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공릉천변을 1시간 가량 걸은 적이 있었다.

겨울이기는 해도 그다지 춥지는 않은, 햇볕이 따스한 날이었다.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산책로를 걸어가는데 저 앞에 어떤 사람 둘이 서로 맞붙어 씨름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격렬한 몸싸움 같지는 않은데, 멀리서 보이는 형상은 두 사람이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처름 느껴졌다.

내가 가까이 갈 때까지 그 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들의 모습을 좀더 잘 보게 되면서 나는 어리둥절했다.

산책로에 드문드문 놓인 벤치 옆에 서서 딱 붙어있는 두 사람은 초등학교 고학년 잘해야 중학교 1~2년 정도로 보이는 소년 소녀였다. 두 사람이 딱 붙어서 포옹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명한 붉은색과 노란색 파커를 입은 두 아이(?)의 키는 그다지 작지 않았다. 단지 그 얼굴과 몸매를 보고 나이를 짐작했을 뿐이다.

내게 가장 기이하고 낯설게 느껴졌던 것은, 가까이서 본 그들의 포옹 자세가 아무리 봐도 연인들의 그것이라고 볼만큼 로맨틱하거나 부드럽지 않았다는 점이다. 멀리서 봤을 때 받은 느낌 그대로, 두 사람은 거의 상대의 몸을 자기 몸으로 밀어붙이듯이 팽팽하게 밀착한 상태였다.

하지만 내가 오해했을 리는 없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맞대고 입술을 댔다가 뗐다가 하면서 가끔씩 웃는 소리도 냈다. 둘은 어린 연인들이었던 것이다.

내가 가까이 가는 기척을 느끼자 그들은 잠시 움직이는 것을 멈췄다. 하지만 몸을 떼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지나갈 때는 마치 영화의 스틸컷처럼 움직임을 자제했던 것 같다.

나는 괜히 조심스러워 숨소리도 내지 않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거기를 벗어났다.

백여 미터쯤 걸었을까. 고개를 돌려보니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서로 팽팽하게 밀착하고 있었다. 내가 지나갈 때보다는 더 자유롭게 서로의 얼굴과 입술을 바라보고 느끼고 있었을 것 같기는 하다.

참 기이한 느낌을 받은 장면이었다.

아이들의 포옹과 입맞춤이 마치 몸싸움처럼 느껴졌던 것은 그 아이들이 그만큼 서툴렀기 때문이었을까? 벤치가 옆에 있는데도 그렇게 딱딱하게 서서 서로를 껴안는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 낯선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서는 성인 남녀들의 포옹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어떤 구분 같은 게 없었다. 비슷한 몸집이기 때문이었을까, 아직 성별의 역할 구분이 내재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무엇보다 내가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는 게 옳은 건지 도무지 판단이 되질 않았다.

세상 말세라고, 되바라진 아이들이라고 혀를 차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직 어른들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애정 표현으로 아름답게 봐줘야 하는 건지 내 자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은 어떤 패배감이었다. 하지만 그 패배감은 단순히 그 아이들이 인생의 봄이고 이미 오래 전에 나를 떠나버린 그 열정이 그들을 휩싸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패배감은 내가 그들의 모습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 그들과 나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도 없었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기 때문에 생긴 것 같다.

"아, 나도 한때 저런 시절이 있었지..."

이런 감상조차도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는 얘기다.

며칠 전에는 평소보다 좀 일찍 좌석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시간대가 이른 탓인지 버스에는 평소 보지 못했던 고등학생들이 꽤 많이 앉아있었다.

그 중 한 남학생의 옆에 앉아 집으로 가는데 문득 내 자리 통로 건너편에 가늘고 예쁜 여학생이 앉아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10대 여학생의 섬세하고 고운 프로필... 마치 봄에 솟아나는 새순 같은 느낌의.

아, 예쁘구나 생각하면서 집에 가까이 왔을 때 문득 어떤 짐작이 내 머리를 스쳤다.

가운데 앉은 나를 뛰어넘어 두 소년과 소녀가 어떤 교감을 느끼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어떤 느낌이 내가 이 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나의 의식 밑바닥에서 어떤 신호음을 보내고 있었던 것 아닐까.

아무 근거도 없는 짐작이지만 어쩐지 그냥 그럴 것이라는 확신 같은 게 생겼다.

내가 내릴 정류장에 다가와 자리에서 일어날 때 내 오른쪽의 소년과 왼쪽의 소녀가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같은 동네에 살고 어쩌면 매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같은 학교 같은 반일지도 모르고.

그런데 두 사람은 그다지 멀지 않은 좌석에서 서로 약간 떨어져서 앉아있었다. 둘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의식이 없을 수 있을까.

나는 마치 쫓기듯이 버스에서 내려 소년소녀의 눈을 피하듯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버스에 타기 전에 지하철역 구내에서 빵을 구입해 담은 비닐 봉다리. 그 비닐 봉다리가 왜 내게 그리도 어울리는지, 왜 그리도 내게 안심을 가져다주는 어떤 보호막처럼 느껴졌는지.

올해도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