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경제 체제,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복지 체제를 신뢰한다면 질서 자유주의(Ordo Liberalismus)에 대하여 한번쯤은 훑어보는 것도 유의미하겠다. 질서 자유주의의 체계를 세운 발터 오이켄에 대하여는 여기를 클릭. 그리고 질서 자유주의에 대하여 간단하게 훌어보기에 좋은 참조 글은 여기를 클릭.


그리고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김종인의 저서인 "지금 왜 경제 민주화인가"에 대하여 당시 야당인 민주당에서 '신자유주의보다 더한 신자유주의적 관점'이라고 비난한 것은 질서자유주의를 이해 못하는 소치. 링크에도 있지만 질서자유주의는 30년 먼저 신자유주의보다 시장에의 정부 개입을 반대했으니까. 뭐, 경제적 실력이야 여야 구분없이 한심한 수준이라는 것은 언급해봐야 입만 아프지만.


우리나라 3대 경제학파는 서강학파, 학현학파 그리고 조순학파.


조순학파가 보다 학구적인 학파라면 서강학파와 학현학파는 보다 경제 정책의 관료들의 인맥으로 이어져왔다. 남덕우로 대변되는 서강학파는 한국의 고도성장을 주도한 경제학파이다. 뭐, 서강학파 1세대와 서강학파 2세대가 다르다는데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공부는 셀프~!!!


그리고 김종인은 서강학파 1세대로 분류된다. 즉, 성장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런 그가 비록 그의 작품이 아니라지만 경제민주화에 대하여 얽혀서 언급된 이유는 바로 그가 한국의 경제학자 주류가 미국유학파인 반면 그는 독일로 유학을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종인에 대한 이질감은 영국으로 유학을 갔던 장하준에게 느끼는 이질감과 동질성을 가진다. 즉, 주류에 속하면서 주류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서강학파는 한국의 IMF와 함께 종말을 맞이한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 출범과 함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가 청와대 초대 경제수석으로 임명되면서 학현학파는 제도권에 처음 발을 디디었다. (참조로 조순학파는 노무현 정권 때 노무현 초대 경제수석을 지낸 <-- 이름이 뭐더라? 하여간 양반 때문에 제도권에 발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DJ 정권 당시 이헌재 부총리 대신에 김종인이 먼저 임명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김종인은 서강학파였고 김태동은 학현학파였다. 그리고 김종인은 김태동의 해임을 요구했다. 이 대목의 디테일을 알지 못하지만 서강학파와 학현학파가 같은 정권의 한배를 탄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김종인에게 나름 신뢰를 부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해괴한 인사정책을 한 DJ의 경제적 안목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고. 


또한, 내가 'DJ노믹스는 실체가 없는 사기'라고 비난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어쨌든, 당시 김종인이 DJ정권의 경제부총리를 했다면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암초인 '경제모피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경제모피아의 원시버젼(proto version)이 서강학파이기는 하니 또이또이였을지도.


물론, 김종인이 단지 서강대 교수를 역임했다는 것만으로 서강학파의 범주에 껴넣는 것은 억측일 수 있다. 그의 재벌의 경제력 집중 반대에만 포커스를 맞춘다면 김종인의 할아버지인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의 꿋꿋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죽하면 '정주영 이 정치를 하게 된 이유가 김종인 때문이었다'라는 말이 나돌았을까?


어쨌든, 김종인의 경제 관련 이력을 보면 지만원만큼이나 아스트랄하다. 좌와 우를 온통 왔다갔다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한국 주류에 속했으면서도 주류에 속하지 못했으며 차이점은 지만원은 그렇게 주류에 속하려고 감투를 바랬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한 반면 김종인은 엄청난 감투조차도 발로 차버렸다는 것이다. 


학자적 소신은 해바라기였던 지만원에 비해 김종인이 훨씬 더 높고 고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지닌 학문은, 지만원의 보유 학문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김종인의 보유 학문은 별로 아깝지 않다는 생각은 아마도 그들이 한국 주류이면서도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데서 오는 것이리라.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