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인 정치 혹은 투쟁은 그 근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간의 거대 담론이 기저에 자리잡고 있다.

이 담론들이 부딪히면, 큰 충돌이 일어난다. '민주제'는 이 담론들간을 적절히 조정하여 어찌되었든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이른바, 헤겔의 변증법으로 정-반-합의 과정이다.

이 '담론'이라는 것은 다를 경우,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비슷한 면이라고는 조금이라도 없다. '토론'이라는 것은 기저의 담론이 어느정도 '합치'를 이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담론이 다르면, 의견일치는 커녕 대화에 이르는 과정이 굉장히 고되다. 새뮤얼 헌딩턴이 지적한바, 미국의 라이벌은 소련이 아니라, 중동이다. 소련이야, 이념만 다르지 서구라는 거대 담론에서 이루어진다. 이들은 냉전기에 첩보와 외교가 가능했다. 심지어 '각 국의 정보요원은 총격하지 않는다'라는 암묵적 동의마저 존재하였다. 그러나, 중동 즉 오늘날 IS와는 외교마저도 불가능하다. 그들과는 아예 '담론'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연애하던 시절, 이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정말 죽일듯이 증오스러운 '남자'라도 대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정말로 사랑하는 '여자'이건만, 한번 크게 부딪히면,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이다. 성별이라는 근본적인 담론이 다르기에 발생하는 일이다. 이것은 증서를 남발하듯 앞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그 담론을 체득하고 이해해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도 이러한 담론간의 충돌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 세력과 군부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담론은 아예 다르다.

추구하는 대상, 삶의 목표, 심지어 사회 '정의justice'마저도 다르다.


지금까지 한국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담론은 모두가 알고 있다. 87년 이후, 그들은 승리자이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의 담론을 널리 알리기에 주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과 반대된 '담론'을 가진 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 또한 사회의 중추이며, 여전히 많은 '표'를 받고 있다.

이번 글은, 한번쯤 과거의 주류였던 군부와 그들의 협력자들의 '담론'을 이해해보고자 써보는 글이다.

단순한 '친일-부패'라는 딱지에서 벗어나서 말이다.



어떠한 담론을 형성하는데, 인물 즉 '롤모델'을 지정하는 것 만큼 편한 것은 없다.

확실하고, 길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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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롤모델은 '나폴레옹'이었다. 그의 어린시절을 조망한 글들을 보면, 나폴레옹을 흠모한 나머지, 그의 전기를 늘 옆구리 끼고 인물화를 방에 붙여놓을 정도였다고 한다. 코르시카 태생으로 본국인 프랑스의 황제가 된 나폴레옹에게 같은 식민지인으로서 소년 박정희는 크게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만주군관사관학교에 늦은 나이에 입학한 것도 이의 연속선으로 보인다.


그의 후계자들인, 12.12사태의 주역이자 하나회의 담론은 무엇일까?

그들이 탐독했던 한 소설이 있다. 일본인 여류 작가, 야마자키 도요코가 쓴 <불모지대>라는 소설이다.

73년부터 78년까지 연재되었던 소설로, 한국에서는 78년 전집이 번역된 이래, 자주 발간되는 인기 대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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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지대>는 '이키 타다시'라는 인물을 그린 소설이다. 굳이 '소설'이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누구나 그 소설이 '세지마 류조瀬島龍三'의 일대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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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지마 류조는 1911년 생으로, 일본 육군 사관학교 44기를 차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관동군 참모로 군 경력을 시작한다. 전쟁 중에는 대본영 작전참모로 여러 군사 작전을 기획하였으며 45년 7월에는 다시 관동군으로 배속받아 활동하던 중, 만주에서 종전을 맞아 소련군에게 붙잡혀 시베리아에서 11년간의 강제 노동을 배정받는다.

그는 소련에 억류되어 있던 중에, 하바롭스크 전범재판에 증인으로 서기도 하였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방위청으로 오라는 제안을 뿌리치고 이토츄 상사에 말단 사원으로 들어간다. 48에 시작한 회사생활은 그에게 고됬다. 하지만 그는 대본영 작전참모다운 역량과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여 전방위 로비를 펼쳐 F-104 스타파이터의 납품을 성사시키거나, 중동전쟁을 예견하여 오일쇼크의 위기도 무사히 넘기는 등의 활약을 하였다. 그는 이토츄의 부회장과 회장을 역임하고, 박정희의 관동군 상사였다는 장점을 살려, 한국의 군부 정권과 일본 정부의 긴밀한 비공식 라인으로 활동하였다. 박정희는 평소에 그를 흠모하였다고 하며, 이는 그의 후계자인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에까지 이어졌다.

또한, 세지마 류조는 극우의 대표인사로, 직접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많은 일본 내 극우 단체를 후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96세에 노환으로 사망한다.


