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 역사를 잘 모르는 분들도(사실, 나도 정통하지는 않다) '이자성의 난'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이자성은 명나라 숭정제 시절 농민의 난을 일으켜 명나라를 멸망케 한 장본인이다. 숭정제의 가렴주구 때문에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때맞춰 후금이 명나라를 침공, 명나라가 멸망한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의 멸망은, 숭정제가 청나라의 이간질과 환관에게 놀아나지 않아서 명나라의 명장 원숭환을 죽이지 않았다면 이자성의 난 때문에 명나라가 멸망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명나라가 망한 후 숭정제의 사촌 형인 홍광이 명나라의 부활을 외치며 중국 남쪽에 남명을 건립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홍광 황제는 청나라 군대에 의하여 포로로 잡히고 살해된다. 이 사건을 역사에서는 '홍광의 시해'라고 기록되어 있다.


2. 그런데 조선의 송시열은 청나라 장군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인조의 수치'를 '홍광의 시해'에 비유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효종에게 바친 기축봉사((己丑封事)에 다음과 같이 적으면서 청나라를 원수의 나라로 규정하고 있다.

주자가 또 인륜을 추리하고 천리(天理)를 깊이 따져 부끄러움을 씻는 의리를 밝히기를, “하늘은 높고 땅은 낮은데 사람은 그 가운데 위치하였다. 하늘의 도는 음양(陰陽)에 벗어나지 않고 땅의 도는 유강(柔剛)에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仁)과 의(義)를 놓아 버리고서는 또한 사람의 도를 세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은 부자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의는 군신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이를 삼강(三綱)의 요체요 오상(五常)의 근본이라 이른다. 인륜은 천리의 지극함이니 천지의 사이에서 도망할 바가 없는 것이요, 군부(君父)의 원수는 한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의 덮인 바와 땅의 실린 바에 모두 군신ㆍ부자의 성품이 있게 되는 것은 지극히 통탄해 마지않는 동정(同情)에서 발로된 것이고, 한 몸의 사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하였습니다. 신은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생각하기를 ‘이 한 글자, 한 글귀가 혹시라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분양(糞壤)에 빠지고, 인도(人道)가 금수(禽獸)에 들어가서 구제할 수 없게 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중략)

성상께서 계책을 반드시 마음속으로 벌써 정하고 계실 줄 아오나 걱정되는 것은 완둔(頑鈍)하여 이것을 즐기고 수치심이 없는 일종의 무리들입니다. 만일 ‘우리는 이미 저들에게 몸을 굽히어 명분이 이미 정해졌다.’고 한다면, 홍광(弘光)의 시해와 선조(先朝)의 수치에 대한 복수를 미처 돌아보지 못할 것이며, 이설이 행하게 되면, 공자 이래의 대경대법(大經大法)이 일체 땅을 쓸듯 없어지고 장차 삼강(三綱)이 민멸되고 구법(九法)이 폐하여 아들은 아비를 알지 못하고 신하는 임금을 알지 못하여 인심이 어긋나고 천지가 폐색하여 금수의 유가 될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송시열의 기축봉사에는 왜 '홍광의 시해'가 일어났는지 그리고 '인조의 수치'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없다. 송시열에게는 성찰과 반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명나라와 조선에 수치를 준 청나라를 원수의 나라로 단순화 시키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복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완둔(頑鈍)하여 이것을 즐기고 수치심이 없는 일종의 무리들'이라고 비난한다.


3. 물론, 청나라가 조선에 비하여 강대국이니 전쟁을 피해야 한다.......라는 것은 논점 일탈적 주장이다. 필요하다면 국운을 걸고 전쟁을 해야 한다. 그 것이 국가 존재의 이유이므로. 그러나 왜 '홍광의 시해와 인조의 수치' 발생했는지에 대하여 성찰 없이 청나라만을 원수로 규정하고 반대파들을 비난하는 송시열의 주장은 언어도단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 성찰과 반성없이 사건을 단순화시켜 '나와 반대파'로 나눈 다음에 반대파를 무조건 폄훼하는 송시열의 기축봉사에서 작금 한국진보들의 허접함을 떠올려본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