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당의 정의는 "공공 이익의 실현을 목표로 하여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집단'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공공 이익의 실현'은 '정당들의 합의에 의한 정책 실현'과 '정권 획득 유지를 목적으로 달성'하는 두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즉, 정당의 존재 이유는 첫번째, "특정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의 실현'과 '정권의 획득, 유지' 두가지로 나뉘어 주장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 정당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방법에서 한국과 미국을 사례로 든다면, 한국의 정당의 존재 이유는 '특정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의 실현'에 더 가깝고 미국의 정당의 존재 이유는 '정권의 획득, 유지'에 더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국회에서 표대결 시 한국은 여당과 야당이 당을 중심으로 집결하여 소위 '반란표'가 거의 없는 반면에 미국에서는 국회에서 표대결 시 여당과 야당이라는 당 중심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판단에 의하여 의사 결정 집행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실행에 있어서 표피적으로는 한국은 미국보다 '덜 권력지향적'이 된다. 그런데 실제 정치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은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더 '권력지향적 양태'를 표출하고 있다. 그 이유의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에게 권력이 너무 많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에 '혁신적이라고할만한 정책들'이 실천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그런데 한국은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정책이 180도로 바뀐다.


어쨌든, 한국의 대의민주주의 실행의 양태를 반영한다면 노무현의 '정권 재창출 의무가 없다'라는 발언은 전혀 문제가 없어야 하는 것이고  또한 호남인들의 '문재인으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라는 현실 분석은 - 그 분석이 맞고 틀림을 떠나 - 그 양태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리고 '공공이익의 실현'은 새누리당은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국민의 권리를 다소 억압하더라도 안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라는 입장, 그리고 더불어당은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체제 경쟁의 승리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통해서'라는 입장으로 충돌이 된다.


3.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518 민주화운동의 주역인 호남사람들은 더불어당의 정책으로 인하여 정치적 이익을 충분히 가지고 가고 있는 것이다. 즉, 호남유권자들은 정치적으로 무척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해 하기는 커녕 그들은 무척 불행해 보인다. 왜일까?


호남 유권자들의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실행 양태와 '정치적 행복감'의 상치의 키워드는 바로 '호남차별'이라는 것이다. '호남차별'이라는 키워드를 빼버리면 더불어당의 문재인과 친노는 한국 대의민주주의 실행 양태에 있어서 충분히 새누리당의 파트너로 유권자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완성이야 말로 오랜 독재 기간을 보낸 한국인들에게는 절대 대다수가 찬성하는 공공의 이익이고 문재인과 친노는 그 공공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으므로.


그러나 '호남차별'이라는 키워드를 고려한다면 문재인과 친노는 호남의 이익과 상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된 현실에서 호남차별을 극복하는 방법은 집권이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어 무엇을 하겠다'라는 철학은 없고 마치 YS와 같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즉, 'why?'는 없고 'how?'만 보인다는 것이고 그 것이 문재인과 친노가 정책대결보다는 정치공학적 접근으로만 하는 근본 이유이다. 그러니 집권을 한들 호남차별이라는 것이 극복이 될리 없고 호남과 문재인이 불협화음을 내는 이유이다. 그리고 당장 'why?'가 아닌 'how?'로만 접근하니 호남에 표를 구걸하면서도 호남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이유이다.


이는 마치, 노점상을 하는 부모를 둔 대학생이 '대학을 다니는 이유'가 보다 나은 직장을 구히가 위해서가 전부여서 그 노점상을 하는 부모가 창피하여 길을 돌아가는 것과 아주 같다. 그런 대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한들, 그 부모에게 효도를 할까?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