가 바로 그렇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는 캐스팅보트가 되어야 할 한국의 20%의 유권자..... 내가 누누히 주장하는 그 20%의 유권자, 그러니까 미국처럼 민주당이나 공화당의 선택을 공약을 보고 선택하는 비율이 20%여서 정권교체가 잘된다..라고 한 것처럼 우리도 이 20%의 유권자의 폭을 키워야 하는데 문재인과 친노는 이 20%의 유권자에게 투표장에 갈 의욕을 꺽게 만든다는 것이고 그들이 바로 한국 정치의 악성 바이러스인 노무현 바이러스를 계속적으로 유포하기 때문에 적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덧글) 강준만이 최근에 15%의 정책을 보고 결정하는 유권자 층.... 운운하는 주장을 했는데 만시지탄이다. 그 주장은 2002년에 했어야 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