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쓰다 보면 최적화란 말과 가끔 마주친다. 연주가 중에는 어느 한 작곡가, 심지어는
한 작품에만 최적화된 연주가가 있다. 그 작품에는 특징이 뚜렷한
 탁월한 연주를 들려주는데 다른 작품으로 옮겨가면 평범한 연주가 되어버린다. 재
능이 뛰어난 두 여성 피아니스트의 그런 점이 매우 흥미롭다.
 최근 영국태생 피아니스트 조안나 맥그리거(1959~)가 연주한 에릭 사티의 대표작인 <짐
노페디 1>을 듣고 깜짝 놀랐다. 불과 3분여의 음악인데 그 울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에릭 사티의 음악에는 좀 별난 전제가 따른다. -그의 음악은 거짓된 성격이나 얄팍한 순
응주의자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사티의 음악을 해설한 제레미 루소의 말인데 물론
가설일 뿐이다. 여기에 한마디 거든다면 -자유로운 영혼, 혹은 정신의 소유자에게 사티
음악은 문을 열어준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생각은 조안나 맥그리거의 3분 짜리 ,짐노페
디1>을 듣고 난 뒤 떠오른 생각이다.
 
 에릭 사티 음악은 독자 음반을 낸 프랑스 연주자 파스칼 로제나 역시 프랑스 연주자 레인버트 드 레우의 연주를 들어왔는데, 신비로운 분위기, 무공해음악이라 해도 좋을만큼 신선
한 청량감은 십분 느꼈지만 제레미 루소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탓인지 
크게 감동을 느끼거나 그 음악이 제시하는 메시지가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사티 음반을 몇
장씩 갖고 있으나 그것을 듣던 기억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게 그 증거이다. 그런데 선머슴
같은 인상을 주는 조안나 맥그리거의 연주를 들었을 때 심산계곡의 폭포수 앞에 마주 선 것
같은, 가벼운 충격과 감동에 사로잡혔다. 산사의 종소리처럼 울림은 길고 물감이 번지듯 감
흥이 가슴 깊이 스며든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조안나 맥그리거에게 사티 음악이 활짝 문을 열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조안나 맥그리거의 본령은 바흐의 <프랑스모음곡>이다. 바흐의 세속음악의
걸작인 이 곡을 그의 연주로 처음 들었을 때 "바흐를 이렇게 가볍게 재즈처럼 연주해도 되
나?" 이런 약간의 거부반응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흐 음악의 고귀한 본질을 하나도
훼손하지 않고 되레 그 정수를 쉽게 살려내고 전달하는 그 탁월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
다. 그의 손가락은 새털처럼 가볍게 건반 위를 날으며 프랑스조곡을 아주 경쾌하고 날렵하
게 연주한다. 너무 가벼워서 어떤 악구는 생략한채 지나간 것으로 착각될 정도로 빨리 스쳐
간다. 그 음악에 한참 취해 듣다가 뒤늦게 그 가벼운 수법의 탁월성에 놀라게 된다. 건반 위 손놀림과 팔동작을 보면 터어키의 기린아 파질 세이가 떠오른다. 분방한 정신이라면 그도 할 말이 많다. 맥그리거와 파질 세이는 재즈연주를 즐긴다는 공통점도 있다. 파질 세이
는 조지 거쉬인의 <섬머 타임>,<렙소디 인 불루>등으로 쿠르트 마주어가 이끈 뉴욕필과 함
께 음반을 냈고 맥그리거 역시 런던심포니와 함게 거쉬인의 같은 곡으로 음반을 내고 있다.
그러나 맥그리거가 들려주는 바흐곡은 파질 세이와는 많이 다르다.
"신은 이 세계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는데 바흐 음악은 그 방법 가운데 하나."
"바흐는 내가 신의 품안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맥그리거 연주에 대한 반응들이다. 어떤 엄숙한 바흐 연주에서도 듣지 못하던 말들이다.이
와 유사한 반응은 헤아릴 수 없다. 재즈처럼 가볍게 연주하는 바흐 곡에서 유독 이런 반응
들이 쏟아진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근원을 따져보면 그의 연주가 우연히 탄생한 것은 아
니다. '우리 집은 믿음이 두터운 분위기였으나 부모님은 나를 되도록 자유롭게 자라게 해주
었어요. 나는 6~7세 때부터 그냥 바흐 음악을 좋아했죠. 막달라 마리아 노트에 나오는 바흐
가 어린이를 위해 만든 전주곡들을 즐겨 연습하곤 했어요." 맥그리거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바흐 곡을 가지고 놀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진지하게 훈련하는 다른 애들과 다르게. 그 오랜 습관이 유명연주가가 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청
중들이 그 음악에서 유독 천국과 천사를 떠올리는 것은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혼을 지닌 어린이의 연주'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가볍게 들려주는 <프랑스모음곡 5번>의
사라방드에서 느끼는 애잔한 감정, 거기서 금방 벗어나 가볍고 활달하게 환희를 느끼게 하는 뒤이은 가보트의 대비는 특별하다.
 
 러시아 태생 니나 밀키나(Nina Milkina.1919~2006)는 오직 도메니꼬 스카를라티에게 최적화 된 피아니스트인 것 같다. 기록에는 '모차르트를 특히 아름답게 연주하는, 아름다운 여성 피아니스트'라는 짧은 소개 글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모차르트 대신 스카를라티를 그 자
리에 대신하면 맞을 것 같다. 연주자의 아름다운 용모를 강조한 것은 특이한 경우이다. 그의 얼굴은 대개 연필 스케치로 그려진 것들 뿐인데 사진을 찾아보고 그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닌 걸 알았다. 모차르트 연주도 그렇지만 스카를라티를 떠나 다른 음악으로 옮겨가면 이
아름다운 연주자는 그저 평범한 연주가로 변해버린다. 오직 스카를라티에서 그의 연주는 반
짝반짝 빛을 뿜어내는데 발성만 아름다운 게 아니고 스카를라티 곡이 지닌 서민적 활달성, 슬픔을 가볍게 녹여내는 서정적 분위기을 알맞게 그려내는 솜씨도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