<불모지대>는 그의 삶을 조망한 작품이다. 물론 '소설'인 이상 적당한 왜곡과 가미가 섞여있다. 주인공 '이키 타다시'는 일본제국의 패배로 권총 자결을 감행하나 상사의 '살아남아서 역사의 증인'이 되라는 충고로 자살을 하지 않고, 이후 시베리아에서 중노동을 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이와 다르며, 세지마 류조는 소련군과 적당한 사법거래로 동료를 팔아먹으면서 시베리아에서 편한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이키 타다시는 전쟁으로 무너진 일본에 대한 '책임'때문에, 긴키상사에 들어가 '조국발전'에 기여할 결심으로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실제역사에서야 세지마 류조의 본 생각을 알 도리는 없으며, '열심히' 일했다기보다는 적당히 일본 육사 인맥을 활용하며 꽤 심한 '불공정'한 경쟁을 통하여 자신과 회사의 발전을 꾀했다.


하지만, 실제역사가 무슨 상관이랴. <불모지대>는 실제로 읽어보면 재미난 소설이다. 이는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단 '오락 소설'이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이키 타다시, 즉 세지마 류조는 엄연한 전쟁범죄자이다. 그는 대본영 작전참모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소설 <불모지대> 그리고 그의 발언에서 한번도 그것을 후회하거나 진지한 고찰을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 전쟁은 '단지 재수없게 졌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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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 전범재판에서의 세지마 류조


세지마 류조와 그의 글을 탐독했던 하나회의 사이에는 거대 담론이 이미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그것은 '입신양명'이다. 박정희의 말마따라 '큰 칼을 차고 호령'해보고 싶은 유전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 제국이 무너지면서 로망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전장이 필요했다. 그것은 '경제'이다. 백성을 '배불리 먹이겠다'는 기묘한 신념이 발생된다. 과거에는 총칼로 백성을 '다스리겠다'이였고, 지금은 '먹이겠다'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당최 시민이라는 개념은 없다. 총칼과 인맥이 있는 '우리'와 이에 혜택을 받는 '백성'이 있을 뿐이다. 물론, '우리'는 일반 백성을 도우니, 가져가는 양도 많아야 한다.


이키 타다시는 종일, 엄격하고 진지한 인물로 나온다. 그는 매사 신중하며 웃지않고 경제를 전쟁처럼 대한다. 이를 멋지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취향이니 딱히 비판하지 않겠으나 나는 시종일관 이를 보면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본인이 무엇이라고 이리 큰 '짐'을 지고 있는 마냥 행동한단 말인가. 실상 그는 인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면서 말이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현찰 다발을 정치인에게 건낸다. 정치인인 '예사롭지 않구만'라고 독백을 하며 돈을 받는다. 소설은 자연스럽게 '어쩔수 없는 일이다. 이것도 경제 계략의 일종이다.'라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간다.


부패를 찬양하는 것도, 정도가 있다. 크게 문제될 사안에도 <불모지대>의 탐독자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계략'인 것이다. 삼국지인 것이다.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이키 타다시는, 그러나 아랫도리 만큼은 진지하지 못하다. 그는 아내가 있는 와중에 근사한 여인과 시종일관 밀애를 즐긴다. 아내가 죽고 나서는 침대에서 육체적 관계를 맺기도 한다. 아내가 죽기전까지 끊임없이 외도를 의심했는데도 말이다.



누구나 사람은 돈을 많이벌고 입신양명하고픈 욕망이 있다. 묘령의 여인과 때로는 사랑을 꿈꿀 수 있다. 심지어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다. 그것은 개인의 영역이다. 그러나, 결코 그러한 행동을 '조국을 위해서'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이키 타다시, 즉 세지마 류조는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꾸민 모든 짓을 '조국번영'이라는 기묘한 언행으로 때웠다. 소설 <불모지대>는 이것을 더욱 더 확장 왜곡시켜, 제국 엘리트의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 놓았다.

식민지 국가였던 한국의 군부의 엘리트들은 이것을 냉큼 가져와 자신의 행동을 거창하게 꾸몄대었다. 이미 롤모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겨운 일이다.


한국경제의 오랜 부패와 '관행' 그리고 '대마불사'식 성장 방향은 이 담론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조금 오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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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판 불모지대 


ps. 소설 <불모지대>는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아 드라마화가 되었다. 무려 19화나 뽑힌, 후지TV 개국 50주년 판이 존재한다. 검색해보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오락 영화'로서 재미는 있으니 감상해보시길..

불모지대 2009년판 1화 감상


ps2. 세지마 류조에 흠뻑 빠진 인물로는, STX의 강덕수 회장이 있다. 그는 여러번 <불모지대>를 거론하며 추천도서로 사내에 비치하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그의 말로는 어떠한가.. 사실 경영적인 관점에서도 세지마 류조식은 이미 낡고 무용하기 그지 없다. 도덕성을 논하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